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롭고, 예술이 꽃핀 벨 에포크 시대와 에밀 졸라
벨 에포크는 좋았던 시대라는 의미예요. 1, 2차 대전을 겪고 전 세계 사람들이 힘들어하던 그 시절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하는 말이 벨 에포크라는 건데요. 그래서 이 이름을 어떤 학자가 만들었는지 몰라요.
글ㆍ사진 신연선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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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직물과 나사(羅紗)로 된 옷들, 메리노 양모, 체비엇 양털, 멜턴으로 짠 옷 등이 중이층에서부터 아래로 마치 깃발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청회색, 마린 블루, 올리브 그린 등의 중간 색조들 사이로 새하얀 가격표가 두드러졌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정문을 에워싸듯 걸려 있는, 드레스 장식용의 가느다란 모피 끈과 띠, 러시아산 회색 다람쥐의 등 부분으로 만든 섬세한 모피, 순수한 눈을 닮은 백조의 배 부분 깃털로 만든 모피, 토끼털로 만든 인조 흰 담비와 담비 모피 등이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10쪽)

 

지난 4월 3일, 워커힐 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시공사?워커힐 고전문학 살롱은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였다. 파리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를 모델로 한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을 읽고 에밀 졸라의 삶과 벨 에포크 시대를 산 예술가들을 이야기한 이날의 자리는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를 쓴 한성대학교 크리에이티브 인문학부 김윤주 교수의 강의로 진행되었다. 지금까지도 영화로, 소설로 그려지고 있는 벨 에포크 시대. 과학과 지식, 가능성이 폭발하던 19세기 말 파리의 분위기는 긴장과 낭만 그 자체였다. 김윤주 교수는 강의를 통해 벨 에포크 시대에 태어난 생명력 있는 문학 작품과 미술 작품들, 그 시기를 온몸으로 살아냈던 예술가들의 삶에서 지금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좋았던 시절’은 언제나 짧고 찬란하고 닿을 수 없는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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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의 프랑스


김윤주 교수는 먼저 파리의 국립묘지‘팡테옹’부터 소개했다. 에밀 졸라의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한 팡테옹은 1758년에 건물 기초가 세워져 프랑스혁명이 시작되던 1789년에 완성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교회로 지어졌다가 파리 코뮌 때는 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던 수난의 역사가 있는 이곳 팡테옹에는 현재 에밀 졸라를 포함해 볼테르, 루소, 빅토르 위고 등이 안치되어 있다.

 

“정치, 예술, 문학, 과학 등 프랑스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생각되는 위인들의 유골을 모셔놓은 곳이에요. 이곳 가운데에 ‘푸코의 진자’가 돌고 있는데 그것도 굉장히 유명하죠. 이 안에 에밀 졸라가 있습니다. 1906년에 이곳으로 유해가 옮겨졌어요. 에밀 졸라는 1902년에 사망했는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드레퓌스 사건(1894년 프랑스 포병대위였던 드레퓌스(Alfred Dreyfus)가 군사비밀을 독일에 누설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은 후, 그의 무죄를 믿고 구출하려는 그룹과 처벌하기를 원하는 그룹이 첨예하게 대립해 프랑스가 두 파로 갈라져 극렬하게 싸운 사건)’과 관련해서 에밀 졸라는 프랑스의 반역자로 여겨졌기 때문에 사망 후 바로 팡테옹으로 옮겨지진 못했어요. 후에 사건의 진위가 밝혀졌고요. 그래서 에밀 졸라가 더더욱 존경 받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죠.”

 

에밀 졸라는 1840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김윤주 교수는 1840년이라는 시기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 시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많이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에밀 졸라를 이야기하면서 문학 얘기만 하기는 어렵다”며 당시 프랑스의 미술과 미술 평론가로서의 에밀 졸라에 대해 살펴보았다.

 

“일단 에밀 졸라는 출발을 미술평론가로 했어요. 이 시기 문학가들은 거의 그랬어요. 샤를 보들레르도 미술 비평을 했고요. 그러면서 화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지냈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1800년대 후반만큼 미술이 문학에 앞섰던 시대는 없다고 평하거든요. 그러고 보면 이 시기는 문학 작품보다 미술가들을 많이 손꼽아요. 우리가 기억하는 미술가들은 거의 이 시기에 활동한 사람들이라는 거죠. 모네, 마네, 고흐 등이 거의 이 시기에 활동했잖아요. 말하자면 그 와중에 에밀 졸라가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1840년대에 일어난 흥미로운 발명 중 하나가 ‘튜브’다. 이 시기에 물감을 담을 수 있는 휴대용 튜브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당연하게도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과학의 발명이 미술사와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는 김윤주 교수는 이때 발명된 휴대용 튜브로 비로소 화가들은 야외로 나가고, 더 많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해석했다.

 

“튜브가 없을 땐 어떻게 그림을 그렸을까요. 접시에 놓고 염료를 섞어 사용했겠죠. 그러면 조금만 써도 물감이 굳어버리죠. 또 접시에 놓고서는 들고 다니기 너무 불편해요. 그러니까 실내에서만 작업을 해야 하죠. 튜브 발명 이전의 그림들은 대부분 실내 그림이거나 상상 속 외부 그림들이에요.”

 

 

에밀 졸라의 대저작, 루공마카르 총서의 탄생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가족을 따라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자란 에밀 졸라는 아버지의 사망 후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형편이 어려웠던 그에게 엑상프로방스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화가 세잔이다.

 

“세잔이 한 살 더 많았는데 에밀 졸라와 같은 학년이었다고 해요. 세잔이 그때는 졸라보다 부유했다고 하는데요. 세잔이 졸라를 많이 챙겨주고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졸라가 먼저 파리로 올라오고 뒤에 세잔이 오죠.”

 

파리로 온 에밀 졸라는 바칼로레아 시험에서 거듭 떨어지자 대학을 포기하고 신문사에 취직한다. 광고 부서에 취직한 이 시절의 경험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에도 많이 반영되었다. “전단지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 작품의 바탕이 되는 경험을 쌓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스물여덟 살이 되던 때에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이 수록된 ‘루공마카르 총서’라는 대저작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22년 간 20권 집필. 400-500쪽에 달하는 책을 9개월에 한 권 씩 찍어낸 엄청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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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계통수예요. 가계도를 그린 건데요. 에밀 졸라는 루공마카르 총서를 통해 제2제정기 프랑스를 다뤘어요. 제2제정기 때 역사적으로 굉장히 많은 일들이 일어났거든요. 루공마카르 총서는 루공 집안과 마카르 집안의 이야기라는 의미예요. 이미지를 자세히 보시면 등장인물 이름이 ‘마카르’, ‘루공’ 이렇죠.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은 루공마카르 총서의 11권입니다. 주인공 남자가 ‘옥타브 무레’인데 그 이름이 중간쯤에 보여요. 이런 구상을 스물여덟 살에 했다는 게 정말 놀랍습니다.(웃음)”

 

에밀 졸라는 가계도 설계에 무척 고심했다. 김윤주 교수는 에밀 졸라가 루공마카르 총서를 구상하던 시기에 다윈의 진화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윈의  『종의 기원』 이 출간된 후 유전, 혈통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 안에서 서로 영향 받으며 연결되는지”에 대해 쓰고자 한 것이 루공마카르 총서였다는 설명이었다.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렇죠? 소설가라면 보통 자기의 경험치를 가지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드는 사람일 텐데요. 에밀 졸라는 스물여덟 살, 아직 경험이 일천한 어느 순간에 역사 속 가공의 인물들을 만들어서 이들이 어떻게 진화해 가는지를 써보겠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목로주점』 ,  『나나』 , 『살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 『제르미날』 으로 이어지는 에밀 졸라의 작품 목록은 그렇게 탄생했다.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의 딸이  『나나』 의 주인공 ‘나나’이며, 『살림』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의 주인공 옥타브 무레가 백화점을 갖게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또한  『제르미날』 에는 『목로주점』  제르베즈의 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김윤주 교수는 에밀 졸라의 친구 화가 세잔과의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주었다.

 

“작품마다 주제가 있죠. 세탁소, 창녀, 백화점, 탄광 등 사회 곳곳을 건드리는 소설들인데요.  『제르미날』 에는  『목로주점』 의 주인공 제르베즈의 또 다른 아들이 화가로 등장해요. 그런데 이 화가가 결국 성공을 못하고 자살을 하거든요. 굉장히 좋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가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화가를 당대 사람들이 전부 세잔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누가 봐도 세잔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의 일화가 그대로 있으니까요. 에밀 졸라가 이 책을 세잔에게 선물하고, 세잔이 잘 받았다는 편지를 썼는데요. 그 다음부터 다시는 연락을 안 했습니다. 정신적 교류를 한 가장 친한 친구였던 세잔과의 관계가 그 작품 하나로 끊어져 버린 거예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에밀 졸라가 죽은 날 세잔이 종일 통곡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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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대, 벨 에포크

 

그리하여 아침 8시부터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겨울 신상품의 대대적인 세일 성공을 예감하듯 밝은 햇살 아래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입구에는 깃발들이 펄럭였고, 이른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직 제품들이 축제 마당 같은 소란스러움으로 가이용 광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양쪽 길로 늘어선 쇼윈도들이 조화로운 진열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고, 윤이 나게 잘 닦여진 유리들이 그 화려함을 더욱더 돋보이게 했다. 온갖 색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뛰쳐나와 흥청거리듯 거리 전체가 흥겨움으로 들썩거렸다. (149쪽)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은 실제로 존재했던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 당시 있었던 여러 일화들을 그대로” 담은 작품으로 “백화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벨 에포크 시대를 보여준다고 일반적으로 평한다”고 설명한 김윤주 교수는 벨 에포크라는 말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이 시대의 특징을 분석해보았다.

 

“벨 에포크는 좋았던 시대라는 의미예요. 1, 2차 대전을 겪고 전 세계 사람들이 힘들어하던 그 시절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하는 말이 벨 에포크라는 건데요. 그래서 이 이름을 어떤 학자가 만들었는지 몰라요. 시대명은 보통 누가 만드는데 이 말은 알 수가 없죠. 또 재미있는 것은 벨 에포크 시대가 종료되는 것은 확실하게 1914년이지만 시작된 시기는 모른다는 점입니다. 1914년에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니 정확하게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시작은 사람마다 다르게 얘기를 해요. 일반적으로는 1871년, 나폴레옹 통치 시기가 끝난 시점부터 말하는데요. 공화정이 시작된, 민주주의가 꽃 피우는 시기부터가 벨 에포크의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제일 많아요. 가장 꽃 피웠다고 한다면 그 시기를 대부분 1890년대부터 1914년까지로 봐요.”

 

벨 에포크 시대의 예술가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 중에는 “사진을 찍어주듯” 서로 그려준 그림이 여럿 있다. 김윤주 교수가 보여준 것은 앙리 팡탱 라투르의 「바티뇰의 아틀리에」였다. 여기에는 마네, 바지유, 르누아르, 모네 그리고 에밀 졸라가 등장한다. 화가들과 친밀하게 지냈던 만큼 에밀 졸라가 등장하는 작품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김윤주 교수가 소개한 작품은 에밀 졸라의 초상화를 그린 마네의 작품인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마네의 유명한 작품 「올랭피아」부터 시작한다.

 

“「올랭피아」는 파격적인 그림이죠. 환락가의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이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요. 도발인데요. ‘너희는 더 위선적이잖아!’라고 말하는 그림이 당시 환영을 받았겠어요? 아니겠죠. 죄다 비판을 했어요. 그때 유일하게 마네 편을 들어준 사람이 에밀 졸라였어요. 유일하게 에밀 졸라만이 마네를 혁명가라고 하면서 극찬한 거죠. 그래서 마네가 졸라의 초상화를 그려 화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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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가 그린 에밀 졸라의 초상화를 보세요. 자세히 보면 뒤에 마네의 「올랭피아」가 있죠. 그리고 졸라가 들고 있는 책이 ‘그림의 역사’라는 책이에요. 상징하는 바가 큰 거예요. 마네는 이 그림을 통해 에밀 졸라는 이렇게 미술사에 통달한 진짜 지성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그가 자신의 그림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함께 보여준 거예요.”

 

최초의 여성 인상주의 화가 모리조, 부와 명예를 누린 ‘행운의’ 화가 모네, 생전에 빛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장 사랑받는 화가 고흐, 그리고 조각가 로뎅과 이방인 릴케의 눈에 비친 파리가 묘사되어 있는 『말테의 수기』 까지. “호화롭고, 자본이 출렁거리고, 여성들이 화려하고, 예술이 꽃핀” 벨 에포크 시대와 그 이면의 어두움을 지켜본 김윤주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평론가가 에밀 졸라에 대해 쓴 글을 해석하며 강의를 마쳤다.

 

“비참하고, 하류 계층에 속한, 힘들게 살고 있는 계층들이라도 상승하고 있다고 느끼는 계층들은 어려운 삶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고요. 최상위층에 있더라도 자신들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불안을 갖고 산다는 건데요. 에밀 졸라는 항상 자신을 핍박 받는 사람들과 동일시했거든요. 어둡고 힘든 소설을 많이 썼죠. 그러면서도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처럼 해피엔딩 소설도 썼어요.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에밀 졸라는 자신을 상승하고 있는 계층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이들이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 평이 있더라고요. 맞는 말 같아요. 에밀 졸라는 사회 참여를 열심히 했던 작가죠.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밀 졸라 저/박명숙 역 | 시공사
백화점 근로자들의 지위 향상이나 노동 환경의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는 여주인공 드니즈의 모습 등을 통해서 백화점이라는 존재의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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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시대 #에밀 졸라 #고전문학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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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