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잘 맞는 사람
누군가와 같이 일하는 사람의 태도란 무엇인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더 많은 후배들과 함께 일하고,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글ㆍ사진 김성광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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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선배보다 후배가 확연히 많다. 업무를 분배하고, 지시하고, 모니터 하는 일에 점점 많은 시간을 쓴다. 누군가의 일을 들여다 보는 일은 신비롭다. 이 작은 팀에서도 사람은 모두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단조로운 단순 반복 업무에도 저마다의 흔적이 남는다. 내가 담당하다 넘겨 준 일조차도 조금은 낯설어졌다.

 

이를 테면 이런 차이가 보인다. 재고가 부족한 상황을 두려워 하는 사람과 재고가 많이 남는 걸 두려워 하는 사람, 사은품 비용 씀씀이가 큰 사람과 조심스런 사람, 조금 더 편한 업무방식을 집요하게 찾는 사람과 불편에 적당히 적응하는 사람, 많이 팔리는 책에 집중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사람과 그걸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 관련 데이터를 꼼꼼히 확인하고 거래처와 긴 협의를 해가며 일을 진척시키는 사람과 즉흥적인 판단으로 일단 일을 벌여 놓은 뒤 하나씩 메워 가는 사람… 혈액형이나 MBTI보다 이런 차이로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이 나는 재밌다.

 

하지만 ‘재미’라는 말이 붙는 모든 행위에는 섬세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누군가의 일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렇다. 은연 중에 장점과 단점을 판단하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한 어떤 평가가 마음 속에서 출발해버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일은 ‘재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이런 저런 평가가 수없이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제각각인 사람들이 짝을 이루고 팀을 이뤄 일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당연히 불만이 생긴다. 자연스러운 일이라 뭐라 말하긴 힘들다. 다만 그 불만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각자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전략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고위 관리자가 아닌 이상, 대개의 통상 업무들은 이렇게 진행될 수도 있고 저렇게 진행될 수도 있다. 결과의 품질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누가 담당하든 회사가 별 탈없이 돌아가는 수준 내에서의 차이다. 그렇게 보면 누군가의 일에 대한 평가란 업무의 결과라기보다는 업무 스타일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업무 스타일은 중요한 부분이다. 마감기한을 자주 어기는 사람, 갖추어야 할 서류를 늘 누락하는 사람, 다른 부서나 거래처와의 협의를 쉽게 번복하며 일하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기 어렵다. 피해가 크다. 그런 경우 불만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촉구하고, 필요하다면 업무를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의 일에 불만을 갖는 순간이 꼭 그런 이유들 때문일까. 나는 꼼꼼한 스타일인데 상대는 덜 꼼꼼하다거나, 나라면 이 일을 먼저 할 것 같은데 상대는 저 일을 먼저 한다거나 하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특별히 피해를 입는 건 아닌 그런 일들에 불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똑같은 사람에 대해 어떤 상사는 평가를 박하게 하지만 다른 상사는 별 문제를 못 느끼는 경우가 자주 있는 걸 보면, ‘불만’이란 상대로부터 뿐만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촉발되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

 

누군가의 일을 들여다 보는 일은 그래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로 느껴진다. 내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고 내가 누군가를 높고 낮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내게 맞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나와 스타일이 다르다는 게 일을 잘못하고 있단 의미는 될 수 없다. 그냥 스타일이 다른 것이다.

 

요즘은 누군가와 같이 일하는 사람의 태도란 무엇인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더 많은 후배들과 함께 일하고,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판단하는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에 대하여, 내 안에 생기는 평가들을 고착화하기 보다는 내가 그 사람과 보다 잘 조합될 수 있는 일의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겠다 생각한다. 서로 스타일을 맞춰간다는 것은 내 쪽에서도 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 어디까지나 생각에 머물 뿐이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에 대한 판단을 고스란히 품고 있겠지만, 가급적 그런 인상 평가에 휘둘리지 않으려 한다.

 

사람이 다 제각각이란 걸 생각해보면 스타일이 다른 사람과 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잘 맞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오히려 축복이고 이례적인 상황이다. 다행히도 잘 맞는 동료들에 둘러싸여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운이 좋을 때가 아니라, 운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날이 더 많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혹시 잘 맞던 동료가 떠나고 새로운 동료가 좀 눈에 차지 않더라도, 굳이 그 둘을 비교하고 불만을 품을 일은 아니다. 그 동안 운이 좋았고, 이제 보통날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농장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딜러핸 역시 알 거라고 예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엘리는 암탉치기, 유제품 가공하기, 채소 재배하기, 가계부 쓰기 등, 몇 가지 손에 익은 일에서는 그보다 더 능숙했다. 엘리를 첫 번째 아내와 비교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을 함께 놓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그런 적도 없었다. 하지만 딜러핸은 자신이 두 번이나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윌리엄 트레버,  『여름의 끝』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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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