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표기식
“내년이면 20년 차가 되는 전업 작가”(9쪽)는 그러나 계속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생계가 되지 않는 소설을 붙들고 있어도 될지, 회의감이 들었죠. 바로 그때 ‘소설의 신’이 그에게 손을 내밉니다. 돈키호테에 관한 글을 쓰는 조건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지던시에 3개월간 머물 자격을 선사한 것인데요. 이것이 김호연 작가가 『불편한 편의점』으로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기 바로 전의 일이었습니다.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는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 김호연 작가가 스페인의 유서 깊은 레지던시 ‘헤지덴시아 데 에스튜디안테스’에 머물던 때를 담은 여행기입니다. 작가는 그곳이 “다시 꿈꿀 수 있도록 해준 인생의 스프링캠프”였다고 말해요. 모기가 없는,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는, 아름다운 유산이 곳곳에 숨어 있는 스페인 곳곳을 그리는 이 이야기가 무엇보다 ‘돈키호테’라는 저마다의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하는 이야기인 이유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걷다 보면
부제가 ‘포기하지 않으면 만나는 것들’이에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셨어요?
누구나 지지부진하고, 넘어지거나 좌절하는 때가 있잖아요. 왜 빨리 안 될까, 싶고요. 그런 분들, 스스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읽고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분들에게 쉴 수 있는 작은 공간, 오아시스나 영양제를 건네는 느낌으로 쓴 거죠. 김호연 작가에게도 이런 과정이 다 있었구나, 하면서 기운을 낼 수 있도록 말이에요. 뭐든 빨리 되는 건 없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걷다 보면 한 번쯤 좋은 일도 생긴다, 자신의 ‘업’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마치 돈키호테처럼 말이죠.
사실 지금이야 조금 알려진 작가가 됐지만 제 네 번째 소설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생계도 쉽지 않았죠. 소설만 써서는 생계가 안 되니까 시나리오 작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좌절했던 때였는데요. 돈키호테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는 제안서가 선정된 거예요. 돈키호테의 행보나 그 작품을 쓴 세르반테스의 일생은 모두 궁색하고 찌질하고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요. 그 메타포가 극적인 순간에 찾아온 거예요. 그들을 따라가다 보니까 저도 저만의 도전을 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말씀처럼 돈키호테와 작가님의 ‘계속 하는 마음’이 절묘하게 맞물리거든요. 돈키호테여야 했구나, 하고 실감했던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원래도 돈키호테를 좋아했어요. 제가 2013년,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장이 이순원 선생님이셨거든요. 이순원 선생님이 그때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돈키호테랑 산초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우리는 이들을 살아있는 캐릭터로 이해하고 있다, 소설가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이다, 라는 거였어요. 그 말씀이 정말 좋았어요. 그 전에도 돈키호테를 좋아했지만 그 말씀을 듣고 돈키호테를 재인식하게 됐죠. 그러다가 스페인에 지원하려면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의 고전에 대해 써야겠다는 데 생각이 연결됐고요. 그것들이 제대로 맞물렸던 것 같아요. 사실 되게 인기 있는 사업이라 안 될 줄 알았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운명은 밀당에 능하다”(10쪽)는 문장이 떠오르네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운명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어떤 일은 사후에 해석되기도 하지만요.
선정된 그 당시에는 그저 스페인 가서 좀 쉬어야 되나, 정도였어요. 다시 소설을 쓸 강력한 동기를 찾겠다는 생각보다 약간 숨이 트인다는 느낌이었죠. 스페인에 가서 재충전도 하고, 용기도 얻고, 소설 『나의 돈키호테』도 최대한 준비하자는 마인드였던 것 같아요. 일단은 가서 부딪혀 보자, 했던 기억이 나요.
숨이 트인다는 말씀이 마음 아프네요. 스페인에 가기 직전까지 작가님의 상황이 어땠는지 짐작하게 되고요. 번아웃이었을지 모르겠다고 쓰셨잖아요.
인식 못하고 있었지만 그랬던 것 같은데요. 시간이 지나 그때의 상황을 돌아보고, 정리하니까 운명이 밀당에 능하다거나 번아웃까지 왔을지 모르겠다거나 그곳에서의 시간 덕분에 다시 소설을 쓸 기운을 얻었다는 걸 깨닫는 것이지 당시에는 그저 급급했어요. 대책 없이 갔을 뿐이에요. 다녀오면 다시 생계 걱정을 해야 했으니까요.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죠. 레지던시에서 먹여도 주고 재워도 주지만 어느 정도의 체재비는 있어야 하잖아요. 취재하려면 여행도 해야 하고요. 그러니까 가서 부딪치기 바빴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또 죽었다 생각하고 일해야지, 생각도 했고요. 아무튼 참 묘해요.
심지어 코로나 직전 시기였다는 것, 그 점도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에요.
한국에 돌아오고 두 달 있다가 코로나가 터졌어요. 돌아와서도 당장 저는 돈을 벌기 위해 시나리오를 써야 했는데요. 영화 일감을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코로나로 영화계가 힘들어졌잖아요. 와중에 한국에 돌아와 곧바로 돈키호테 소설을 쓸 용기는 없었어요. 조사한 자료도 많았고, 『돈키호테』 자체도 대작이라 패러디도 너무 힘든 일이니까요. 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게다가 이전의 소설들이 잘 안 돼서 책 계약도 쉽지 않았고요. 아시겠지만 어차피 소설의 계약금도 얼마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시나리오 빨리 써서 생계를 해결한 다음 돈키호테 소설을 써야겠다는 계획이었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쉽지 않았어요. 다행히 운 좋게 한 영화사의 일을 땄죠. 그렇게 급한 불을 끄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소설을 썼어요. 돈키호테 소설은 아니었고요. 예전에 쓰던 것을 집중해서 빠르게 썼거든요. 그 소설이 『불편한 편의점』이었어요.
사진 : 표기식
힘들어도 재미있으니까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교 인문학부의 학생 50명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어느 학생이 질문을 해요. 작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무슨 조언을 해주겠느냐고요. 작가님은 듣자마자 “Keep Going”이라고 답하는데요. 사실 그게 진짜 힘들잖아요. 작가님에게는 관두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지칠 때, 불안할 때 다시 일어나 킵고잉, 그러니까 계속하게 하는 비법이 있을까요?
비법까지는 아닌데요. 제 기준에서는 간단해요.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돼요. 좋아하는 일도 힘들어요. 일은 다 힘들잖아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들어도 킵고잉 할 수 있어요.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힘들어도 재미있는 일이니까, 내 인생을 바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싫어하는 일을 계속 하려면 힘들죠. 얼마 못 가서 포기하게 되거나 힘들게 그 일을 계속 하다 후회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래서 반드시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이미 성인이고 직장이 있는 사람이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으셔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일을 찾아 취미로라도 하는 거죠. 그것이 나중에 본업이 될 수도 있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들어도 킵고잉 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그런 일을 찾는 게 중요한데요. 학교나 사회가 잘 안 가르쳐줘요. 제가 논할 건 아니지만 다만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좋아하는 일, 몰두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기질이 있는지를 서른 전에만 알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하게 경험하고, 여행이나 알바도 하면서 어떤 일이 나를 심장 뛰게 하는지, 또 어떤 일을 내가 잘 습득하는지 발견하는 거죠. 저도 글 쓰는 게 힘들거든요. 그렇지만 좋아하니까 힘들어도 했다, 결론은 그것밖에 없더라고요.
그럴듯한 플랜B를 세우라고도 하셨죠.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소설을 썼죠. 완전히 다른 업종의 플랜B를 택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대안을 세운 거예요. 친구들 중에 시나리오만 파는 작가들이 있어요. 저는 잘 안 풀려서 힘들어하는 동료나 후배한테 소설을 써보라고 조언하거든요. 글을 오래 썼으니까 트리트먼트 두 편 써서 붙인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써보라고요. 그런 식으로 자기 분야 안에서 조금만 피보팅 하면 돼요. 편집자가 경력을 쌓다가 출판사를 차려서 1인 출판하는 경우도 있고요. 일러스트 작가가 정통 회화 또는 웹툰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많은 분들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는 게 쉽지 않으니까, 조금 유연하게 말이에요.
한 분야에 몰두해야 한다는 마음에는 일종의 완벽주의도 있는 것 같고요. 패배하고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도 큰 것 같아요.
이기고 지고가 어디 있겠어요. 인생은 그냥 배우다 가는 거잖아요. 또, 이긴 놈들이 다 잘 되나요? 걔들도 다 고꾸라져요. 언젠가 욕을 먹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거죠. 다만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최선을 다해 충실히 배우고, 경험해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는 편이 우리 인생에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저의 개똥철학 같은 거죠.(웃음)
E. L. 닥터로가 글쓰기는 밤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했거든요. 밤에 헤드라이트만 켜고 운전하면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길밖에 안 보이죠. 그런데 운전자는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분량만 생각해야지, 이거 언제 다 쓰냐고 생각하면 못 쓰는 거예요. 지금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곳만 보고, 쓰는 거죠. 그걸 잘 썼으면 되는 거고, 못 썼어도 내일 고치면 되는 거예요. 당장 오늘 명작이 안 나온다고 좌절하면 안 돼요. 마찬가지로 삶에 있어서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수정할 기회들이 있으니까요. 가끔 독자 분들이 첫 문장 쓰기가 힘들다고, 첫 문장이 중요하다는데 주저된다고 하실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저는 아무거나 쓰시라고 해요. 어차피 고쳐야 한다고요.
엉망인 초고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거군요.
그럼요. 세상에 잘 알려진 유명한 첫 문장들이 있잖아요. 그 문장들이 초고에 있을까요? 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봤던 모든 훌륭한 첫 문장이 한 번에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고친다, 그러니까 아무거나 시작해라, 꾸준히 쓰고 나면 첫 문장으로 쓰고 싶은 멋진 글귀가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진 : 표기식
곤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
작가님은 “작가에게는 사는 것이 쓰는 것이다”(217쪽)라고 하시는데요.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큼 일상을 사는 것이 쓰는 데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렸어요.
그렇죠, 작가는 안 쓸 때도 작품에 대해 생각하잖아요. 그것도 작업이에요. 창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아실 것 같은데요.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요. 광부가 집에 와도 재가 안 떨어진다는 말이 있듯, 창작자뿐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것 같아요. 일과 삶이 분리되고 워라밸을 유지할 수 있는 일도 있을 텐데요.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게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되게 단순하게 살려고 해요. 원래 비혼주의까지는 아니지만 가정을 꾸릴 용기도 없었어요. 결혼도 일종의 계약이고, 서로의 의무에 충실해야 하는데요. 창작에 집중하려면 그건 못할 것 같더라고요. 좀 집착이죠. 그래서 나는 그냥 단순하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인간관계도 최소한으로 하고요. 저는 지금도 모임 같은 것은 최대한 자제해요. 취미도 없고요. 그래서 외로워요.(웃음)
“나는 계속 우리들의 찌질하고 간절한 궁리와 궁여지책에 대해 쓸 것이다”(174쪽)고 한 것도 얘기해보고 싶어요. 작가님이 바라보는 것, 그러니까 내 소설의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죠. 대부분 곤궁하고요. 일단 소설이라는 건 사건이잖아요. 인간이 고난을 겪고, 그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스토리의 핵심인데요. 저는 그것들을 제 눈높이에서 찾는 거예요. 그런 점이 독자 분들이 보시기에도 자기 주변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고요. 물론 『파우스터』는 스릴러죠. 야구 스타 플레이어도 나오고, 국회의원도 나오는데요. 기본적으로 저는 나의 주변에 일어날 것 같은 얘기들을 쓰려고 해요. 그것을 통해 나도 저런 어려움이 있었지, 나라면 저럴 때 어땠을까, 하면서 공감하길 바라요. 더 나아가 그 안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서 질문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일상을 지극히 단순하게 살려는 마음과 내 주변의, 가까운 현실을 사는 보통 사람들을 담아내려는 마음이 어쩐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김구라 씨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 기억에 남아요. 사는 건 남들처럼 살고, 일하는 건 특별하게 일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요.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니까 평범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면서, 일에 있어서는 유니크하고 특출나게 해야 한다는 말인데, 크게 와닿더라고요. 저도 소시민으로 자랐고요. 지금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똑같이 경험하려고 노력해요. 못하는 건 책을 읽든 주변 얘기를 듣든 취재를 하든 하고요. 다만 제가 쓰는 이야기에 특수한 상황을 통해서 그런 부분들을 환기시키는 거죠. 그래서 공감과 이해, 나아가 질문까지 갈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이야기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게 작가의 일이니까요.
사진 : 표기식
흠뻑 빠져서 읽는 이야기
소설 쓰며 가졌던 희망이 두 개가 있었잖아요. 작품이 해외에 번역되는 것, 그리고 다른 콘텐츠의 원작이 되는 것이었는데요. 모두 이루었습니다. 지금, 새로 품게 된 희망이 있나요?
아직 없어요. 처음의 희망을 이룬 것만도 고맙죠. 제가 소설가로 이렇게 큰 영광과 사랑을 받을지 몰랐기 때문에 아직도 이것을 감당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요. 아직도 정신이 없고요. 그래서 회사의 도움이 엄청 커요. 저는 계속 외면해요. 이 상황을 만끽한다는 것도 웃긴 것 같거든요. ‘어제 내린 눈’이라고들 하잖아요. 어쨌든 저는 다음 작품을 해야 되는 거고요. 지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냥 다음 소설을 쓰는 게 중요해요. 왜냐하면 제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분들이 생겼으니까요. 그럼 써야죠. 물론 제가 대본 작가 출신이라 언젠가 좋은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요. 지금은 좋은 소설을 또 써서 제 소설을 좋아하신 독자 분들께 다가가는 게 가장 시급해요.
구상중인 작품이 있는 건가요?
예전에는 구상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항상 다음에 쓸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없어요. 그래서 올해는 아니다 싶은 것은 버리고, 발전시킬 것은 시켜서 다음 소설의 아이템을 잡는 것, 그것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정말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에요. 『파우스터』를 쓸 때는 『불편한 편의점』을 다음에 써야지, 했고 그것을 쓸 때는 끝내고 빨리 『나의 돈키호테』를 써야지, 했어요. 그것 외에 다른 이야기도 있었고요. 어쩌면 지금이 더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상업 작가니까요. 상업 작가로서 독자와 밀당을 해야 독자 분들도 좋아하실 거라서 다음 작품 구상이 좀 힘들어요. 올해 시작만 해도 다행일 것 같아요.
말씀 중에 독자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점이 인상적인데요.
저는 예전부터 독자를 늘 생각했어요. 독자와 소통이 잘 되는 소설, 독자가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려고 했어요. 독자가 3시간 동안 소설 한 편을 읽으면서 힘들었던 현실을 잠시 잊고 현실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공감할 수 있는 세계를 경험하고 나오면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그렇게 저를 정체화 했어요.
이른바 ‘에어포트 노벨’을 지향하는 소설가라는 점을 밝히기도 했죠.
영화도 홍상수 감독님이 하시는 것 같은 예술 영화가 있고요. 윤제균 감독님이나 김용화, 최동훈 감독님 같은 상업 대중 영화가 있는데요. 홍상수 감독님 같은 분이 천만 영화를 꿈꾸면서 영화를 만들지 않죠. 대신 이분들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요. 한편 최동훈, 윤제균 감독님 같은 분이 칸에서 상도 받고 천만 영화도 되겠다는 욕심은 안 내시거든요. 이분들은 대중과 공감하는 상업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죠. 소설도 똑같은 것 같아요. 문학성을 추구하는 소설,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인간성을 깊이 천착하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소설들이 있고요.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 그 세계를 즐기고, 공감하는 대중소설이 있는데요. 저는 그런 상업소설을 쓰는 작가예요. 문체에 집중하기보다 가독성을 중심으로 쓰죠. 그것 역시 쉽지는 않거든요. 읽기 쉽다고 쓰기 쉬운 건 아니에요. 그저 방향이 다른 거죠.
한편으로 소설의 카테고리도 무척 다양해진 것 같아요. 한국SF도 많이 유명해졌고요. 퀴어 소설도 다양하게 나오고, 100만 부가 판매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판타지잖아요. 저는 휴먼 드라마고, 그밖에 스릴러 소설도 많거든요. 한국 소설이 다변화되고 스펙트럼이 넓어졌어요. 제가 한참 문학 편집자를 하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그렇지 않았죠. 당시 오쿠다 히데오,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엄청나게 팔렸어요. 또 해리포터 시리즈나 『다빈치 코드』 같은 작품도 다 잘 팔렸는데요. 한국 소설은 문학성 중심으로 많이 집중되어 있었어요. 그때 그게 아쉬워서 제가 한번 써볼까 했던 거예요. 서사가 강한 소설도 한국 독자는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망원동 브라더스』로 데뷔할 때부터 계속 재밌는 이야기, 쉽게 읽히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한 거였어요. 그것이 독자에게 인정받기까지 14년 걸렸네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돈키호테가 있을 것 같아요. 나의 돈키호테를 찾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간절함을 가지고 좇으세요. 그냥 찾는(looking for) 게 아니라 좇는(chasing)다는 생각으로 말이에요. 돈키호테가 쉽게 안 찾아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집착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쉬운 게 아니니까 많이 좋아해야죠. 짝사랑하듯 해야 해요. 책을 보시면 저도 미친 사람 같잖아요. 스페인에 가서 돈키호테 동상에 말을 걸고, 세르반테스의 고향을 찾고요. 세고비아 관광지 중 멋있다는 데도 안 가고 나의 돈키호테만을 좇았거든요. 사실 거기 간다고 영감이 오겠어요? 그냥 가는 거예요, 그냥. 그 정도의 근성이랄까 간절함이 필요해요. 자신의 돈키호테가 있다면 그것을 짝사랑했으면 좋겠어요.
마침내 소설 『나의 돈키호테』도 쓰고, 그때의 고군분투를 담은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까지 출간한 지금, 만약 직접 세르반테스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세요?
“숙제했습니다. 저 숙제 다 했으니까 이제 복을 내려주십시오.(웃음)”
마드리드 레지던스에서의 3개월은 정말 행복했어요. 낯선 곳이고, 써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고, 취재가 힘들기도 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니까 걱정도 많았는데요. 그럼에도 그곳에서의 순간은 너무 행복했고요. 작가인 제게 주어진 최초의 호사였어요. 물론 한국에서도 여러 문학관에 머물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이건 정말 엄청난 혜택이었잖아요. 감사한 마음이 컸고요.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처럼 반드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도 작가의 창작 인생에 도움이 됐다면 문제가 안 돼요. 강제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저는 강박이 있었어요. 이렇게 큰 도움을 받은 곳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해야 된다고요. 그래서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도 쓴 거예요. 만약 『나의 돈키호테』라는 소설을 못 내면 이 일기라도 내려고요. 글빚을 갚는 거잖아요. 어쨌든 결국 두 책이 모두 나와서 기분이 좋아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
출판사 | 푸른숲
불편한 편의점
출판사 | 나무옆의자
불편한 편의점 2
출판사 | 나무옆의자
나의 돈키호테 (꿈의 책장 에디션)
출판사 | 나무옆의자
돈키호테 1
출판사 | 열린책들
돈키호테 2
출판사 | 열린책들
파우스터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출판사 | 팩토리나인
다빈치 코드 1
출판사 | 문학수첩
다빈치 코드 2
출판사 | 문학수첩
망원동 브라더스
출판사 | 나무옆의자

신연선
읽고 씁니다.

표기식
사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