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그래미 시상식 후보자 명단이 공개되었다. 900여 명의 여성, 유색인종, 39세 이하의 젊은 선거인단을 대거 투입한 뒤 처음으로 발표된 목록은 딱 예년의 열기를 응축한다. 유색인종을 비롯한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다시 한번 후보자 명단에 올려놓은 것이다. 과연 이 다채로움이 최종 수상으로 이어질지 일단은 두고 볼 일이지만 최소한 최악의 편파성은 면한 듯싶다.
이러한 와중 눈에 띄는 뮤지션이 있으니, 바로 브랜디 칼라일이다. 신인상을 제외한 3개 본상에 이름을 올리고 총 6개의 부분 수상 가능성을 열어둔 그는 올해 여성 뮤지션 중 가장 많은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한국에서는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의 수록곡 「The story」로 짧은 인상을 남겼을 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다수의 음악 애호가가 올해의 그래미 왕관이 또 다른 컨트리 팝 뮤지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혹은 브랜디 칼라일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6번째 정규 음반은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너른 사랑을 받고 있다. 앞서 말한 6개 부분 노미네이트를 포함해 앨범은 처음으로 빌보드 200에 5위로 데뷔하며 시들해진 컨트리의 체면을 살려주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컨트리의 향취를 듬뿍 채우고 현악기, 오케스트레이션을 얹은 음반은 화려하고 풍부하다. 도입부터 컨트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Every time I hear that song」 「Fulton country jane doe」와 타이틀 「The joke」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부분 후보작이자 특유의 풍부한 성량과 감성 자극 진행으로 만족스런 울림을 전한다.
이번 음반에서 특히 돋보이는 점은 브랜디 칼라일이 소울풀한 보컬을 십분 사용했다는 점이다. 「The joke」의 고음으로 뻗어 나가는 창법과 간결한 구조의 반복으로 근사한 서사를 완성하는 「Hold out your hand」의 노래인지 외침인지 모를 절규, 마찬가지로 저음과 고음을 오가며 가장 극적인 격차를 보여주는 「Part of one」까지. 컨트리의 노선을 밟되 그 안에 화려한 악기로 섬세한 감상을 열어두고 선 굵은 보컬을 가미하니 건조했던 컨트리가 한층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비슷비슷한 악기와 구조가 그리고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음반은 허술한 얼개를 보이지 않는다. 모든 곡이 적합한 단계를 거쳐 감정을 쌓고 터트리며, 팽팽한 텐션의 선율로 호흡해 집중도를 높였다. 동성의 여성과 결혼해 낳은 슬하의 딸에게 전하는 노래 「The mother」, 용서하는 것이 잊는 것보다 어렵고 때론 어떤 진실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Hard to forgive」 등 자전적 목소리를 더한 음반은 생생한 그의 목소리와 음악과 만나 시너지를 낸다.
고전적인 장르인 컨트리에 동성애자로서 본인의 삶과 사고를 풍부한 감성과 악기로 풀어낸 이번 음반은 분명 진보의 편에 선다. 그래미 각축전에서 그가 일정 부분 승리를 거둔다면 그건 그의 음악이 컨트리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좋은 음반의 3요소를 모두 갖췄다. 메시지, 선율, 집중력. 과연 61회 그래미는 어떤 청사진을 그려내게 될지, 혁신과 퇴행 그 기로 앞에 서 있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