정상적인 대변의 모양을 아세요?
어린이 변비의 증상이 애매하기 때문에 다음 11가지 증상 중 한 가지라도 있다면 소아과 의사를 찾아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글ㆍ사진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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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늘 그렇듯 아침을 먹고 나서 15분이 지나면 나는 귀 뒤에 자스민 꽃을 찬찬히 꽂는다. 그리고 볼일을 보러 나선다... 오늘 아침의 배변은 정말 색다른 것이었다. 코뿔소 뿔 모양을 하고 나온 깔끔한 두 덩어리. 난 무엇보다 그 양의 변변치 않음에 신경이 쓰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중 한 사람인 달리(Salvador Dali)의 일기 중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그 왜 축 늘어진 시계나 해골, 십자가 같은 걸 즐겨 그렸던 사람 있잖아요. 천재와 광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처음 그의 일기에서 이 구절들을 읽고는 살짝 이상한 쪽에 속하는 사람이 아닐까 했지요. 하지만 나중에 어떻게 하면 절 찾아오는 환자들을 똥 잘 누는 어린이로 만들 수 있을지 공부하다가 달리가 의외로 현명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브리스틀 대변 척도(Bristol Stool Scale)

 

어린이들은 똥이나 방귀 얘기만 나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지요. 우리가 왜 더러운 것, 무서운 것, 끔찍한 것에 관심을 갖는지에 관해서는 생각보다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결론은 그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란 겁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대소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자리에서 주고받기에 유쾌한 얘기는 아니니 그렇지만 문제는 자신의 대소변에조차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관찰은커녕 엉덩이를 들기도 전에 변기의 물을 내려 보낸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녀는 더 하지요. 신생아 때는 기저귀를 갈 때마다 비상한 관심을 보입니다. 변이 조금만 묽어지거나, 푸른색 변을 보거나, 실 같은 피가 섞이거나, 알갱이 같은 것이 나오면 즉시 소아과로 달려갑니다. 대소변 가리기를 할 때는 온 집안의 비상한 관심사가 되기도 하지요. 저도 처음 혼자서 똥을 누고는 자랑스럽게 달려왔던 딸 아이의 표정과, 어린이용 변기에 살포시 놓아둔 듯한 ‘깔끔한 두 덩어리’를 보고 아내는 물론 부모님까지 만면에 웃음을 짓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하지만 대변의 전성기는 이로써 막을 내리고 맙니다.

 

하지만 달리처럼 천재(광인?)이 아니더라도 대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인들입니다. 1990년 브리스틀 대학교 연구팀은 온갖 대변의 모양을 수집하여 분류한 후 7단계의 척도로 만들었습니다. 친절하게 그림까지 첨부했습니다. 이걸 브리스틀 대변 척도(Bristol Stool Scale)라고 합니다. 참 할 일 없는 족속들이라는 둥, 영국의 끔찍한 날씨와 더 끔찍한 음식을 생각한다면 그런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둥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사실 이 척도는 매우 재미있을뿐더러 유용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의외로 어린이의 변비를 알아차리기가 어렵고 둘째, 정상적인 대변 모양을 아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변비의 11가지 증상


변비를 알아차리기가 어렵다니? 물론 3-4일에 한 번 정도 크고 딱딱한 대변을 본다든지, 대변을 볼 때마다 아파한다든지 하는 증상은 의심할 여지 없이 변비입니다. 하지만 하루에 3번 이상 매우 묽은 대변을 보는 아이도 변비일 수 있습니다. 엥,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지난 번 글을 읽어보세요. 변비가 생기면 직장에 변이 쌓이면서 직장이 서서히 늘어납니다. 직장에서도 수분이 계속 흡수되기 때문에 대변이 오래 머무르면 점점 커지고 점점 딱딱해집니다. 결국 크고 딱딱한 덩어리가 출구를 막아 버리는 셈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굶지는 않지요? 음식을 계속 먹으니 장에서는 변이 만들어져 끊임 없이 내려옵니다. 일부는 직장을 막고 있는 큰 덩어리에 합쳐지지만 묽은 부분은 덩어리의 틈새를 통과하거나 주변을 돌아 항문으로 빠져 나옵니다. 변비가 심한데 아이는 하루 서너 번 묽은 변을 보니 부모는 변을 잘 본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설사를 한다고 걱정합니다. 어려운 말로 ‘역설적 설사(paradoxical diarrhea)’라고 하지요. 심하면 변을 지려 속옷이 더러워지기도 합니다. 어린이 변비의 증상이 애매하기 때문에 다음 11가지 증상 중 한 가지라도 있다면 소아과 의사를 찾아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1. 커다란 대변 - 대변이 어린아이치고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2. 딱딱한 대변 - 브리스틀 대변 척도를 참고하세요.
3. 뜸한 배변 - 이틀에 한 번도 대변을 보지 않는다면 참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대변을 지린다 - 보통 늘어날 대로 늘어난 직장 밖으로 대변이 넘쳐 나오는 겁니다.
5. 속옷에 묻는다 - 직장이 많이 늘어나면 대변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하고 대변이 깨끗하게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항문을 깨끗하게 닦기 어렵습니다.
6. 매우 묽은 대변 - 설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변비일 수 있습니다(역설적 설사).
7. 뚜렷한 원인이 없는 가볍고 간헐적인 복통
8. 하루 3번 이상 변을 본다 - 직장이 너무 늘어나면 긴장도가 떨어져 한번에 밀어내지 못합니다.
9. 대소변 가리기 훈련이 너무 힘들다.
10. 대변이 마려우면 숨는다.
11. 항문이 가렵거나 아프거나 치질이 생기거나 대변 볼 때 피가 난다.

 

브리스틀 대변 척도를 봅시다. 4번과 5번이 정상적인 대변입니다. 3번과 6번이면 조금 신경을 써야 하고, 1, 2, 7번은 곤란합니다. 매번 아이의 변을 확인하기 어려우면 인터넷에 많이 나오니 컬러 복사해서 화장실에 붙여 놓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이 척도는 어른에게도 유용합니다. 우리는 무슨 원칙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요. 오죽하면 냉면 먹는 법도 제대로 모른다며 타박을 하곤 합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황금똥을 누는 아이’ 운운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브리스틀 대변 척도는 과학적인 기준입니다만 너무 강박적으로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3번 정도 되는 변이 나왔다면 아이에게 과일을 좀 더 먹이고, 하루 10-20분이라도 함께 산책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건강에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면 족합니다. 대변의 모양은 건강에 관해 의외로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달리처럼 자기도취에 빠져 감상할 것까진 없지만 평소에 잘 관찰했다가 의사에게 알려주면 진단에 큰 도움이 됩니다. 뭐 어때요? 자기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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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설적 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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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야뇨증과 변비 거뜬히 이겨내기스티브 호지스, 수잔 슐로스버그 공저 / 서울아동병원 의학연구소 역 | 꿈꿀자유
많은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변비가 야뇨증은 물론 다양한 소변관련 증상을 일으키는 근본원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문제를 해결할 쉽고 빠른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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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 #변비 #역설적 설사 #브리스틀 대변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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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