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서연
통념을 뒤집는 빼어난 상상력과 절묘하고 기발한 구성으로 단숨에 주목받은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에 이어 첫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독자를 이야기의 미궁 속에 빠뜨리는 탁월한 재능”(한국일보문학상 심사평)을 펼쳐온 작가 최제훈이 『나비잠』 이후 5년 만에 신작 장편 『천사의 사슬』 로 돌아왔다. 의문의 화재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앞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 사건의 열쇠를 쥔 그가 털어놓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수사를 혼란에 빠뜨리는 가운데, 소설의 안과 밖이 서로 얽혀들며 사건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속도감 넘치는 미스터리, 현실과 환상이 엇갈리는 치밀하고 정교한 구성이 긴장감을 자아내며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나비잠』 이후 5년 만의 반가운 신작 장편입니다. 작품 세계나 작가님 개인적으로 전과 달라진 것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달라진 건 없습니다. 앞으로는 글을 좀더 빨리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 외에는. 불을 통해 합쳐지는 사람의 이미지는 오래전부터 머릿속을 떠돌던 소재였는데, 그걸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에서 몇 번 갈아엎고 다시 쓰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더라고요. 5년 만이라니, 저도 좀 놀랐습니다. 이러다가는 평생 쓸 수 있는 책이 몇 권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 쓰고 싶은 소설이 많은데. 부지런히 써야 할 것 같아요.
『천사의 사슬』 은 소설 속 소설가가 신문기사를 토대로 이야기를 구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작가님도 평소에 신문기사를 스크랩하시나요? 실제 기사를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신문의 해외토픽이나 사회면 단신 기사를 스크랩하는 취미가 있었어요. 글을 쓰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을 때였는데, 그냥 기묘한 이야기들에 끌렸던 것 같아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기사들을 보면서 흥미로운 내용은 ‘재료’ 파일에 저장해놓죠. 사실 그런 기사들이 에피소드로 들어가거나 캐릭터 구축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 자체를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쓴 적은 없어요. 『천사의 사슬』 속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현실의 사건이 일으킨 스파크에 상상력을 땔감으로 밀어넣고 불을 지피는 쪽이죠. 그런 변신의 욕망이 제가 글을 쓰는 동력 중 하나이니까요.
작가님의 소설은 늘 정확히 맞춘 듯이 잘 짜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처음부터 이야기를 구상해놓고 쓰시는 편인가요? 그러니까,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이 모두 처음부터 계산된 것인가요?
예, 이야기 전체를 구상해놓은 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쓰기 시작하는 스타일입니다. 아무래도 언어로 전환되고 나면 뭔가 굳어버리는 느낌이에요. 그전에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할 때가 더 자유롭게 상상을 펼칠 수 있죠. 머릿속 구상이 점토를 주물럭거려 모양을 잡는 과정이라면 실제로 글을 쓰는 건 열을 가해 도자기를 굽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을 처음부터 계산하는 건 아닙니다. 인물이나 상황이 글을 통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요소들이 있으니까요. 솔직히 소설 속의 요소들을 계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든 독자에게 옮겨갈 때는 새로운 의미로 탄생하는 게 소설이니까요.
소설 속 소설가는 거리를 다니면서 등장인물을 캐스팅하는데요, 실제로 작가님도 그런 방식을 쓰시나요? 그렇다면, 길거리 캐스팅이 늘 성공적이신지 궁금합니다.
평소에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긴 합니다. 생김새를 살펴보고 어떤 성격의 어떤 사람일지 혼자 상상해보는 식이죠. 아마 대부분 작가들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소설에 써먹기 위해 일종의 인력 풀을 만들어놓는 거죠.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소설가처럼 구상을 해놓고 거리에 나가 비밀 오디션을 치르지는 않아요. 이건 소설에 필요해서 만든 설정이죠. 글을 쓰기 시작하면 밖에 거의 안 나가는 편입니다. 소설쓰기라는 게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현실과의 접촉을 피합니다. 계속 왔다갔다하다보면 아무래도 집중하기가 힘들거든요.
ⓒ 김상만
『천사의 사슬』 은 중심 사건뿐 아니라 연금술이나 타밀어, 천사와 악마의 상징 같은 소재들 덕분에 더욱 풍성한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전작들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런 방대한 배경 지식은 어떻게 얻으시는 편인가요?
소설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책이나 영화를 다양하게 보는 편이에요. 그 자체가 재미있어요. 제가 잘 모르던 분야들을 배우면서 그것들이 뒤섞여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는 게. 이번에도 우연히 연금술에 대한 책들을 보다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불을 통해 합쳐지는 사람의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이 소설을 쓰게 됐어요.
사실 요즘 정보나 지식을 얻는 건 아주 쉽잖아요.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세계 어디나 들여다볼 수 있고, 주변에 도서관도 많고 IPTV를 통해서 영화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이번 소설을 쓰면서 타밀어에 대한 자료를 찾아 구글을 뒤지다보니 인도 첸나이 대학에서 발행한 타밀어 사전까지 검색해볼 수 있더라고요. 편리한 세상이에요. 훨씬 열악한 여건에서 뛰어난 작품들을 탄생시킨 선배 작가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퀴르발 남작의 성』 을 시작으로 어느덧 네번째 책입니다. 다음으로 구상중이신 소설의 힌트를 들려주신다면요?
다음 책은 두번째 단편집이 될 것 같아요. 첫 단편집을 2010년에 냈으니 많이 늦었죠. 진작 나왔어야 했는데 이번 소설 뒤로 미루다보니 시기를 좀 놓쳤네요. 이전에 발표한 단편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미스터리 스릴러 분위기가 많더라고요. 원래 추리 기법이 적용된 서사를 좋아하기도 하고, 당분간은 제 나름의 추리소설을 써볼 생각입니다.
최제훈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도 좋아할 것이다! 라고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으신가요?
몇 년 전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절망』 을 인상 깊게 봤어요. ‘씹어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이 그랬던 것 같아요. 내용은 ‘어설픈 나르시시스트의 완전범죄 프로젝트’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블랙코미디 범죄소설로서의 재미도 있고 그 사이사이에 나보코프 특유의 풍부한 문학적 상징과 아이러니, 유머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층위로 감상할 수 있는 소설이라서 저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재독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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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사슬최제훈 저 | 문학동네
사건의 열쇠를 쥔 그가 털어놓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수사를 혼란에 빠뜨리는 가운데, 소설의 안과 밖이 서로 얽혀들며 사건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