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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집] 독자 50인이 말하는 ‘2018 올해의 책’ ①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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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교수)
『신경끄기의 기술』(마크 맨슨 지음 / 한재호 옮김ㅣ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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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은 종종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결핍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정교하게 분석해서 통찰력 있게 대안을 제시하는 책에서 우리는 사회적 갈증을 해소한다. 그런 관점에서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 은 올해의 책이 될 만하다. '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일상에 널려 있는 잡초를 뽑고 가지치기를 하려는 이들에게 이 책은 강력한 용기를 준다. 결정 장애, 인생 새로 고침, 창의적인 발상 등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담으려 했던 나의 졸고보다, 이 책은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열세 발자국쯤 더 깊이 들어서 있다.
최영희(교사)
『과학하고 앉아있네 4』(원종우, 김상욱 지음 ㅣ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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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주로 팟캐스트를 통해 책을 발견하는 것 같다. TV 대신 팟캐스트로 과학, 철학, 정치, 경제, 심리, 심지어 문학까지 다양한 분야에 귀동냥을 하고 있는 중인데, 언제 어디서나 상상력을 만끽하며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동명의 팟캐스트를 기반으로 한 책은 요즘 <알쓸신잡 3>에 출연해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상욱 교수의 '양자역학' 에피소드를 풀어서 엮었다. 여러 번의 '다시 듣기'로도 딸리는 이해력 때문에 책을 찾게 되었고 결국 올해의 책이 되었다. '과ㆍ알ㆍ못'이던 나는 알게 되었다. 물리학은 삼라만상의 기본 원리요, 모든 앎의 길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양은주(연극배우)
『다시, 연습이다』(글렌 커츠 지음 / 이경아 옮김 ㅣ 뮤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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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연습과 연습실의 계절이야." 날이 추워지면 중얼거리곤 한다. 이때, 나 같은 이들은 자기만의 내밀한 공간으로 숨어든다. 그 공간에서 SNS를 탐닉하곤 하는데, 이 통로로 책을 접하기도 한다. 『다시, 연습이다』 는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클래식 기타 전공자이자 문학을 공부한 저자의 책인데, 오랜 시간 연습실에서 자신을 목도해 친구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가, 그의 고통이 내 것 같아 괴로웠다. 하지만 오늘도 긴 시간 나와의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스스로에게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최선혜(편집자)
『아침의 피아노』(김진영 지음 ㅣ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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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안위를 찾는 일에 열중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아무 곳이나 펼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몇 번이고 곱씹어 생각할 수 있는 글귀에 마음이 간다. 단 하나의 문장에도 마음이 동하는 그런 책들, 내겐 이 책이 그랬다. 나는 주로 읽고 있는 책에서 언급되는 다른 작가나 책을 메모했다가 찾아 읽는 편인데, 그렇게 꼬리 잡기처럼 따라가다 보면 대부분 만족스러운 독서를 하게 된다. 최근엔 바르트의 책을 읽다가 그 책을 번역한 역자의 신간을 읽기도 했다. 비슷한 분위기나 결이라는 단점도 있지만 좋아하는 작가군을 정해두고 그들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도 참 좋다.
강옥진(매거진 뷰티 디렉터)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시간』(이정민 지음 ㅣ 에이엠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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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10분이라도 책을 읽곤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과 같은 독서 시간을 위해 선택하는 건 문학도 아니고, 지식 서적도 아니며, 자기계발서는 더더욱 아니다. 온종일 널뛰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줄, 낮 동안 털리고 너덜너덜해진 영혼을 되찾아줄,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책을 고른다. 이정민 작가는 세계적 교육 전문가들에게 전수받은 지혜와 성찰을 바탕으로 하트워킹(Heartworking)의 놀라운 힘을 알려준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본질과 마주하게 되며, 다시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게 해준다.
기낙경(매거진 에디터)
『흰』(한강 지음 ㅣ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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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동네 도서관에 간다. 2층 양옥집을 개조한 그곳은 어린이도서관이라는 이름답게 늘 아이들로 북적인다. 그 틈에서 엄마들도 드문드문 책을 읽는다. 아이가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수업을 들으러 2층으로 올라간 시간, 나는 느릿느릿 서가를 살피고 눈길 붙잡는 책 한 권을 품에 안는다. 이제부터는 달콤한 독서의 시간, 더 길게 끝까지 읽고 싶은 책은 대출을 받아 집까지 데려온다. 온통 희고 무해한 문장들로 가득한 한강의 소설도 그랬다. 그녀가 찍어낸 언어의 화석 앞에서 나는 자주 숨을 죽였고 점점 그을려가는 흰종이 같은 내 삶을 떠올렸다.
강성희(개인사업자)
『잃어버린 영혼』(올가 토카르축 글 /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ㅣ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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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나갈 때마다 서점에 들러 그림책을 살펴본다. 언어를 몰라도 무언의 소통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영혼이 찾아올 때까지, 나만의 고요한 공간에서 머무는 이의 이야기, 『잃어버린 영혼』 은 폴란드에서 만났다. 제법 길게 떠났던 유럽 여행에서, 짧은 순간 나를 깊게 매료시켰던 책을 국내 번역으로 다시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이란. 책은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의 글과 섬세한 연필 드로잉의 만남으로도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책만으로도 2018년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의 매력이 온전히 담겨 있다.
엄채영(예능 작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박연준 지음 ㅣ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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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박연준 시인과 프리다는 묘한 교집합으로 묶여 있는 사람들이다. 무심코 들여다본 그녀들의 몇 작품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여 박연준 시인이 프리다를 주제로 산문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읽기도 전에 이 책이 던질 파장을 감지하고 홀로 떨었다. 박연준의 따스한 시선은 프리다의 그림을, 그림의 너머를, 그 너머의 생을 덤덤하게 바라보게 한다. 육신의 고통 속에서 집착적으로 한 남자를 사랑한 프리다를 나는 이제야 똑바로 마주 보게 되었다. '어떤 죽지 못하는 사랑'에 대해 오래 생각하던 길고 괴로운 밤, 나와 박연준과 프리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눈 얘기들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곽동구(직장인)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허수경 지음 ㅣ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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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일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했다. 그래서 더욱 챙겨 읽었으며, 많은 곳에서 나와 닿아 있던 허 선생님의 글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고고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지나간 도시에 대한 공허함,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착, 나도 함께 느끼고 아파했던 것들이었는데... 나의 이야기도 아름다운 글이 될 수 있구나,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구나...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지금은 더욱 반짝이는 존재가 되어, 영혼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 매일 만날 수 있게 된 선생님. 고맙습니다.
송현민(교사)
『페미니즘을 퀴어링!』(미미 마리누치 지음 / 권유경, 김은주 옮김 ㅣ 봄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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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퀴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싶어도, 주디스 버틀러의 책을 읽다가 두 번째 줄쯤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던 나에게 이 책이 한 줄기 빛으로 나타나셨다.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이 만나는 지점을 섬세하게 살피고, 더 깊이 생각할 만한 문제들을 제시하여 수업이나 스터디 교재로도 훌륭하다. 책을 살까 말까 고민이 될 때에는 페이스북을 검색한다. 믿을 만한 친구 두 명 이상이 이 책에 대해 언급한 것을 확인한 뒤 바로 구입했다. 역시 후회하지 않는다.
김경무(직장인)
『미식대담』(이용재 지음 ㅣ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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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키친 나이트메어가 되고 마는 것이 작금의 요식업이다. 식당은 범람하고 신뢰는 떨어지는 와중에, 믿을 만한 프로들의 이야기로 요식업에 신뢰를 쌓아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음식 분야 12인의 실무자와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이다. 파인다이닝에서 시작해서 디저트, 주류 등 종목도 다양하다. 사이사이에 한국 요리사들의 고뇌-한국의 식재료 사정, 요리사들의 실력 그리고 진상 고객-를 알 수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은퇴 후 요식업을 담아두고 있다면 필히 일독을 권한다. 책은 <책읽아웃>을 참고한다.
백만기(교육자)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정현채 지음 ㅣ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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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서평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죽음은 두렵고 회피하고 싶은 단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외면하다가 죽음을 통보받고야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대며 세상을 떠나고 만다. 무엇이든 모를 때는 두려운 법이다. 그러나 알고 나면 죽음 역시 무서운 존재가 아니고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생에서 죽음만큼 소중한 경험이 있을까. 죽음에 대한 공부는 염세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다. 죽음을 공부하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지 알기 때문에 죽음 공부는 곧 삶에 대한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정의정(기자)
『커버링』(켄지 요시노 지음 / 김현경, 한빛나 옮김 / 류민희 감수 ㅣ 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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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의 표현을 숨기는 '커버링'은 누구나 다 조금씩 한다.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실제로 남들과 다른 표현을 하는 순간 눈총과 차별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게이이자 이민자 가정의 자녀였던 켄지 요시노가 법전을 부여잡고 침대에 들어간 장면을 읽으며 한국의 사례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지었다. 전환과 패싱, 커버링 세 단계로 소개하는 민권의 영역에서, 한국은 어디까지 왔을까. 올해가 아닌, 언젠가라도 읽으면 좋을 책.
김슬기(기자)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 권영주 옮김 ㅣ 비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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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리스트 동료의 추천으로 만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는 2016년, 올해의 책이었다. 건축과 청량한 시골살이와 연애가 다 등장하는 소설이니 그야말로 취향 저격! 그런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니 읽어볼 수밖에. 이번에는 결이 좀 달랐다. 건축가 청년이 아닌 오래된 집에 살게 되면서 이를 고쳐 쓰게 된 이혼 직후의 남성 이야기였다. 하지만 집엔 오랜 사연이 있었고, 고양이가 있었고, 이사를 온 뒤 가까워진 여인이 있었다. 집을 고치며 자신의 삶의 궤적을 함께 고쳐가는 이야기는 여전히 좋았다. 무료한 삶에 지친 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법한 소설.
나해진(출판 마케터)
『엄마의 독서』(정아은 저 | 한겨레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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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은 책을 알리고 파는, 일종의 영업이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영업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도 그랬다. 좋아하는 워킹맘 기자님이 추천한 책. 아이를 키우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임을, 가끔은 엄마로서 느끼는 행복감보다 그 힘듦이 더 큰 시기가 있음을, 한 번씩은 엄마가 된 것을 무르고 싶은 순간도 있음을 왜 우리는 말하지 못하는가. 자식은 나의 고통과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내가 아님이 분명한데, 왜 나는 너를 '남'이라고 부를 수 없는가. 엄마로, 여자로 살아가며 느끼는 깊고 어두운 감정들이 너무 적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쓰여 있다.
류다인(초등학생)
『비커 군과 실험실 친구들』(우에타니 부부 지음 / 오승민 옮김 ㅣ 더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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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공부할 때마다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쉽고 재미있는 책이 읽고 싶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만난 이 책은 깜찍한 그림과 쉬운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과학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실험기구들이 캐릭터로 나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펼친다. 초등학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에 아기자기한 그림체 덕분에 누구나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같은 작가의 시리즈로 나온 다른 책들도 추천. 비커와 친구들이 정말 유쾌하다!
조성웅(출판인)
『제가 왜 참아야 하죠?』(박신영 지음 ㅣ 바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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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재밌게 읽고 저자에게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했다. 허구인 동화를 실제의 역사로 이만큼이나 풀어낸 분이 궁금해서. 유머 감각이 남다른 분이라 깔깔대며 포스팅을 읽곤 했다. 그러다 신간을 별생각 없이 사서 읽고는 놀랐다. 당신의 성폭력 경험과 고소, 재판 과정을 솔직하게 쓴 것도 놀라웠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이 만연한 구조적 이유를 성폭력 사건들을 조목조목 짚으며 명쾌하게 해설한 글에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지 않으며 양성이 평등해야 성폭력도 없어질 거라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심각한 글인데도 저자의 유머 감각은 감출 수가 없다.
신문수(출판 마케터)
『온다씨의 강원도』(김준연 지음 ㅣ 온다프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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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비보호 좌회전이야." 지인이 습관처럼 내뱉는 이 말에 요즘 들어 마음이 간지럽다. 네 인생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기실 이런 말일 터인데, 용기 내서 네 인생을 선회하라는 주문처럼 들리는 것이다. 『온다 씨의 강원도』 를 읽은 뒤 얻은 병이다. 이 책은 가던 길을 꺾고 강원도로 선회하여 삶의 터전을 꾸린 이들의 '내림굿' 같은 이야기다. 올여름, 작고 예쁜 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속초의 오래된 서점에서 이 책을 보았다. 여행길에 들르는 동네 서점에는 평소 온라인 서점에선 보이지 않는 요정 같은 책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어쩌면 비보호 좌회전일지라도 뚜벅뚜벅 자신의 발걸음을 딛고 있는 이 출판사의 책에 올해의 책 타이틀을 걸어주고 싶다.
김주리(서점 MD)
『나의 사적인 그림』(우지현 지음 ㅣ 책이있는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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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과 잘 맞는 책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워서, 고심해서 주문한 책에도 실망할 때가 많다. 그럴 땐 평소 나와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에게 추천을 받거나 좋아하는 책의 추천사를 살피곤 한다. 추천사는 저자와 가깝게 지내는 작가들이 써주는 경우가 많다. 나와 내 친구가 그렇듯 그 작가와 저 작가는 비슷한 면이 있어서, 추천사의 문장이 내 맘에 들 땐 그의 책도 좋았던 경우가 잦았다. 이 책은 서로 종종 책을 권해주곤 하는 친구에게 추천받았다. 질 좋게 인쇄된 미술 작품과 함께 작품 해설 대신 작가의 취향과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어서 내 마음에 꼭 맞았다.
이지윤(서점 매니저)
『리버스 에지』(오카자키 교코 지음 / 이소담 옮김 ㅣ 고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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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출판사의 광고가 눈에 띄었다. 염소가 차마 삼키지 못한 책을 펴낸다며, 색색이 일렁이는 표지의 이 책을, 나는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 소란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차마 눈치채지 못한 일련의 사건들이 모여 거대한 참극을 만들고, 그것은 풍선처럼 한순간에 펑- 하고 터져버리는 것이다. 흔한 참극이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염소가 차마 삼키지 못한 책을 삼켜보자. 서서히 진행되는 평범한 참극들을 삼키며, 책 속의 그들처럼 UFO를 불러보자.
김유민(대학생)
『우리가 녹는 온도』(정이현 지음 ㅣ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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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떠한 온도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책은 어떠한 사건이, 어떠한 감정이 어떤 온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눈높이에 맞추어 당신의 온도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해준다. 작가는 많은 수식어 대신 일상의 말로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써 내려간다. 자신의 단편을 본인이 다시 해석하여 또 다른 단편으로 엮어낸 구성도 마음에 든다. 정답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감성과 이성을 함께 선사할 수 있는 예쁜 책이다. 평소 베스트셀러를 구매한 독자들이 읽는 다른 책들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들을 찾곤 하는데, 이 책이 그중 하나였다.
전경원(대학교수)
『빛 혹은 그림자』(로런스 블록 엮음 / 이진 옮김 ㅣ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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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좋아해서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까지 가서 「철길 옆의 집」을 감상했고, 그의 작품을 오마주한 영화 <셜리의 모든 것>도 여러 차례 봤다. 책은 우연히 토요신문 신서 섹션에서 '호퍼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17명의 작가가 단편을 선보인다'는 기사를 발견하고 서점으로 가서 바로 구입했고, 그 이후 늘 곁에 두고 살았다. 이 책은 나를 치유해줬던 책이다. 단편 중에 「바닷가 방」이 마음에 들어 10번 정도 읽었다. 남미의 마르케스 소설처럼 마술적 사실주의 감성이 담겨 있다. 사후 바닷가에서 1년을 더 살 수 있다는 바스크인의 이야기. 시간이 나면 바다처럼 깊고 푸른 욕조에서 시간을 보내는 바스크인 파비우스! 고독한 도시인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그림과 단편의 환상적인 조합. 한 발을 바다로 살짝 이동하여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신정진(교열자)
『쓸모 인류』(빈센트, 강승민 공저 ㅣ 몽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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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바지에 보라색 티셔츠, 그 위에 연분홍색 조끼를 입고 꽁지 머리를 한,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여운(?) 67세의 남자가 있다. 바로 『쓸모 인류』 의 주인공, 빈센트 리다. '어른의 쓸모에 대해 묻다'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그는 "어른이 배워야 할 것은 제 쓸모를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찾은 제 쓸모는 버틀러(집사)다. 직접 고치고 꾸민 서울 가회동 한옥에서 아침마다 빵을 굽고, 필요한 가구와 도구를 디자인하고 만들며 '도시 속 자연인'처럼 산다. 자신이 좋아하고, 또 잘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하는, 이른바 '소확행'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어른이 아닐까. 나이 들어 '쓸모 있는 어르신'이 될 것인가, '쓸모없는 꼰대'가 될 것인가. 어른의 쓸모에 대해 알고 싶다면 빈센트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혜미(사서)
『오늘 뭐 먹지?』(권여선 지음 ㅣ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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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신작을 평론이나 SNS 평가로 편견이 생기기 전에 먼저 읽어보려고 노력 중이다.(덕분에 성공률은 반 토막이다.) 대개는 서점 사이트에서 신간을 눌러 줄거리로 가늠한다. 추가적으로는 그 아래 '이 책을 구입하신 분들이 함께 산 책'을 타고 책을 탐색한다. 흘러 흘러 전혀 모르는 분야의 책을 만나게 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내게 독서는 어떤 변덕에도 변하지 않을 오락이다. 이 책을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술과 음식이라니, 가장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 아닌가. 그 덕에 언제 어느 순간에 읽어도 불편함 없이 몰입할 수 있다. 주제를 이해하려고 들지 않아도 되고, 스토리의 전후 관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올해 단연 가장 담백하고 맛있었던 책이다.
한은영(패션 디자이너)
『이토록 보통의』(캐롯 글?그림 ㅣ 문학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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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서핑을 하다 우연히 '보통의 사랑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봤다. 『이토록 보통의』 의 대사였다. 평도 좋고 단행본이 출간되었기에 바로 구입했다. 그래픽 노블에 가까운 형태라 글과 곁들여 읽기 편했는데, 작가가 사랑에 관해 전혀 뻔하지 않은 질문을 던져댄 덕분인지, 올해 내내 책의 후유증 때문에 힘들었다. 다 읽고 (당연히) 캐롯 작가의 팬이 되었는데,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주변에 자주 추천한다. 책을 고를 때는 입소문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SNS에서 자주 눈에 띄거나, 친구들이 추천해주면 믿고 구입하는 편이다.
신기오(그래픽 디자이너)
『지적자본론』(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 이정환 옮김 ㅣ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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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마다 카페와 빵집이 들어서면 어김없이 작은 서점이 생겼다. 출판 산업이 사양 산업이라며 모두가 입 모아 이야기하는데 이상하게도 책방은 계속 생겼다. 어느 순간 서점은 책을 구입하는 곳이 아닌 사람들의 로망이 모이는 곳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LP판의 로망과도 같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붐을 일으킨 일본의 '츠타야 서점'은 궁금한 곳이었다. 서점을 핫한 문화 산업으로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했다. '지적 자본'이라는 단어와 너무 어울리는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 된 책, 이러한 지인의 추천이야말로 내가 책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성기병(편집자)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심기용, 정윤아 지음 ㅣ 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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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겁 많은 독자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우선 온라인 서점에서 충분히 책을 탐색하고 도서관에 가서 실물까지 확인한 뒤 '내 책'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까다로운 선별 과정과는 별개로,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해 얼떨결에 읽게 된 책이다. '비독점적 다자 연애'(폴리아모리)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그렇다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마시라. 이 문제적 연애관을 항변하거나 변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이 허무맹랑하고 심지어 문란해 보이기까지 하는 새로운 사랑의 방식을 읽음으로써, 작금의 연애관이 얼마나 위태롭고 보잘것없는지 조금은 깨달았다.
이주헌(직장인)
『기억의 비밀』(에릭 캔델, 래리 스콰이어 공저 / 전대호 옮김 ㅣ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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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내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이며 아내의 남편이며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잘 키워야 할 두 아이를 둔 아빠다. 이 외에도 나를 규정하는 것은 많겠지만, 이 모든 것은 기억이라는 축적된 데이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번의 독서로 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정신분석의 사조와 우리 뇌 속 기억의 메커니즘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책장에 두고두고 읽어도 괜찮은 주제가 아닐까 싶어 추전하고 싶다. 나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쓴 작가의 신간을 찾아보거나 신문이나 월간지의 북 섹션을 통해서 책 관련 정보를 발견하는 편이다.
김유리(매거진 에디터)
『보이지 않는 고통』(캐런 메싱 지음 / 김인아, 김규연, 김세은, 이현석, 최민 공역 ㅣ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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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대 관심사는 '인간적인 노동'이 아니었을까. 『월간 채널예스』를 보고 선택한 책. 한때 주당 100시간 이상씩 일하던 나의 노동과 백화점에서 종일 서서 근무하던 엄마의 노동까지, 잊힌 기억들을 발굴하게 한 책이다. 모두가 사람답게 살기를 꿈꾼다면 이 책의 무게를 지나칠 수 없을 듯하다. 나는 SNS 중 그나마 상업적인 '오염'이 덜한 트위터 유저들의 언급에서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신간 도서는 출간 때 잠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다가 책이 실망스러울 경우 한두 달 안에 판매가 저조해지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에 좀 시간이 지난 다음 옥석을 가려 구매하고 있다.
이가희(유튜버)
『당신이 남긴 증오』(앤지 토머스 저/공민희 역 | 걷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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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흑인 청년이 검문하려던 경찰의 총에 맞아죽는다. 옆자리에 타고 있던 소녀는 친구를 잃었지만, 선뜻 나서서 항변하기가 두렵다. 쉬쉬하는 언론과 정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1960년대 흑인 운동이 아니라 페이스북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오늘의 이야기다. 흑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 집단,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이제 16세 소녀는 행동하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빠른 호흡과 풍자로 매우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지는 소설이다.
나날이(YES블로거)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정유정, 지승호 공저ㅣ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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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꾼이 된 과정과 그에게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듣는다. 또 이야기를 하는 작가 자신의 삶을 듣고 그의 이야기하는 방법을 듣는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소재, 자료 조사, 배경, 인물, 구상, 형식까지 그 실제를 경험으로 얘기해준다. 그의 경험은 언어에 무게를 더한다. 그 무게로 인해 얘기가 활기를 얻고 있다. 예화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만들어나가는 기능을 한다. 이야기꾼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든다. 무척 고마운, 즐거운 책이었다.
조소담(언론인)
『감옥의 몽상』(현민 지음ㅣ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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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매대 위를 살피다 몇 페이지를 읽고 바로 집어 들었다. 동문회보 발송지를 묻는 전화에 저자는 '감옥'의 주소지를 답할 수 없어 말을 삼킨다. 저자 현민은 징집을 거부하고 병역법 위반자로 영등포 교도소에 들어간 사람이다. 2010년의 일이다. 1년 6개월간의 수감 생활 동안 그는 계속 일기를 썼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2018년 여름에야 이 모든 글을 엮어 책으로 펴낼 수 있었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남성 사회가 어떤 식으로 약자를 만들어내는지, 또 그 구조에서 강자로 살아남기 위해 약자들은 어떻게 변해가는지 기록했다. 적나라한 성찰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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