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영화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화면 속 주인공의 표정을 흉내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감정을 이입하는 상대의 행동이나 표정을 따라함으로써 동질감을 표현하고자 하는 무의식이 작동해서 그렇단다. 그래서일까. JTBC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나면 어쩐지 턱이 얼얼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부조리 앞에서 체념하는 법 없는 초임판사 박차오름(고아라)이 지긋이 이를 악무는 걸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같이 턱에 힘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노파의 사연에 함께 오열하고, 부장판사의 무리한 업무지시 때문에 쓰러진 동료를 위해 주변의 손가락질에도 판사회의를 소집하려 나서는 박차오름은 좀처럼 타협 같은 걸 모른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제 진심을 더 유한 언어로 돌려서 표현하는 능숙함을 배우지 못했다. 서툰 진심은 공격성으로 오인당하고, 그런 세상을 설득해야 하는 박차오름은 자주 이를 악문다.
부족하고 서툴어 좌충우돌하는 청춘은 고아라가 꾸준히 고득점을 기록해 온 그의 주 전공분야다.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KBS <반올림> 시리즈의 옥림은 다혈질에 말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는 주제에 스스로 나이보다 성숙하다 믿었던 중학생이었고, tvN <응답하라 1994>의 나정은 술에 취하면 개가 되어 사람을 문다는 이유로 파트라슈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던 대학생이었다. SBS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어떤가? 다른 이들에 비해 화려하지 않은 스펙과 완만하지 않은 성질머리를 뻔뻔함과 근성으로 돌파하는 그의 캐릭터는 이름부터 ‘어수선’이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연갈색의 눈동자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주목했던 소속사는 고아라에게 신비주의 전략을 제안하며 “인형처럼 살라”고 했지만, 그렇게 인형처럼 살며 냇가의 조약돌처럼 맨질맨질한 역할을 맡던 시절의 필모그래피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거칠고 모난 청춘의 모습 그대로 직진하는 역할을 맡았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고아라에게 마음을 열었다. 인형으로 살기엔, 고아라가 지닌 온도가 너무 높았다.
작가인 문유석 판사가 원작 소설을 <한겨레>에 연재하던 시절에도 그랬지만, 박차오름은 온전히 좋아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인물이다. 공명정대해야 하는 판사치고는 지나치게 뜨겁고, 그 뜨거움은 종종 저울을 한 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박차오름의 성장을 응원하며 계속 드라마를 보게 되는 힘의 상당 부분은, 박차오름을 연기하는 고아라가 오랫동안 쌓아온 청춘의 초상에 대한 신뢰에서 온다.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 앞에 좌절하면서도 쉬지 않고 달려가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짱돌 같은 청춘. 오늘도 화면 속 고아라는 턱이 밀려나올 때까지 이를 악물며 진심을 전하고 현실을 바꾸려 노력할 테고, 그 온도에 전염된 시청자들의 턱 또한 새끼손톱 하나만큼은 따라 밀려나올 것이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