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는 피아노 두 대가 놓여 있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직접 연주를 하고, 조명은 배우의 말보다도 관객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청력을 잃기 시작하는 베토벤에게 들릴 법한 ‘먹먹한 소리’도 관객에게 함께 전달한다. 귀에 물이 가득 들어갔을 때 날 법한 소리가 소극장에 울리고, 베토벤이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땐 잠깐이지만 완전한 침묵도 관객이 함께 느낀다.
‘청력을 잃은 괴팍한 천재 음악가’라는 문장만으로 베토벤이 설명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대충 알고 있는 사람, 베토벤이라는 인물은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의 무대 위에서 다양한 장치로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베토벤이라는 ‘사람’의 이야기
이야기는 ‘도미니카’라는 수녀를 찾아 편지를 건네는 한 청년으로부터 시작한다. 청년이 도미니카에 건넨 편지는 세상을 떠난 베토벤이 지금은 도미니카 수녀로 불리는 ‘마리’에게 남긴 이야기다. 베토벤의 편지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 죽기 직전의 마음을 하나씩 그린다.
어린 시절의 베토벤과 청년기의 베토벤이 등장할 때 노년기의 베토벤이 해설을 하고, 어떤 때는 세 명의 베토벤이 무대 위에 한꺼번에 나와 ‘베토벤’이라는 인물의 심정을 그린다.
어린 시절 베토벤은 아버지에 의해 혹독하게 피아노 연습을 했지만, 피아노 앞에 있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그는 재능이 있었고, 그가 연주하고 작곡하는 그는 서서히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20대 중후반부터 그는 조금씩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베토벤은 절망에 빠져 집에서 술만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그때 마리와 발터가 베토벤의 집을 찾는다. 건축가 헬무트 교수의 제자였던 마리는 헬무트 교수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발터와 함께 지낼 방법을 찾는다. 법원은 발터가 보호해줄 친척이 있는 영국으로 떠나야 한다고 판단했으나, 베토벤이 발터를 제자로 삼겠다고 한다면 빈에서 마리와 함께 머물 수 있게 해준다고 통보한다. 마리는 발터의 손을 잡고 무작정 베토벤의 집을 찾아 사정을 설명하지만, 베토벤은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베토벤의 평생이 담긴 ‘편지 한 통’
발터와 마리가 등장한 이후 벌어진 사건으로 베토벤은 정적도, 침묵도, 음악이자 언어라는 것을 깨닫는다. 비록 귀는 들리지 않지만, 그의 안에서는 끝없이 꺼내 달라 울부짖는 음악이 있었다.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는 베토벤의 위기의 순간마다 가상의 인물 ‘마리’를 등장시켜 깨달음을 준다. 건축가를 꿈꾸며 세계를 여행하는 여성 마리는 그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마다 등장해 바로잡는 조언을 하고 떠난다.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베토벤이지만, 마리의 충고는 완전히 무시하지 못한다. 극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도미니카 수녀가 건축가를 꿈꾸던 마리다. 그는 실재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베토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토벤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을 이야기를 끌어낸 것이다.
베토벤의 편지가 도미니카 수녀에게 무사히 전달되고, 도미니카 수녀는 베토벤을 추억하며 청년에게 피아노 연주를 부탁한다. 무대 장치와 조명, 배우들의 연기와 연주 실력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숨 가쁘게 흐른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는 뮤지컬 <인터뷰>로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신인 연출상을 받은 추정화 연출이 극본을 쓰고 연출했다. 1월 27일까지 대학로 JNT 아트홀에서 볼 수 있다.
이수연
재미가 없는 사람이 재미를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