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에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다. 한번 빠지면 벗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 하지만 온몸으로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전하는 일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꿀잼’이다. 그래서 발레인들은 학원비를 벌기 위해 일하고, 저녁에 발레할 생각으로 즐겁게 출근한다. 비록 타고나길 뻣뻣하고 방향치인 몸이지만 이런 자신에게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발레를 아름답게 출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희망한다.
『아무튼, 발레』 를 쓴 최민영 저자는 2000년부터 신문사에서 일해왔다. 이달의 기자상도 여러 번 받았지만 여전히 적성에 맞는 일인지 생각하곤 한다. 사람 많은 회식 때는 말수가 줄어들고, 취재원에게 전화 걸기 전에는 울렁증에 시달린다. 마흔 살을 코앞에 둔 2015년부터 취미 발레를 시작했다. 10년 뒤 실버 아마추어 발레단의 오디션에 합격하는 게 목표다.
첫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시리즈 저자로 합류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마음에 품지만 말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꾸자꾸 말하다 보면 꿈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튼,’ 시리즈의 첫 책인 『아무튼, 피트니스』 가 나왔을 때부터 서동이 꼬마들과 함께 ‘서동요’를 부르는 심정으로 " 『아무튼, 발레』 는 내가 쓰고 싶다"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부르고 불러도 연락이 없어서 역시 신문기자에게 출판사에서 에세이를 덥석 의뢰할 리가 없지, 라며 홀로 조금 낙담하고 있을 때에 위고 출판사의 편집자께서 이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 정말 꿈같았어요. 하지만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발레를 하면서 거기다가 글을 쓰자니 마감하겠다고 큰소리 떵떵 쳤던 시한을 훌쩍 넘겨버리고 말았습니다만, 어쨌든 예상보다 재밌게 읽었다는 독자님들이 많아서 정말 기쁩니다.
발레를 한 후, 인생에서 가장 변한 것은 무엇인가요?
눈에 보이기로는 몸이 변했습니다. 장기간 노트북을 사용하느라 안으로 굽은 어깨와 앞으로 빠진 거북목이 펴졌습니다. 발레 클래스에서 선생님께서 "등 굽은 자여, 풀업을 하라!"고 말씀하시자 제 기립근이 곧게 서면서 키가 1cm쯤 자라는 듯했습니다. 이어 "고관절 접힌 자여, 복근으로 골반을 들어올리라!" 말씀하시자 다리가 길어졌습니다. 나이 들어 발레를 해도 체형이 발레스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발레를 3년 넘게 꾸준히 계속하자 몸은 정말로 달라졌습니다. 맥주 뱃살도 많이 줄었고요. 예전보다 감기 같은 잔병치레도 줄었고요. 신기하게도 비염도 없어졌지만 이게 발레 덕분인지는 과학적으로 인과관계가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손꼽고 싶은 것은 '유리 멘탈'이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매번 수업마다 한계에 부딪히고 온 힘을 다해 그 장벽을 넘어서며 더 나은 아름다움을 음악을 통해 몸으로 표현하는 과정은 정말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치유적인 경험입니다. 쉽게 말해 ‘빡센 운동’을 계속하다 보면 정신력도 강해진다고 요약하면 되겠습니다.
이제, 기자님을 “어, 발레 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사람들이 더 많아질 텐데요. 부담은 없으신가요?
이제 발레를 게을리하기는 글렀다 싶습니다. 발레가 그렇게 좋아서 책까지 썼다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발레가 시큰둥해졌다고 하면 저 때문에 발레의 세계로 들어선 분들께 ‘아니, 우리만 낚아 놓고 떠나다니’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무책임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에게 ‘발태기’(발레 권태기)가 올 리는 만무합니다. 지난 4년 동안에도 한 번도 없었거든요. 솔직히 지난 여름 무더위 때는 너무 힘들긴 했습니다. 수업 끝나고 바닥에 널브러져서 ‘내가 이 힘든 고생을 왜 돈 주고 사서 하는가’ 푸념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땀 닦고 물 마시면 다시 정신이 돌아오면서 ‘내가 이 힘든 것을 해냈다’라는 기쁨이 온몸에 번집니다.
취미로 발레를 한다고 하면 기자로서 뭔가 본업과 먼 삶처럼 비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은 아주 잠깐 했습니다. 한 개인은 여러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데, 저는 기자이자 동시에 ‘취미 발레’인입니다. 새해에는 취미생활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전성 시대인 ‘워라밸’이 더욱 대세를 이룰 거예요. 즐거운 취미를 하나쯤 가진 개인이 풍요한 내면을 가꾸면서 결과적으로 즐거운 직업인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발레를 정말 추천하고 싶은 대상은 누구인가요?
발레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특히 스스로 발레와 멀다고 생각하는 분들께는 두 번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세계가 열리거든요. 일단 '머리'로만 사는 삶을 벗어나는 경험이 매우 신선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원래 좀 몸치인 편인데, 발레 수업을 처음 듣기 시작하면서 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몸을 쓰지 않았는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쓰지 않으면 퇴화하는 건 정말 당연한 일인데, ‘몸’이란 건 저에게 있어서 오랜 세월 방치됐던 앙코르와트 사원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연습과 훈련을 통해 길을 내고, 덩굴과 이끼를 걷어내면서 원래의 아름다움을 찾아나가는 중입니다.
발레를 시작하기 전, 또는 하면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요.
발레 선생님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긴 하지만, 오로지 칭찬만 하는 선생님은 없습니다. 지적도 많이 받게 돼요.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을 타인의 시선을 통해 발견하고 교정해 나가는 데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발레를 통해 자기 고집을 산뜻하게 버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미흡한 자세를 조금 더 가다듬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따끔한 지적을 수용하고 그에 맞게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누군가의 지적은 그만한 관심을 의미하잖아요. 수업 때 지적을 받더라도 주눅들거나 우울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람은 정말 거의 없습니다. 가끔 ‘발레 천재’들이 있긴 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실력이 처음부터 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연습시간이 쌓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심봉사가 눈을 번쩍 뜨듯 실력이 확 늘어나는 때가 꼭 옵니다.
또 다른 주제로 ‘아무튼,’ 시리즈를 쓴다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아무튼,’ 시리즈를 쓴 필자들은 모두 각자가 푹 빠진 진주 같은 하나씩을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 삶에서는 그게 발레이고, 아무래도 앞으로도 발레 이야기를 더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더 좋은 ‘아무튼,’의 바통은 다음 필자들께 넘겨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덕질’이란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저는 지금 열심히 ‘발레 덕질’ 중입니다. 세상에서 발레가 제일 좋거든요. 앞으로도 당분간 발레만 ‘팔’ 것 같네요.
‘아무튼,’ 시리즈 중에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아무튼, 발레』 와 같은 시기에 서점에 나온 『아무튼, 비건』 도 참 좋은 책입니다. 실천으로서의 채식주의에 대해 김한민 작가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 우위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일깨웁니다. 왠지 기분상으로는 엄마 배에서 한날 한시에 나온 쌍둥이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에요. 하지만 이란성이라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지요. 저는 책 페이지를 접어가며 읽었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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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발레최민영 저 | 위고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얼추 비슷하게만 해내도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는데, 이젠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열망에 불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씨익 웃음도 짓는다.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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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미경
2018.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