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 똑똑~
의정 : 안녕하세요, 지혜 님!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나갔어요. 잘 지내셨죠?
지혜 : 잘 지냈죠. ㅎㅎ 항상 한 달은 훌쩍훌쩍 잘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6월에는 연휴가 두 번이나 있어서 더 빨리 간 것 같아요.
의정 : 금요일과 월요일이 몇 번씩 반복되는 느낌이었죠. 7월에는 빨간 날이 하나도 없으니, 잘 즐겼다 생각하겠습니다. ㅠ.ㅜ
지혜 : 광복절을 기대하면서 오늘 대화, 시작해볼까요? 저는 지난달에 이어 시집을 갖고 왔어요. 음… 심각하고 두꺼운 벽돌 책을 후보로 뒀었는데, 며칠 전 정말이지 오랜만에 ‘너무너무너무 좋잖아!’ 싶은 시집을 만났기 때문에요. 선택을 바꿔보았습니다.
의정 : 너무가 세 번 들어간 책! 어떤 시집인가요?
지혜 : 유희경 시인의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입니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08번째 책인데요. 4월 6일에 출간되었으니 두 달이 넘었지만, 나름 따끈한 시집입니다.
의정 : 신? ‘God’의 신인가요? ‘신발’의 신?
지혜 : ㅋㅋㅋ 여러 의미로 읽을 수 있을 텐데요. 신발의 신은 아닌 걸로! 의정님의 선택도 궁금합니다.
의정 : 일본 소설을 골라 왔습니다. 이부키 유키의 『컴퍼니』 ! 표지에는 점프하는 샐러리맨 사진과 함께 '47세 총무과장, 오늘부터 발레단으로 출근합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죠.
지혜 : 47세 과장이라...;;
의정 : 표지만 보면 <쉘 위 댄스>처럼 중년의 남성 샐러리맨이 춤에 눈을 뜨고 인생이 바뀌는 내용이라고 생각하실 텐데요. 회사 합병으로 좌천당할 위기에 놓인 주인공이 연말에 있을 발레단 공연을 성공시키라는 미션을 받는다는 줄거리예요. 그나마 현실에 가까운 내용이랄까요.
지혜 : 와! 발레단. 왠지 이거 실화일 것 같기도 한데, 아니겠죠? 현실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개인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조직의 결정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분노…) 그러나 소설은 왠지 매우 재밌을 것 같고, 킥킥대며 읽다가 곳곳에 쓰디쓴 문장도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의정 : ㅋㅋㅋㅋ 급 감정이입하셨어요 ㅋㅋㅋ 말씀하신 대로 회사는 회장 딸이 속해 있는 발레단을 후원하고, 주역은 교체되고, 티켓은 팔리지 않고, 공연에서는 위기가 터지고.... 우리 회사와 비슷한 내용도 있습니다만(자체 검열) 흠흠, 하지만 회사의 불합리함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아니라서 그렇게 답답하지는 않습니다.
지혜 : 아하! 그렇다면 더 궁금해지는군요. 그런데 작가님이 편집자 이력이 있네요? 유희경 시인도 편집자로 오래 일하셨으니, 이번 달 저희가 소개하는 책이 공통점이 있네요.
의정 : ‘소오름!’ 이것이 바로 평행 이론! 며칠 전 저희가 <책읽아웃> 공개 방송을 통해 유희경 시인을 뵙기도 했었죠 ㅎㅎ 시집은 어떤가요? 유희경 시인의 인상이랑 시가 비슷했는지 궁금해요.
지혜 : 인상과 시. 어려운 질문인데요. 아마 시인을 잘 모르고 평소 시인의 말투, 행동을 본다면 시는 좀 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저는 유희경 시인을 어떤 작은 업무 때문에 몇 번 연락을 해봤던 터라, 시인의 인상과 비슷한 시라고 여겨졌습니다. 표제인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이란 시가 각 장을 여는데요. 같은 제목으로 두 편의 시가 있고요. 3장을 여는 첫 시는 '들'을 보태어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것들」입니다. 저, 근데 진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의정 : 무엇일까요?
지혜 : “신? ‘God’의 신인가요? ‘신발’의 신?” 이 질문, 웃기려고 하신 건지? 아니면 신발의 '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신 건지요.?
의정 : 하하! 반반입니다 ㅋㅋㅋ 아마도 다른 뜻이겠지 싶으면서도, 시 안에서는 뭐든 일어날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어떤 사람이 신(발)이었다면 뭔가 새로운 세계가 나오지 않을까요?
지혜 : 와우~ 신발을 '신'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평범하지 않은 2018년에.. 흠 ;;; 삐질삐질. 저는 시적 감수성이 적은 탓인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어요.
의정 : 너무 20세기 감성인가요?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죄송합니다....
지혜 : ㅋㅋㅋ 너무 신박한 연상이다 싶었습니다! ㅋㅋㅋ
의정 :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요. 같은 제목으로 두 개의 시가 있다면, 두 개의 분위기가 완전 다른가요?
지혜 :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하시다니.. ㅠ.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두 시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물론 분위기는 다소 다르지만요. 결국 타인, 사람, 관계를 말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제 사소한 감상을 보탠다면, 저는 1장을 여는 시가 더 좋았습니다. 첫 시구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떤 인칭이 나타날 때 그 순간을 어둠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지혜 : 제가 방점을 찍은 단어는 '인칭'입니다. ‘신’은 독특한 인칭으로 볼 수 있잖아요... (아, 뭔가 진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니 여기서 그만…)
의정 : 자연스럽게 제가 고른 책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사실 저도 중년 남성이 발레를 하는 이야기인 줄 알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요새 몸을 움직이는 데 관심이 있어서요. 원래 그런 예체능(?)물 좋아하기도 합니다.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같은 이야기들이오. 이 책에서도 뜨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혜 : ㅋㅋㅋ 어울립니다. 제가 의정 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농구, 피아노, 보신주의자, 연극, 단호박. 그런 것들이에요.
의정 : 점점 키워드가 늘어나는데요?! 이러다가 제 소개만으로 '너는 왜 이 책?' 지면을 뺏는 것이 아닐지...! 그나마 발레는 하지 않습니다. ㅋㅋㅋ
지혜 : (발레를 하는 의정 님 모습이 무진장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는 ‘삼천포책방’ 팀이 아니니 ‘어떤, 책임’을 갖고 말을 이어가자면, 제가 유희경 시인의 시들을 더욱 눈여겨보게 된 계기가 하나 있어요. 시인님이 <조선일보>에 '유희경의 일상시화'를 연재 중인데요. 언젠가 이런 문장을 쓰신 적이 있어요.
무엇이든 효율적이어야 하는 세상에서 시 읽기는 어떤가. 쉽게 질러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멀리 돌아가는 흙길처럼 불편하고 느린 것이 아니겠는가.
지혜 : 얼마 전 유희경 시인님을 뵈었을 때 시집에 ‘아들 이름으로 사인을 받을까’를 잠깐 고민하다 제 이름으로 받았는데요. (아들이 시를 읽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내 마음이… 아들에겐 어떤 부담이 될지도 모르니) 다섯 살짜리 아들을 두고 진지한 고민을 했는데요. 아시다시피 유 시인님은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 주인이잖아요. “어떻게든 이 서점이 없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집을 읽으니 어떤 묵직한 뭔가가 느껴졌어요.
의정 : 말씀하신 걸 들으니 '신이었던'이 간절한 기도의 느낌도 들게 하네요. 시집 서점이 없어지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
지혜 : ㅎㅎㅎ 시 밖에서 뵐 때는 ('유희왕'이라는 별명도 있듯이) 굉장히 천진한 인상이 있었는데요. 메일에서 느껴지는 문장의 온도는 확 다르더라고요. (저는 이런 이중성 매우 매력적으로 느낀답니다만)
의정 : 유희왕 ㅋㅋㅋ 그 별명 참 좋아합니다. 시집 서점 주인은 유희왕이라 불릴 자격이 있죠. 살짝 바통을 넘겨 받으면, 『컴퍼니』 에서는 '왕의 재능'이라고 일컫는 천부성을 이렇게 말해요.
“그건 타고난 신체 능력이나 적성이 아니야. 물론 그게 없으면 최고 자리에 설 수 없지만 그 전에 필요한 재능이 있어."
"그게 뭡니까?"
"열중하는 것. (...) 좋아하게 되는 것. 하루 종일 그것만 생각해도 힘들지 않고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는 상태." -359쪽
의정 : 크... 이 유치 찬란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대사를 보고 있자면 어디라도 가서 뛰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지혜 : ㅋㅋ 좋으네요. 열중하는 것, 좋아하게 되는 것. 여기서 제가 한 문장 보탠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
의정 : '좋아요' 200개 누르고 갑니다. 내친 김에 만화 영화 같은 장면 하나만 더 소개해 드릴게요.왕도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대사!
"미나미 씨, 갈까요?"
마음을 담아, 아오야기는 기계실 문을 연다.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49쪽)
지혜 : 기다린다는 표현은 진부하지만, 당신을 세계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당신을 기다린다고 하니 뭔가 다른 느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의정 님한테 진지하게 궁금한 게 생각 났습니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끌리는 인물이 궁금해요. 의정 님이 연민을 갖게 되는 인물, 그 인간형이 궁금.
의정 : 아까 어려운 질문했던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끙. 꼽아보자면... 채치수와 한나예요. 채치수는 3학년으로 전국대회 진출에 실패한 걸 받아들이는 부분이, 한나는 실력으로 뒤지지 않으면서도 남자들의 세계에서 선수로 끼지 못하는 부분이 연민을 갖게 하네요. (이렇게 또 진지왕의 자리는 저에게로...!)
지혜 : 진지왕 님이 유희왕 님과 언제 북토크 한번 진행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여기서 잠깐! 어려운 질문 하나 드릴게요. 오늘 의정 님이 고른 책이 『컴퍼니』 잖아요. 컴퍼니에서 일할 때, 가장 답답스러운 인간형은 누구입니까? (오늘은 왠지 의정님 인터뷰 기사로 흘러간다~~~)
의정 : 핫! 정말 재미없는 대답이지만, 그때그때 다릅니다. 책에서 컴퍼니는 회사를 뜻하기도 하지만, 발레단을 뜻하기도 하고, '동료'라는 뜻도 있거든요. 어디서 일하든 사람들과 불화는 있게 마련이고, 그 와중에서도 어느 부분에서든 가치는 있게 마련이죠. 이렇게 말하고 보니 책의 열정이 너무 활활 타올라서 저도 감화를 받았나 싶기도 하네요. 다른 책을 읽었다면 '이 사람이요! 저 사람도 싫어요! 요 사람도!' 하면서 마구 지목했을지도...;;; 역으로 질문 드려볼까요? 지혜 님이 답답해하는 인간형은 누군가요?
지혜 : 한 큐에 일 처리 못하는 사람? 저 잔소리하는 거, 같은 말 반복하는 거 엄청 싫어하거든요. 척 하면 딱 알아듣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긴 말 하고 싶지 않아요. 제 성대는 소중하니까요. ㅠ
의정 : 뜨끔!!!
지혜 : 저 역시 뜨끔!! ㅎㅎ (다시 정색하며) 제가 오늘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을 들고 온 이유는 시를 읽으며 시인이 그 시를 쓸 때의 마음이 상상되고, 그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더불어 내 이야기가 막 쓰고 싶어졌는데요. 이런 기분이 너무 오랜만이었어요. 시인은 신문 지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생각해보면 시를 쓰는 일도, 시를 읽는 일도 '질문하기'와 다름없다. 시인은 '모르는 사람'이다. 일상의 '당연한 일'을 시인은 탐구한다.
지혜 : 저는 이 문장이 좋아 메모해놓았는데요. 당연한 것들을 탐구하는 시인들의 귀함, 그 드문 마음이 느껴져, ‘이 시집은 진짜 천천히 오래 읽어야겠다’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유희경 시인은 독자를 생각하는 분이라 좋아합니다.
의정 : '나도 이렇게 쓰고(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의 기준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책은 둘 다 좋은 책인 걸로!
지혜 : ㅎㅎㅎ 이 코너 ‘너는 왜 이 책을?’의 백미죠? 인사하기 전에 가장 좋았던 문장을 하나씩 소개합시다.
의정 : 소설의 줄거리 속에서 읽으면 찡한 대사를 하나 알려드릴게요. 무언가를 지망했었던, 후보생이었던 사람들에게 이 문장을 주고 싶어요.
선수 생활을 할 때는 그게 세상의 전부라 그만두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의 인생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지혜 : 「지난날의 우주와 사다리와」에 나오는 시구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이제
이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다시 책을 꽂는 것이다
책을 꽂다가 꽂을 것이 남지 않으면
아무거라도 하나
떨어뜨려보고 싶은 마음이
지혜 : ‘아무거라도 하나 떨어뜨려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읽어주고 싶은 마음, 알고 싶은 마음… 유희경 시인님은 아실까요?
의정 : 이 마음, 독자들도 아실런가요? 읽어보시면 아실 텐데요?! 오늘도 열심히 영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슬슬 인사 드려야겠죠? 더위 먹지 마시고 행복한 책 읽기 되시길요~!
지혜 : 7월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