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화제를 모은 굴 먹방에 대해 최화정이 묻자, 이영자는 왜 그 굴을 그렇게 먹어야 했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통영 굴은 알이 두껍기 때문에 그 석화는 젓가락질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서해안 굴은 자잘해요. 그러면 젓가락질이 잘 안 돼. 그건 예의 없는 거지. 그거는 싹 닦아 가지고 종이컵이든 유리컵이든, 그 위에 초고추장이나 레몬소스 같은 거 살살살 뿌려서 호로록 마셔줘야 하는 거지.” 많이 먹기 위해서 선택한 방식이 아니라, 재료의 맛을 가장 이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식이었음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이영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새삼 실감했다. 맞다, 저 사람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었지. 그릇 한 점, 옷 한 벌을 고를 때 본능적으로 예쁜 색깔과 패턴을 매치하는 심미안을 지닌 이영자였으니,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있는 힘껏 섬세하고 자세하게 즐기는 법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소떡소떡 한 꼬치를 먹어도 소시지와 떡을 함께 씹어 그 식감을 즐겨야 하고, 같은 김치 맛 컵라면인 것 같아도 면의 굵기에 따라 맛이 다르단 걸 알아야 하는 것이다.
최화정이 ‘유리그릇’이라 별명을 붙였을 만큼 속내가 섬세하고 예민한 이영자는, 자신이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는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그 속내를 감추고 살아야 했다. 타고 난 입담으로 돈을 벌어오고, 그렇게 벌어온 돈으로 자신도 먹고 주변도 먹였다. 고생한 부모님을 챙기고, 일찍 세상을 떠난 형부를 대신 해 언니 집을 사주고 조카 대학 등록금을 댔다. 정선희나 홍진경 같은 친구들이 어려울 때면 먼저 손을 내밀어 함께 코미디를 했다. 그렇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입에 들어갈 끼니를 책임지기 위해 달려온 게 27년이다. 끼니의 지엄함을 알고 한 끼도 허투루 먹지 않은 사람이기에, 이영자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이나 그 진가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 또한 중히 중히 여긴다. 당신이었다면 문어비빔밥을 먹고 그 맛을 어떻게 묘사했겠냐는 질문을 받자, 이영자는 제 앞에 받은 밥상을 넘어 그 이전의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어는 묵호 문어가 최고야. 동해 기이이이이이이잎은 바다에서, 문어가 몇 십년을 주우우우우욱 살았거든.” 그는 말죽거리 소고기 국밥을 소개할 때에도 그게 가마솥에 이틀을 고아낸 사골국물이란 점을 강조하고, 마장휴게소 이천쌀밥정식을 묘사할 때는 “남들의 소중한 땀을 모아서 밥상 위에 정성스레 올린 느낌”이라 말한다.
작년 추석에 방영된 SBS 파일럿 <트래블메이커>에서, 이영자가 청년들을 데리고 홍성5일장에 가서 50년째 한 자리에서 쇠틀 호떡을 굽는 명인을 찾은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얇게 기름을 바른 쇠틀에 반죽을 넣어 담백하게 호떡을 구워 내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며, 이영자는 맛 뒤에 숨은 수고로움에 감사하며 세상을 섬세하게 사랑하는 태도를 알려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쌀과 고기를 벌어오는 입, 세상 온갖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는 입, 다시 그 모든 음식에 맛이 고이는 과정을 정성 들여 설명하는 입. 그렇게 세상은 이영자의 입을 기점으로 원을 그리며 순환한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hanseon19
2018.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