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서 생활 탐구
[요즘 독서 생활 탐구] 좋은 책을 보면 짖는 편집자, 책들이 계속 살아있을 수 있게
왈왈 쾅쾅 울음소리로 책을 추천하는 수상한 편집자. 책을 통해 느슨한 연결을 만드는 '좋은 책을 보면 짖는 편집자' 김지은 편집자 서면 인터뷰.
글: 이참슬
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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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독서 생활 탐구

우리는 요즘 책을 통해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요? 온갖 종류의 콘텐츠가 범람하는 오늘날 변함없이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연결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유한 방식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는 뉴스레터, SNS, 출판사와 서점, 북페어 운영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로지 ‘왈왈’ ‘쾅쾅’ 울음소리로 책을 추천하는 수상한 편집자의 계정이 있습니다. 막연한 마음으로 트위터에서 홀로 짖기 시작한 편집자가, 현실의 장소에서 조용히 모여 책을 읽고 헤어지는 모임을 주최하기까지. 책을 통한 느슨한 연결을 만드는 좋은 책을 보면 짖는 편집자, 침묵 독서 클럽의 김지은 편집자를 서면으로 만났습니다. 


 

운영하는 계정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트위터(현 X)에서 ‘좋은 책을 보면 짖는 편집자 계정’(@editor_walwal) 쓰는 김지은입니다. 이름 그대로, 좋은 책을 발견하면 “왈왁왈왈쾅랄궝ㄹ쾅ㄹ쾅ㄹ쾅ㄺ쾅왁쾅” 짖는 소리를 트윗으로 쓰고 있습니다.

 

다른 신간 추천 계정과 차별화되는 점은 어떠한 코멘트 없이 말 그대로 '짖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콘셉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슬픈 사연이 있는데요. 힘들게 복간한 책이 1쇄를 겨우 팔고서 또 절판될까봐 전전긍긍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할당된 광고비가 없는 책, 홍보를 어디에 해서 얼마만큼 팔린다는 감도 못 잡을 만큼 독자층이 좁은 책, 광고비를 쏟으면 딱 그 손익분기점까지만 팔리는 책도 많았고요. 편집자로서, 독자로서, 그런 책들이 계속 살아있게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시도하던 중에 트위터도 시작했습니다. 독자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여기저기 떠들다 보면 독자를 발견하거나, 독자가 생겨나거나 둘 중에 하나는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좀 호기로운 긍정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때 마침, 배달 앱 리뷰 중에 ‘맛있으면 우는 사이렌’이라는 유저가 음식 리뷰를 ‘웨에에엥’으로 채워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어요. 순간 딱 이거다 싶었어요. 가뜩이나 다급한데 막연하고, 그래서 서럽고, 어딘가 분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아이고 그래 차라리 짖자’ 싶어진 거죠. 그래서 그런지 ‘멍멍!’ 귀엽게 짖는 강아지도 많은데 절대 그렇겐 못 짖고(…) 쾅ㅋ웍쾅쾅 짖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또 무엇보다 책 한 권에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복잡하게 얽혀있고, 가뜩이나 SNS에서는 어떤 독자에게 어떻게 닿을지 모르니, 차라리 짖는 소리는 모두에게 엇비슷하게나마 웃기지 않을까 하는 수상한 맘도 있었어요. 오죽하면 편집자가 저럴까… 하는 그런… 어이없긴 한데 어딘가 신경 쓰이는 맘을 독자들이 가져주실지도 모른다는 상상이요. 저는 왠지 고급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보다, 옆집 개 짖는 소리가 더 마음 쓰이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편집자님의 계정에 호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고, 이런 질문에 제가 추측해서 답하기가 참 쑥스럽기도 하고 실제로 잘 모르기도 하는데요. 직접 접한 말로는, 비문학 추천 때문에 구독할 만하다는 말씀을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개 중에는 책 추천을 제일 열심히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죄송합니다.) 바로 위에서 답한 내용이 통해서 그런 것이라면 다행이겠습니다. 
 

책 추천 기준이 궁금합니다. 

좋은 책을 보면 짖는 편집자라고 이름 달아도 결국엔 ‘자기한테’ 좋은 책을 보면 짖는 편집자일 수밖에 없다는 걸 점점 더 배우고 있어요. 같은 책을 읽고도, 똑같은 이유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도 빼앗는 얘기보다는 뺏긴 얘기, 도망친 얘기보다는 제자리 지킨 얘기, 지금 당장 어디에 올라타라는 얘기보다는 지금 앉은 자리가 어딘지 아냐고 질문하는 얘기에 더 많이 짖게 되기는 합니다. 

 

최근에는 오프라인으로 확장해 ‘침묵독서클럽’ 등 다양한 독서 모임도 개최하셨죠. 행사를 만들게 된 이유와 실제 참가자들 반응, 편집자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결국에는 독자 수가 많아져야만 동료들도 저도 덜 울 것 같아서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울어서요. 이건 판매지수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정말 책 만드는 일에 관한 얘기인데, 할 수 있는 걸 좀 다 해보자 싶어서 트위터도, 여러 독서모임이나 행사도 계속 구상하는 것 같아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 읽는 사람을 만나면, 무슨 책을 읽나 궁금해서 표지를 보려고 고개를 쭉 빼기도 하고, 결국 확인을 못해도 그냥 그 자체로 묘한 동질감이 생기기도 하고 그런 경험, 책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있으실 것 같아요. 만약 하루에 그런 사람을 두 명 만나고, 세 명 만나고, 네 명 만나면…. 아니 몇십 명을 만난다면? 하고 상상해 봤어요. 막상 그러면 ‘어디에서 뭘 촬영하나?’ 싶을 것 같았죠. 그래도 확실히 설렐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사일런트북클럽(Silent Book Club)’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비슷한 걸 나도 열어보자 싶었죠. 


 침묵독서클럽 ⓒ인영


8월에 출발한 ‘침묵독서클럽’(@chimdokle)은 시간과 장소만 약속하고 어디선가 조용히 나타나서 모여 읽다가 또 조용히 흩어지는, 플래시몹 같기도 한 북클럽이에요. 공공 공간을 활용하고 있고, 가입 조건이 따로 없습니다. 읽을거리라면 꼭 종이책이 아니어도 돼요. 오셔서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을 읽는 분도 있고, 전공서를 가져오시는 분도 있어요. 다만, 서로 대화를 안 하고 오로지 읽다가 헤어지니, 침묵독서클럽 때문에 여기서 읽고 계신 건지, 아니면 다들 여기서 읽는 것 같기에 가까이 앉아 읽으시는 건지 알 수 없게 되기도 해요. 그렇게 경계 없고 조건 없는 연결이 이뤄지는 풍경 속에서 다들 가져온 책에 몰두하고 있어요. 실제로 침묵독서클럽에 오신 분들은 책을 읽어서 좋은 것만큼, 그런 느슨한 연결감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공간에서 책 읽는 서로를 목격하는 이벤트를 더 많이 만나고 싶어요. 

 

그동안, 침묵독서클럽이 아닌 다른 독서모임은 전부 온라인으로 운영해 왔어요. 어느 지역에서만, 특히 서울에서만 열고 싶지 않아서 전부터 택한 방법이었는데요, 점차 침묵독서클럽도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같이 열어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언젠가 제 생일에, 인용알티(코멘트를 달면서 재게시)로 읽고 있는 책이나 산 책을 한 권씩 알려달라고, 그걸 축하 인사 삼겠다고 트윗을 올린 적 있었어요. 140명 정도가 각자 가진 책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축하해주셨고, 제가 그걸 다시 목록으로 정리해서 공유했었답니다. 종일 무척 감사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책 설명이나 추천하는 말도 없이 그냥! 지금 쥐고 있던 책을 자랑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다 같이 나눌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또, 종종 독자 또는 출판사 선생님들이 아주 정돈된 말씨로 메일을 쓰시다가도 갑자기 “왈왈쾅ㄹ뢍ㄹ쾅왈” 문구를 적어두실 때 너무 귀여워서 혼자 캡처해 두고 있어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텍스트힙' 열풍을 중심으로 독서에 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애서가이자 독서 인플루언서로서 체감하는 독자들의 변화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텍스트힙’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조금 어리둥절한 느낌이 있었어요. 드디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같은 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힙한 인간이 되는 건가?’ (←사실 힙한 게 뭔지 모른다.) 하면서요. 솔직히는, “텍스트힙”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더 많이 보인다는 것 외에 사실 큰 변화는 못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단어에 기대서라도, 독서의 범위가 더 넓어지고 (책은 사는 것부터가 독서다), 즐거워지고 (서점과 도서관에서는 상설 북페어가 열리고 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는 멋진 것 (지금도 당신에게는 사두고 못 읽은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이라는 소문이 지속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은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어디에서 오셨냐 외에는 정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루는 책이나 주제가 달라서 경험이 달라지는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낍니다. 앞선 답변에서, 서울에서만 모임을 하고 싶지 않아서 온라인 모임만을 운영해 왔다고 말씀드리기도 했었는데요. 침묵독서클럽처럼 실제로 한데 모이는 풍경 자체가 중요한 모임이 아니라면, 모임을 거듭할수록 온라인 모임의 장점을 더 많이 발견하고 있습니다.

 

취향의 책을 소개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독자들을 직접 연결하는 역할도 맡게 되었어요. 책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은 다른 경험과 무엇이 다른가요?

다른 무엇을 통해 연결되는 것과 책을 통한 연결에 만약 차이점을 느낀다면 그 점을 통해 역으로 나한테 책이 왜 특별할까에 답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용히 침잠하는 사람, 한 줄 읽고 그다음 줄로 넘어가는 느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 펼쳐서 실망한 책도 있었지만 좋아한 책이 있었다는 이유로 바로 다음 책을 고르는 사람, 읽다가 화악 눈물이 나도 종이에 안 떨어뜨리려고 책부터 치우는 사람, 내가 좋아한 책에 누가 불호 후기를 달면 갑자기 발끈해서 대변하는 사람, 도서관에 희망도서 구입 신청해 놓고 못 기다려서 그새 서점 가서 사오는 사람... 그런 사람들 사이의 결속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같은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되게 통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해요. 트위터를 운영하면서 착각 속에서 빠져나올 의지 같은 건 조금도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살피게 됩니다. 무척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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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