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해지려고, 기꺼이 불편해지는 것
내가 편한 대로 살고 싶은 흐트러지는 삶은 계속 될 지라도,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내게 언제든 남아 있기를 바란다. 내가 겪을 불편함 뒤에 오게 될 편안함을 기대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으로.
글ㆍ사진 이나영(도서 PD)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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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입사 3년 차가 되니 몸이 끊임 없이 고함을 치고 있다. 어딘가 낫고 나면 다른 곳이 아프기 시작하고, 개운한 아침을 맞이한 것은 머나 먼 이야기가 되었다. 핑계로 택시를 찾게 되는 날이 많아지면서 내겐 합리화라는 명목이 생겼다. “나는 이 편안함과 다른 가치를 바꾸는 거야”라고.


그러나 합리화라는 것은 참으로 무섭다. 아프다는 이유로 해야 될 것들을 미루는 일이 많아졌고, 굳이 먹지 않아도 될 것들을 먹는 때도 많아졌으며, 이것들이 모두 더해져 게으르고 탐욕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편안해지기만을 택하니 나는 망가지고 있었다. 잠시 흐트러지는 것쯤이야, 라고 생각하기에는 요즘의 내겐 매사에 의욕이 없는 시기가 찾아와버렸다. 이건 쿨한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기도 하고,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넘기기에는 해야 할 일들과 나 자신을 챙겨야 하는 또 다른 내가 항상 떠 다닌다. 편하게 살기를 원했는데, 막상 편안해지니 다른 것들이 불편해지는 상황이 오자 이게 과연 맞는가 싶어졌다.

 

서점 직원으로 있으면서,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 우수수 출간되는 요즘을 보며 나도 굳이 열심히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천성이란, 본래 욕심이 많고 남들이 하는 것은 해 보고 싶어하는 나인지라 열심히 해야만 이 욕심들을 채울 수 있었다. 승부욕이 강했던 내겐 느리게 가는 삶이란 다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빠르게 무언가를 이뤄내려 나름대로는 부지런하게 해 왔다. 손에 쥐어질 어떤 목표를 잡지 않으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나 고민할 정도로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랬던 내가, 무엇에 열중해야 하는지를 까먹은 것처럼 흐르는 대로, 내 몸에 편한 대로 지내다 보니 문득 내 정신마저 편리함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이 싫어서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 이슈들에 관심을 덜 쏟게 되었다. 온라인 뉴스를 덜 찾아보게 되었다. 또 구걸하고 있는 어느 노숙인을 지나치면 그의 삶은 어떨까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던 내가, 불편해지기가 싫어서 못 본 척 하기도 했다. 누구라도 만나서 이야기하길 좋아했는데, 이젠 굳이 만나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은 만나려 들지 않게 된다.


사는 게 다 그렇다고 한다. 조금씩 무뎌지는 것이고, 불편한 건 피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러나 이렇게 피하고 무뎌지기만 하다가는 잃게 될 내가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 나름대로도 나의 모습은 또 만들어질 것이고, 나라는 자아는 또 다시 생겨날 테다. 편안한 지금이 무진장 좋지만, 어떤 데도 그다지 의욕이 생기지 않는 나는 내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지금 당장 좋은 것도 좋아하지만, 미래의 나를 항상 염두에 두고 싶다. 그것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 위한 나의 노력이 되기를 바라면서.

 

실은 이런 과정은 늘 반복된다. 그러니까 비단 지금 이 상황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열심히 살고 있던 나는 어느 때에 에너지를 잃고, 그렇게 쳐진 나를 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쯤 다시 힘을 내어본다. 이 반복에서 얻게 된 나의 ‘불편에서 비롯된 편안함’도 있다.


오랫동안 나는 내가 여성으로서 겪는 불편함이 어떤 지를 제대로 모르고 살았었다. 그러나 최근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나 역시도 불편한 일들이 수 없이 많았으며, 나는 이것들을 당연하다고 여기기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자각이 생겨난 뒤로 조금 더 어떤 것에 화를 내 보기도 하고, 여성들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부해보기도 하고, 스스로의 남성주의적인 발언과 생각들을 검열하고 반성하고 있다. 이런 불편함들은 나를 외려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고, 또 될 테다.

 

사소하게는 몸이 잠시 불편해지면 내 생활은 조금 더 편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설거지나 집안일을 미루면 마음 한 켠에는 늘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하는 불안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불안함을 없애려면 즉각적으로 몸을 움직이면 된다. 다소 교훈적인 말이지만, 혼자 살림을 차린 지 8년 차가 되니 강박과 불안함을 느끼느니 몸이 귀찮더라도 마음이 편해지는 게 낫더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운동도 마찬가지다. 하러 가기까지가 너무 귀찮을 뿐, 하고 나면 몸은 무지 개운하다.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씩 깨달아가면서, 남들을 이해하는 방법도 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집이 센 편이라 다소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법이 미숙한 나는, 이런 불편한 과정들이 내 안에서 반복되면서 내가 조금 더 성숙해지기를 바란다. 다른 이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잘못되었다고 좌절도 하게 될 지라도. 그렇게 무너질 용기까지 내가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내 고집도 물러낼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귀찮은 게 싫어서 내가 편한 대로 미루고, 흐트러지는 삶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조금 더 불편하게 나를 만들어보려는 마음을 먹는 건, 잠시 불편한 게 결국은 편안해지기도 하더라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어서일 테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는 나를 더 나아지려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긍정하면서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싶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는 때까지! 합리화보다는 불편을 택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내게 남아 있기를!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로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고유한 경험과 속성만으로도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연결된다. 이런 움직임이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소수자 운동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장애인들은 장애가 개인의 비극이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라고 믿는다. 여성들은 여성의 신체에 가해진 혐오와 성적 대상화에 함께 맞선다.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퀴어함'을 치명적인 질병이나 '비정상성'이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성적 지향의 일부로 여기고 세상으로 나오는 중이다. 우리는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존재가 비정상이 아님을 확인하고, 우리 존재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과정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자신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데 제법 성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데도 성공하고 있을까? 당신은 삶 전체에서 혹은 적어도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맥락에서 실격 당한 존재, 잘못된 삶이라고 평가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긍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당당하게 수용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강렬한 투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이제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스스로가 이 세상에서 실격 당한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이 곧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도 연결되는 것일까?


…… (중략) ……


사랑하는 마음은 그 마음이 향하는 대상이 고통이나 역경을 회피하기를 바라며, 그래서 '잘못된 삶'을 아예 살지 않거나 가능하면 그런 삶과 거리를 둔 채 안락하고 일반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 반면 온전하게 한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은 '잘못된 삶'이라는 규정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그에 정면으로 맞서는 더 '어려운' 길(역경)일 수 있다.


…… (중략) ……


우리는 누구나 홀로 아무런 의미망과도 연결되지 못하는, 도움의 손길조차 없어 보이는 수직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듯한 절망의 순간을 겪을 때가 있다. 하지만 수직으로만 파고 내려가는 줄 알았던 굴속에서 어떤 사람은 조금 방향을 트는 데 성공한다. 그가 각도를 틀어 수직 방향을 벗어나면 이제 각각의 동굴은 평행하기를 멈추고, 마침내 두 사람 이상이 특정 지점에 만나는 일이 가능해 진다. 그렇게 사람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힘을 합칠 때 (지하에서나마) 비로소 공동체가 건설되는 것이다.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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