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까운 타인
최선의 노력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아이와 긴 소통을 해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글ㆍ사진 김성광
20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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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졌지만 내가 좌우할 순 없는 일들이 있다. 회사생활도 그렇다. 회사는 말이 아닌 숫자로 지시한다. 내 이름 옆에 매출 목표를 기록해둔다. 나는 1년에 몇 백 억 단위의 책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목표의 달성 여부는 나의 노력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도서 판매는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드라마에 소개된 책이 화제가 되거나, 유명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거나, 대통령의 인기가 어마어마하면 관련 도서의 매출이 올라간다. ‘페미니즘’ 같은 담론의 부상이나 ‘1인 가구의 증가’ 같은 사회상의 변화도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런 변화를 재빨리 읽고 관련 도서를 기획하는 출판사 역할이 크다. 출판사에서 새로운 책을 계속 내지 않으면 서점에 새로운 매출이 있을 수 없다.

 

서점 담당자는 더 많은 매출을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변화가 도서 구매로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재고를 잘 갖추고 출간 소식을 널리 알리고 맞춤한 굿즈를 기획한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보조하는 입장이고, 매출목표 달성은 상당 부분 다른 요인에 좌우된다. 목표는 내 것이지만 목표를 달성할 수단은 내 손에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런 것 같다. 모든 부모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목표와 책임을 부여 받지만, 실제로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부모가 온전히 좌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성장과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그에 맞게 적절히 개입해 아이를 '올바른 인간'으로 길러낸다는 생각은 사실상 판타지다.

 

만 26개월인 딸은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닌다. 사회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올려주시는 사진 속 아이가 반갑고 사랑스럽고 가끔은 낯설다. 처음 어린이집에 감기약을 보내며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약을 먹을 때마다 난리통이었기 때문이다. 버둥대는 아이의 팔다리를 결박하듯 붙잡고 겨우 벌린 입에 약을 흘려 넣는다. 엄마 아빠와도 잘 먹지 않는 약을 과연 선생님과 잘 먹을 수 있을까. 이런 우려가 무색하게 웬걸. 어린이집에선 약도 꽤 잘 먹는다고 한다.

 

집에서 쓰거나 본 적 없는 말과 행동도 급속도로 늘었다. 늘 어지럽히기만 하던 딸이 무려 정리를 하고, 엄마가 아픈 날은 두 손 모아 예쁘게 기도도 한다. 반면 아빠에게 “하지 마! 만지지 마!” 명령조로 큰소리치는 경우도 생겼다. 아내와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그사이를 비집고 와 외친다. “이야기하지 마!!” 엄마 아빠가 수비해야 할 범위가 빠르게 늘어간다.

 

‘거부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것은 물론 아이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 의사를 보다 사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은 부모에게 주어진 기본 역할이다. 하지만 아이가 그런 말을 꽤나 강한 어조로 하게 된 맥락을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지며 훈육을 해야 할 지 고민이 된다. 아이에게 엄하게도 말해보고, 조곤조곤 설명도 해보고, 행동을 제지하기도 하지만 그 각각의 대처가 아이의 마음에 어떤 무늬를 그리는지는 부모라고 해서 알 수가 없다. 결국 아이도 아주 가까운 “타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타인의 삶을 계획표대로 인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정규 교육과정이 있어도, 심지어 대한민국처럼 붕어빵 찍어내기 같은 교육과정이 있어도,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으로 자란다. 부모가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어마어마하고, 그 의미를 축소함으로써 스스로의 책임을 가볍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만, 동시에 부모라고 해서 아이를 목표와 계획대로 인도할 수단이나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면, 부모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제 27개월 차인 초보 부모가 답을 쥐고 있을 리 없다. 다만 육아라는 긴 여정에서 아이의 현재와 아이가 다다라야 할 모습 사이의 거리를 계속 재기보다는,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선의 노력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아이와 긴 소통을 해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좋은 육아가 될 수 있다 믿는다면 너무 낙관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머리 속에 선연히 떠오르는 어떤 문장을 지금의 나는 믿어보게 된다. 아이가 잠든 새벽에, 이 문장을 오래 매만지고 있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 그건 우리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의 영혼에 어떤 문장이 쓰여지느냐는 것이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260쪽


 

 

소설가의 일김연수 저 | 문학동네
신년 독서 계획과 짧은 여행, 크고 작은 만남과 인상 깊게 본 영화와 자전거를 도둑맞은 이야기까지, 사소하고도 다양한 일상들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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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