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록 신 내 지각변동의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 형국이다. 블랙뮤직과 록, 애시드 재즈의 기막힌 결합으로 일본 힙스터들의 집결지를 자처한 서치모스(Suchmos)의
최근 열도의 경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시티 팝 리바이벌’. 핫피엔도, 사노 모토하루, 야마시타 타츠로 등 1970~80년대의 풍요로움 속 고독이 영미권의 음악을 품에 안아 만들어진 시티 팝의 세련됨이 지금의 인디록과 맞물리며 일으킨 화학반응이 몇 년 전부터 조금씩 화제에 오르기 시작, 올해 본격적으로 메인스트림의 지분을 빼앗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넘치는 메시지를 담아 열정적으로 꿈을 전파하던 ‘기타를 든 소년소녀’들의 주입식 퍼포먼스에 지친 이들이 머리를 비우고 춤추고 싶어 찾게 되는 틈 많은 로큰롤. 이 5인조 밴드의 음악은 이러한 경향의 중심에 서 있다.
저해상도 포크 사운드의 느긋함이 인상적이었던 전작
「氣持ちいい風が吹いたんです(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었어요)」에서 보여주는 기타운용은 단연 발군이다. 제멋대로 연주하는 듯한 두 기타 선율의 절묘한 배합은 단순함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그들의 스타일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이를 보조하는 것이 바로 공간계 이펙터의 적절한 사용. 그런가 하면 찰나의 행복을 캐치해 노래하는 「散步日和に布團がぱたぱたと(산책하기 좋은 날 이불을 타닥타닥)」에선 월 오브 사운드의 부유감이 귀를 간질인다. 이처럼 악기 본연의 소리를 강조하는 와중에 느껴지는 사이키델릭함은 확실히 과거지향적임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적인 이야기로 그 시차를 메워내는 밴드의 솜씨는 이번 작품에 와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背のびした路次を散?してたら/ 汚点だらけの靄ごしに
쭉 뻗은 길을 산보하고 있으면/ 얼룩 투성이의 안개 너머
起きぬけの露面電車が/ 海を渡るのが見えたんです
잠에서 깬 노면전차가/ 바다를 건너는 것이 보였어요
- 핫피엔도, 風をあつめて(바람을 모아)
鐵道草が搖れている/ 路面電車が走る
망초가 흔들리고 있어/ 노면전차가 달려가
トンネルを拔けたなら/ 見たことない景色が
터널을 빠져나가면/ 본적 없는 풍경이
- never young beach, 浜邊の町へ(해변가로)
새로움에 항상 목말라 있는 지금의 세대가 반세기 전의 시티 팝에 주목하고 있는 현상엔, 어느 세대에나 공통적인 상실감이 자리잡고 있다. 단지 이전의 그것이 갑작스러운 도시화로 인한 사치스런 허무함이었다면, 지금은 그 풍요엔 실체가 없음을 깨달으며 생겨난 절망이라는 점이 다를 뿐. 그래서 그런지 전설에게든 신성에게든, 달리는 노면전차는 여전히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이상향이며 자유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게 왜 나빠?”라며 현실로부터 도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삶의 지속을 불안해하는, 극과 극을 줄타기하는 현 세대의 나이브함.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려는 제멋대로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절한 몸부림. 이를 과거의 유산에 태워 직관적으로 표현해 낸 레트로 로큰롤이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을 날려버리기에 더할 나위 없다. 이 앨범을 들으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세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과거의 영광을 강요당하는, 그리고 미래의 낙관을 분실한, 덕분에 오롯이 순간의 자신에 집중 가능한, 지금이라는 이름의 역설적인 「A good time」을.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