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은 전업 작가가 되기 전까지 국어교사 일을 하며 세탁소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틈틈이 글을 썼지요. 찰스 부코스키는 스물네 살 때 잡지에 단편을 발표한 뒤 공장과 우체국을 전전합니다. 그리고 쉰 언저리에 우체국을 그만두고 비로소 첫 장편을 발표하지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바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후 부엌 식탁에 앉아 단편 소설을 써 내려갔습니다. 이들 중 태어나면서부터 작가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열심히 글을 쓰고, 자신의 글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한 사람들이었지요. 즉,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들은 책을 내기 전까지 어떤 확신도 없이 그저 글을 쓰는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작가인 사람은 없다.’ 이 말은 작가가 될 것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왕족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작가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눈앞에서 책을 쏟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증인입니다. 그 증인이 당신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김은경 작가의 책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김은경 작가 편>
김하나 : 항상 저는 ‘김은경 대리님’이라고 부르다가 ‘김은경 작가님’이 되어서 마주앉으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본인은 어떠십니까?
김은경 : 저도 굉장히 감회가 새롭고요. 아까 제 책의 일부를 읽어주시는데 ‘이게 이렇게 경건한 글이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웃음), 굉장히 새롭네요.
김하나 :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세요? 집에 돌아갔을 때 뭐하세요?
김은경 : 빠르게 술을 마시죠(웃음).
김하나 : 언제나?
김은경 : 그렇죠(웃음).
김하나 : 그러면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원고를 쓰실 때도 있어요?
김은경 : 네. 초안을 쓸 때는 거의 맨정신에 쓰고요. ‘됐어, 이제 고치기만 하면 돼’ 싶으면 그때부터 신명나게 마시면서 하죠.
김하나 : 퇴고를 더 명료한 상태에서 해야 되는 거 아니었어요?
김은경 : 이 책을 쓸 때는 조금 정신을 바짝 차리고 했는데, 평소에 글 쓰거나 할 때는 사실 퇴고를 안 해요(웃음). 그렇게 하면 조금 지치고 글 쓰는 게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아서, 일단은 신나게 쓰는 것에만 목표를 두고 있거든요.
김하나 : 사실 신나게 쓰는 동력을 계속 유지하는 게 너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이 책이 너무 고마운 게, 그 동력을 정말 되살려줬어요. 제가 또 이 책의 추천사를 쓰지 않았습니까(웃음)? 추천사 마지막 부분에 “이 책에는 손가락이 근질거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이게 얼마만의 기분인지 모르겠다. 얼른 글을 쓰고 싶다”라고 썼는데, 정말 진심이었어요.
김은경 : 정말 감사합니다. 저랑 인연이 있으시니까 일부러 잘 써주신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오프라인에서 직접 들을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사실 그 마지막 부분이 이 책을 찢어놨죠(웃음). 킬링 포인트처럼.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김하나 : 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님들 있잖아요. 일러스트레이터 겸 에세이스트 자토 작가님(『오늘도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 『서로의 마음을 산책 중』 ), 『고양이처럼 아님 말고』 의 남씨 작가님, 김재호 작가님, 다들 홍보를 너무 너무 열심히 해주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김은경 대리님이 맡아주셨던 작가 중의 한 명인데요. 왜 이렇게 작가들이 난리죠?
김은경 : 다 ‘졸쪼회’의 위력입니다(웃음).
김하나 : ‘졸쪼’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데,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왜 ‘졸쪼’죠?
김은경 : ‘졸라 쫀다’의 줄임말인데요(웃음). 이 별명을 누가 지으셨죠?
김하나 : 제가 지은 건 아니고요. 졸라 쫀다는 말은 분명히 있었죠. 『딸바보가 그렸어』 를 쓰신 김진형 작가님이 졸라 쫀다는 비난을 몇 번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은경 : 아니에요, 그 앞부분이 있어야 돼요. ‘김은경 씨는 좋은 에디터인데 졸라 쪼아서 문제예요’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앞부분이 있어야 됩니다(웃음).
김하나 : 죄송합니다, 제가 그걸 빼먹었네요(웃음). 그 말씀을 듣고 ‘‘졸쪼’ 어때요?’라고 제가 지었죠. 그런데 그걸 낼름 받아쓰시면서, 저자 프로필에까지 아이디 ‘졸쪼’가 들어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김하나 : 『힘 빼기의 기술』 의 편집자이셨잖아요. 서로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정말 꼼꼼하시구나’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어요. 원래 성격이 그러신가요?
김은경 : 아니에요.
김하나 : 책을 편집할 때만 꼼꼼하신 거예요?
김은경 : 네, 일할 때는 꼼꼼히 하려고 노력을 하거든요. 원래 성격은 얼렁뚱땅이었어요.
김하나 : 조금 그런 것 같기는 해요(웃음). 같이 놀 때 보면 얼렁뚱땅인데, 일을 할 때는 너무 똑소리 난단 말이죠. 다른 사람처럼.
김은경 : 책을 계약을 할 때는 작가님한테 ‘제가 진짜 잘 만들어드릴게요’ 하면서 약속을 한 거잖아요. 제가 넋을 놓고 있으면 그 분한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바짝 정신을 차리고 하는 면이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사생활이 엉망진창이죠(웃음).
김하나 : 일할 때는 일하고 나는 다 놓아 버릴란다(웃음).
김은경 : 그런 거죠(웃음). 전(前) 에디터이기는 하지만, 제가 직업의식을 가질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게, ‘나는 무조건 내 작가에 대해서는 편파적인 사랑을 가질 거야’라는 거였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이 원고가 어찌됐든, 나는 이걸 최고로 만들어줄 거야’라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회사를 그만두신 뒤에 하신 일이 글쓰기 워크숍이었어요. 글쓰기를 돕는 일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셨어요? 아니면 ‘내가 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나요?
김은경 : 그 전에 ‘오키로미터’라는 부천의 작은 책방에서 교정교열 워크숍을 잠깐씩 했어요. 거기 사장님이 남의 글을 봐주는 워크숍도 해줄 수 있느냐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런데 회사 일하면서 도저히 여력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고사를 했는데, (퇴사 후) 어깨가 조금 가벼워지고 나니까 ‘독자의 글을 봐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약간 생계 수단이 필요하기도 했어요(웃음).
김하나 : 출판사에서 계시면, 아직 작가로 데뷔하지 않은 분들의 원고를 많이 보시나요?
김은경 : 그럼요. 독자 투고 원고를 보는 것도 되게 큰 일이죠.
김하나 : 많이 검토를 하다 보면 ‘보는 눈’이 더 발달되겠어요.
김은경 : 네. 투고를 하실 때 팁을 하나 드리자면, 대부분 메일이나 게시판을 이용하시잖아요. 거기에 간단하게 소개를 덧붙이시는데요. 절대로 ‘이건 굉장한 원고이고 출간이 시급합니다’라고 쓰시면 안 됩니다(웃음). 그걸 보는 순간 저희는 ‘왜 시급하시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속한 팀이 비소설 팀이었고 인문, 경제경영, 에세이 파트가 있었는데요. 모든 파트의 편집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게 그 부분이었어요. 그렇게 쓰시면 원고를 보기도 전에 점수를 깎아먹게 되니까, 그렇게는 절대 쓰시면 안 됩니다(웃음).
김하나 : 글쓰기 워크숍은 어떤 분들이 수강하러 오셨어요?
김은경 : 저는 일반 독자분들이나, 당연히 글쓰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많이 오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의외로 웹툰 작가님도 오시고, 출간 계약을 하셨는데 더 잘 쓰고 싶어서 오신 분들도 계셨고, 고3 학생도 왔었어요. 폭이 굉장히 넓었어요.
김하나 :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겠네요.
김은경 : 맞아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재미가 쏠쏠했던 워크숍이었죠.
김하나 : 그 분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 하셨던 건 뭐였어요?
김은경 : 뭐가 궁금해서 오신다기보다는, 일단 ‘내 글을 이 사람한테 보여줘 보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오신 분들이 많았어요.
김하나 :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어떤 정도인지 알고 싶다’, ‘다른 사람한테 한 번 보여줘 보고 싶다’는 거군요.
김은경 : 네. 자신이 쓴 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고 싶어 하시고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고 가늠하려고 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김하나 :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김은경 : 이런 글쓰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직접적으로 물어보시지는 않는데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제가 이 말을 드디어 하네요, ‘힘 빼기’를 힘들어하세요(웃음). 잘 쓰고 싶다고 생각하셔서 우주 삼라만상을 한 장에 담으려고 하시는 시도가 엿보여요(웃음). 대단한 걸 쓰려고 하시는데, 그게 한 장 안에 다 담기지 않잖아요.
김하나 : 한 장에 다 담을 수 있으려면 ‘부적’이어야 하지 않나요(웃음).
김은경 : 그렇죠(웃음). 그건 간장 종지에 바다를 담는 것과 같은 거니까요. 그래서 힘을 빼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데요. 그걸 조금 어려워하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는 걸 조금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작가는 되고 싶지만 나를 그렇게까지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두 마음이 상충되는 거죠. 연애 글 같은 걸 쓴다고 하면 ‘심장이 바늘을 찌르는 것 같다, 시야가 흐려져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는 식으로 자신이 지금 얼마나 힘든지, 거기에 심취해서 글을 써오시는 데요. 그런 것보다는 시련의 아픔을 쓰려면 우리가 얼마나 멋있는 사랑을 했는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건 개인의 경험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글을 쓸 때도 ‘우리는 정말 깊은 사랑을 했다’가 아니라 ‘그는 항상 내 운동화 끈을 묶어줬다’ 이렇게 시작을 해야 더 멋있는 글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자신을 오픈하는 글을 쓰는 방법을 조금 모르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하나 :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제가 실제로 글을 쓸 때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거죠. 제목을 짓는 타이밍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좋아요. 제목은 언제 지어야 되죠?
김은경 : 마지막에 지어야 됩니다.
김하나 : 왜 그런가요?
김은경 : 처음에 제목을 지어놓고 시작하면, 거기에 맞춰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게 차를 후방 주차하는 것과 비슷해요. 부딪힐까 봐 삐뚤빼뚤 주차하게 되는 것처럼 너덜너덜한 글이 탄생하는 거죠.
김하나 : 칸 안에 어떻게든 넣으려고 하니까요.
김은경 : 그렇죠. 그러다 보면 결국은 주제에 딱 맞는, 겨우겨우 타협한 글이 완성되는 건데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일단 쓴 다음에, 제목은 마지막에 본문 안에서 숟가락으로 떠내듯이 지으면 굉장히 독특하고 재밌는 제목을 지을 수가 있거든요. 대주제만 하나 정해두시고 손이 가는 대로, 원하는 대로 쓰신 다음에 제목을 지으시면 너덜너덜한 글이 탄생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76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onew
2018.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