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그림책의 시작은 어머니의 한마디로 시작된다고, 작가 약력에 쓰여 있습니다. 어머니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궁금해요.
어머니와 같이 콩깍지를 까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전쟁 통에 먹을 게 없어서 콩잎을 푹 끓여 드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밤에는 그 콩밭 도랑에 숨어 밤하늘을 보니 너무 예뻤다는 얘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콩깍지에서 콩잎으로, 콩밭 도랑으로, 밤하늘에 빛나던 별빛으로, 이렇게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마침내 전쟁 이야기까지 확장된 거예요. 어머니 이야기에 더해 아버지가 겪으셨다고 전해 들었던 이야기, 삼촌들 이야기, 이웃 이야기 등등 이야기가 자꾸 이어졌어요. 전쟁을 겪은 개인들의 이야기들이 모여 그 시대의 이야기가 되었지요. 여러 이야기들이 합쳐져 그때 상황들을 떠올려봤어요. 제가 겪은 일이 아니니까, 여러 감정들을 짐작해 봐야 했지요. ‘콩이 자라봐야 키가 그리 크지는 않았을 텐데 거기에 숨었으면 불안하지 않았을까?’ ‘분명 참혹하고 무서웠을 텐데 그 와중에 어떻게 하늘이 예쁠 수 있었을까?’ 그런 질문들이 떠올랐어요. 이해가 바로 되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지금의 표지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졌어요. 잊어버릴까 싶어, 콩깍지를 까다 말고 부랴부랴 먹으로 러프하게 스케치를 그린 뒤, 앞뒤에 살을 붙여 스토리보드를 구성했어요.
글, 그림을 같이 작업한 책은 오랜만에 나온 것 같아요. 『숨바꼭질』 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나요? 책이 나온 뒤는 어떠세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숨바꼭질』 을 처음 기획한 시점은 2008년, 2009년 즈음이었어요. 진짜 오래 걸렸죠? 다른 책 그림 작업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10여 년 만에 출간되었어요. 처음에는 시대물이라서 시작할 엄두를 쉽게 내지 못했어요. 『숨바꼭질』 을 실질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시점은 3년 전부터예요. 원화는 1년 정도 걸렸지만, 스케치하고 판형 문제로 고민하고 또 여러 종이에 테스트도 해 보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어요. 판화로 찍어 보기도 했었고요. 그러다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물론 저의 게으름이 한몫 단단히 하긴 했어요.
책이 출간된 뒤에는 오히려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보통 원화를 끝내면 홀가분하게 손을 툭툭 터는데 『숨바꼭질』 은 달랐어요. 엽서 이미지들을 그리고, 스탬프도 직접 파서 제작하고, 에코백에 찍어 보고 이런저런 딴 짓(?)을 하며 혼자 놀기를 열정적으로 했지요. 원화를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아마 너무 오랫동안 두 순득이와 함께하다 보니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았나 봐요. 특히 슬픈 이야기다보니 엽서에서라도 행복한 두 아이를 그리고 싶었지요. 엽서가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다시 만난 모습일 수도 있겠다, 그런 바람을 가져 보았지요. 이제는 『숨바꼭질』 처럼 예전에 기획하고 아직 작업하지 못한 새로운 책을 진행해야겠다고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있어요. 이번엔 또 어떻게 그려볼까, 이런저런 궁리도 하고 있고요.
그림책을 읽으면 두 아이의 엇갈린 운명이 정말 가슴 아파요. 어린 소녀들이 서로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숨바꼭질 노래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두 순득이의 감정을 작가로서 어떻게 포착하고, 어떻게 드러내려고 했는지 알고 싶어요.
비록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우리 모두가 크고 작은 이별을 경험하잖아요.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 감정이 있었어요. 키우던 개, 점박이가 집에 와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떨림으로 대문을 살짝 열어보곤 했던 마음이 기억나요. 또, 아빠를 굉장히 어린 나이에 잃었는데 어린 저는 아빠가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듣고 언젠간 ‘돌아가셨으니 돌아오실 거야’라는 기대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요. 이런 마음이 순득이와 같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제가 느꼈고 현재도 느끼는 그런 감정들을 되뇌며 순득이들과 공감했던 것 같아요.
6.25를 아이들의 숨바꼭질 놀이에 빗대어 보여 주는 구성이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전쟁을 이렇게 보여 줄 수 있구나 하는 의견도 많고요. 숨바꼭질 놀이의 구조가 그림책 안으로 녹아들면서 고민되는 지점들은 무엇이었나요?
『숨바꼭질』 을 보면 두 명의 술래가 있어요. 첫 번째 술래는 양조장집 박순득, 두 번째 술래는 자전거포집 이순득이지요. 하지만 사실상 술래는 전쟁이에요. 전쟁을 피해 꼭꼭 숨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책 속에서 전쟁을 술래로 할 수는 없었어요. 너무 무섭잖아요.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전쟁의 무서움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아픔이었어요. 술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면서 문구를 여러 번 곱씹어 보았지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문구에서 양면성이 읽히더라고요. 술래 입장에서는 꼭꼭 숨으면 찾기 힘들지 않을까요?
놀이를 위해서 꼭꼭 숨어야 하지만, 찾을 때는 금방 찾고 싶은 게 술래의 마음이지요. 우리에게 익숙한 이 노래에 순득이들의 마음을 담아 보았죠. 순득이들이 번갈아 술래로 하고, 술래이지만 꼭꼭 숨기를 바라는 친구로서의 마음, 특히 전쟁조차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꼭꼭 숨되, 친구인 자신들은 쉽게 찾았으면 하는 마음을 넣었어요.
노래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해님이 찾을라 꼭꼭 숨어라” 하고 부르는 부분이 있어요. 해님이 찾지 못하면, 전쟁도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을 담은 것이지요.
책 속에 아이들의 천진한 느낌이 주는 울림이 있어요. 피난을 가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기도 하고, 물을 건널 때는 왠지 물장난을 치는 듯한 표정이 스치지요. 감성적인 장면들은 어떻게 잡으셨는지요?
당시 아이였던 어머니의 시점을 그대로 녹여 보았어요. 사실 어른이라면 콩밭에 누워 그 예쁜 하늘을 볼 수 없었을 거예요. 내일은 잘 피난갈 수 있을까? 자는 동안 폭격이 있으면 어쩌지? 이런 걱정을 했겠지요. 게다가 등은 축축하고 벌레도 많은 불편한 잠자리가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라면 달랐을 것 같아요. 마냥 밤하늘의 별을 보며 예쁘다고 좋아하기도 하고, 다리가 끊긴 낙동강을 건너며 첨벙첨벙 물놀이하듯, 즐거워 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힘든 상황이지만 친구 순득이를 다시 볼 마음을 늘 간직했을 테고요. 전쟁도 어찌할 수 없는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순득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상상하며 그렸어요.
그림책을 보면 그 시대의 가옥이나 의복 등이 드러나 있어요. 달성에서 부산 피난 촌까지 다녀오는 시기도 꼼꼼히 점검된 것 같고요. 배경의 사실성은 어떻게 확인하고 그리셨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철저히 고증하지는 못했어요. 많이 부족하지요. 그리고 핑계이기도 하지만 한국전쟁 그 자체나 실상에 대해 얘기하기보다 ‘전쟁’과 같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아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었어요. 전쟁의 무서움보다 아픔이 훨씬 길고 강하게 현재까지 더 크게 남아 있으니까요. 전쟁을 보여 주는 데 초점을 맞춘 게 아니어서, 실제 당시 전쟁을 겪었던 분들이 보시기엔 많이 미흡하고 또 맞지 않은 부분도 많을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제 머릿속의 상상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에요.
전쟁기념관에도 가고 관련 책자도 사 보고, 인터넷으로 당시 사진들도 닥치는 대로 수집해서 참고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머니께 물어보곤 했지요. 다행히 어머니가 기억 속의 그때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어머니도 정확히 어디까지 피난 가셨는지는 어릴 때라서 기억은 못하셨지만 2~3개월 정도의 기간이라고 기억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아마 낙동강 건너 피난 촌이 형성되었던 부산까지 다녀오셨을 거라 가늠할 정도였지요.
편집부에서 많이 도움을 주었고요. 비행기 모양이라든지, 폭파된 다리라든지 이런 자료도 같이 찾아 주었어요. 문장을 다듬으면서 없어졌지만 초고에 있던 ‘쌕쌕이’의 정확한 의미도 짚어주었고요.
아이들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순득이 어떻게 된 거야?’ 하고 어른들에게 묻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너무 슬프다고 하고요. 엔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엔딩을 두고 어떤 고민들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정말 가장 많이 고민되었던 부분이었어요. 누구보다도 양조장집 순득이와 자전거포집 순득이를 꼭 다시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와 아픔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양조장집 순득이가 마지막까지 돌아오지 못한 걸로 마무리했어요. 그럼에도 여지와 희망은 주고 싶었어요. 점박이가 폐허가 된 양조장에서 양조장집 순득이 신발을 주워 와요. 거의 포기했던 자전거포집 순득이는 점박이가 가져다 준 친구의 신발을 보고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를 기다리며 작은 희망을 품지요. 그리고 뒷면지에 보시면 순득이가 자전거에서 내려요. 무언가를 본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순득이는 순득이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전작 가운데 『내동생 김점박』 이 있지요. 이 책에도 점박이가 나옵니다. 물론 『내동생 김점박』 에 나오는 점박이랑, 『숨바꼭질』 점박이가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요. 점박이는 앞으로 작가님 책에 계속 나올까요?
점박이는 제가 그림책작가로 살아가게 된 첫 단추였어요. 대학원 재학 시절, 첫 과제가 ‘딜레마’에 대한 일러스트레이션이었어요. 그런데 그 단어를 듣자마자 생각난 것은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 점박이와 새로 들어온 아기 강아지(푸들이었던 것 같아요)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던 일이었어요. 이 일이 저의 6살 인생 최대 딜레마였어요. 그때 그렸던 이미지를 보여 드릴게요.
그 덕에 『내동생 김점박』 이 출간되었고, 저의 그림책작가 인생이 시작되었어요. 점박이는 항상 제가 왜 그림책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시발점이에요. 아마도 점박이는 계속 등장할 것 같아요. 마치 불사조처럼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점박이를 화면에서라도 뛰어 놀게 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책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으세요?
서현 작가님의 『간질간질』 처럼 재미있는 책이요! 정말 너무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그림책들이 많은데요, 저도 그런 책을 하고 싶어요. 이상하게 계속 조금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의 그림책들을 작업했는데요, 그림에 힘을 뺀, 그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그런 그림책을 하고 싶어요. 물론 순득이처럼 필요한 이야기들을 더 하고 싶어요. 어쩌면 조금 무거울 수도 있겠지만 또는 무서울 수도 있겠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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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김정선 글그림 | 사계절
늘 같이 다니는 두 아이는 어느 날 새벽, 영문도 모른 채 헤어지게 됩니다. 전쟁이 터지고 피난이 시작된 것이지요. 작가는 아이들의 상황을 숨바꼭질 놀이에 비유합니다.
이지연 (어린이책 편집자)
어린이책 편집자입니다. 작가와 연애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만듭니다. 연애에는 소질 없는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