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을 위한 문학에 힘써왔고 지금도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박상률 선생님은 청소년소설 분야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고독’한 아이들의 성장 서사를 통해 ‘슬픔’의 사회적 차원을 넘어 아픈 아이들을 위한 ‘보살핌’이 구현되는 사회를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작업들을 꾸준히 하고 계시지요. 특별히 이번에는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 이라는 소설집을 2019년 1월, 새 단장을 하여 ‘특별한서재’에서 책을 펴내셨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작가님께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기로 해요.
일부 독자들이 책 제목만 보고 소설이 아니라 ‘시집’인 줄 알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혹시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 을 이 책의 표제작으로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 책을 무조건 믿고 읽어주는, 잘 아는 중학교 국어교사 한 분도 시집인 줄 알고 주문했답니다…….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을 표제작으로 한 이유는 첫째, 사춘기 아이들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지니고 있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주는 제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둘째, 글을 쓰며 사는 작가의 ‘문학관’이 스며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실린 여섯 개의 단편 소설 중에서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은 고등 국어 교과서와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교과서에 실리게 된 배경과 그 이유를 짐작해보신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른 작품보다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이 교과서에 실린 까닭을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주인공이 공책에 시 창작품을 한 편 한 편 적어 넣는 것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이성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성의 말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아울러 보여주고 있지요. 사람들의 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시를 쓰라고 한 현아의 말에 영향력을 받은 것처럼 말이지요.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은 선생님의 자전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라고 하던데요. 만약 이 소설에서처럼 20년 후에야 짝사랑하던 사람에게서 고백에 대한 답을 듣게 된다면 솔직히 어떤 마음이 드실 것 같나요?
아이들에게 삶이란 것은 엉뚱한 일 때문에 비꾸러지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지요. 소설에서처럼 스무 해나 지난 후 사랑 고백을 듣게 되면 ‘이제 와서 어쩌라고?’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늘 어긋나는 것이 인생이란 걸 아이들도 알았으면 합니다.
「이제 됐어?」와 「눈을 감는다」의 두 주인공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죠. 한편으로는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 큰 게 사실인데요. 이 아이들에게 최후의 선택은 과연 자살뿐이었을까요?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안타깝지요.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죽고 싶을 정도로, 또는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지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삶에 대한 ‘면역력’이 더 약해 극단적인 생각을 곧잘 합니다. 우리 아이들 최후의 선택이 죽음이 되지 않게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더 노력을 해야겠지요. 아이들의 죽음은 거의 사회 책임이지요.
「가장의 자격」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고등학생이 주인공이지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학생에게 작가님의 소설을 통해 해주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나요?
부모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때, 아이들의 삶은 여러 곳에서 구멍이 뚫립니다. 물론 역경을 잘 이겨내는 아이들도 있지요. 하지만 그걸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학업에 신경을 써야 할 아이들은 계속 공부만 할 수 있게 사회 안전망이 확충되고 복지 혜택도 더 늘려가야 되겠지요.
「너는 깊다」에서는 ‘동성애’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요. 예민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주인공을 그려 내셨습니다. 그런 작가님의 의도는 어떤 것이었나요?
이성애든 동성애든 사랑의 감정은 다 똑같습니다. 그 똑같은 감정을 동성을 통해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이성애자들의 선입견 같은 것이 작동하지 않게 하면서요. 그래서 소설에서 더 솔직하고 꾸밈없이 나타나 보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가 낚지 못한 것」에서는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이 정도(正導)를 걷지 못하면서 자식만은 자신의 길을 제대로 걷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세태를 풍자하셨지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어른의 역할’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흔히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는 말을 합니다. 어른들은 엉망으로 살면서 아이들만 제대로 자라라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합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삶을 닮고 싶으면 참견 안 해도 올곧게 자랄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른들의 삶이 아이들도 스스로 본받고 싶어져야겠지요!
이 소설을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독자층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일차적으로는 청소년들이 읽어보고 더 강해지면 좋겠어요. 나아가 어른들도 읽고 아이들을 이해해주면 더욱 좋고요!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진 채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에게 ‘이것’만은 잊지 말았으면 하는 당부의 말씀이 있으신지요?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다들 자기가 가장 힘든 고민을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자신보다 더 힘들게 사는 이들도 많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들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걸!
작년부터 ‘글쓰기’ 열풍이 꽤 불었지요. 글쓰기 관련 강의나 강연이 줄을 이었고 글쓰기 책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렸으니까요.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나를 위한 글쓰기’ 혹은 ‘좋은 글쓰기’란 무엇인지 조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글쓰기는 단순한 기술이나 기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살아왔던 만큼 쓰게 되는 게 글이지요. 그러니까 우선 잘 살아야겠지요! 또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나 고통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글쓰기는 단순한 유행이나 열풍으로 그치면 안 되겠지요!
얼마 전, 제17회 아름다운 작가상을 수상하셨더라고요. 앞으로 써 보고 싶은 글이나 계획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쭈욱’ 살면서 글을 쓰렵니다. 주종목(?)인 청소년소설을 위주로 하여 청소년희곡과 청소년시도 쓰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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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박상률 저 | 특별한서재
위태위태한 삶 속에서 어쩌면 자신을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어른'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그때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배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