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영혼의 창”이라는 경구를 그다지 믿지 않는다. 순수한 눈망울로 말도 안 되는 거짓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고, 험악한 눈빛으로 상냥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꾸만 상대의 눈을 통해 상대를 읽으려 한다. 상대가 눈을 어떻게 뜨고 시선을 어떻게 돌리는지, 그걸 기반으로 사람의 심리를 읽고 속내를 파악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천지다. 어떤 이들은 그런 믿음을 이용해 자신의 인상을 드라마틱하게 바꾼다. 작가 겸 배우 도널드 글로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리라. 삼백안이 될 때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온갖 미친 짓들을 저지르는 시트콤 <커뮤니티>(2010-2015)의 트로이 반스와, 눈꺼풀을 들어올릴 기력도 없어 늘 눈을 가늘게 뜨고 시니컬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드라마 <아틀란타>(2016- )의 어니스트 막스 사이의 온도차는, 두 인물을 연기하는 도널드 글로버의 눈빛에서 나온다.
평소 절반쯤 감긴 눈꺼풀 뒤에 반짝거리는 눈빛을 숨겨두던 도널드 글로버는, 가수로서의 예명인 차일디시 감비노 명의로 발표한 신곡 ‘디스 이즈 아메리카’ 뮤직비디오에서는 줄곧 눈을 부릅뜨고 있다. 트랩비트에 맞춰 몸을 꿀렁거리며 춤을 추는 그는, 부릅뜬 눈으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보는 이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린다. 그러나 그가 일군의 학생들과 함께 춤을 추며 시선을 돌리는 동안,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화면의 구석에서는 생지옥이 펼쳐지고 있다. 글로버가 발사한 총알에 쓰러진 이의 시신, 부당함에 봉기해 일어난 이들의 시위와 폭동,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무장경찰, 2층에서 몸을 던지는 이, 불타고 있는 자동차, 이 모든 난장판을 스마트폰으로 기록하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 그러나 이 광경들에 주목하려 해도, 시선은 자꾸만 크게 뜬 눈으로 웃어 보이며 시선을 빼앗는 도널드 글로버에게로 돌아간다. 큰 눈으로 웃는 낯을 짓던 글로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환멸의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는 기관총을 받아 무고한 합창단원들을 학살한 뒤 무심히 노래를 계속 한다. “이게 미국이야. 얼빠져 있지 마. (This is America. Don’t catch you slippin’ now.)”
지난 5일 유튜브를 통해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이후, 인터넷은 뮤직비디오의 내용을 해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훈고학 논문으로 가득하다. 너도 나도 이 논란의 비디오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매달린 결과, 뮤직비디오는 열흘 만에 조회수 천만을 훌쩍 넘겼다. 글로버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엔터테인먼트에만 주목하느라 세상의 중요한 이슈를 못 보고 지나가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내용의 뮤직비디오를 분석하느라, 또 다른 뉴스들을 그냥 흘려 보내고 있는 세상을 글로버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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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