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소와엄 : 오늘 주제는 ‘이 책이 있어 다행이다’입니다.
불현듯 : 왠지 저 때문에 선정한 주제 같은데 맞나요?
프랑소와엄 : 항상 불현듯 님을 생각하는 저희 둘의 마음이 있죠.(웃음) 그런데 이 주제는 캘리 님이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캘리 : 주제를 고민할 때 아무래도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어떻게 시작해도 따뜻함으로 마무리 짓게 되는 저희 방송 탓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웃음) 이 시간에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이번에는 ‘다행이다’라는 단어에 꽂혀서 정해봤습니다.
불현듯이 추천하는 책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
브룩 노엘, 패멀라 D. 블레어 저/배승민,이지현 역
한 출판사 마케터께서 보내주신 책인데요. 보자마자 둔중한 것을 맞은 느낌이 들었어요. 왜 나한테 이런 책을 보냈지, 하고요. 작년 11월에 나온 신간이긴 한데요. 그때 안 보내고 지금 보내신 것은 나의 상황에 지금 이 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받자마자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띠지에 ‘예상치 못한 죽음과 애도에 관한 서적 중 최고다’라는 추천사가 적혀 있는데요. 저는 읽으면서 예상치 못한 죽음뿐 아니라 예상한 죽음에도 우리에게는 위로가 필요하고, 그럴 때 읽기에도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자가 두 명인데요. 둘의 공통점은 급작스러운 지인의 부고를 들었다는 거예요. 가령 패멀라는 전 남편의 죽음을 경험했고요. 브룩은 아빠 같이 푸근하고 든든했던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했어요. 이들이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슬픔을 치유해보자고 생각하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브룩과 패멀라 둘의 이야기뿐 아니라 둘과 함께 치유 프로그램을 함께 경험했던 많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죽음 이후에 대한 이야기, 죽음을 어떻게 극복하고 자신의 삶으로 다시 돌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잘 기록되어 있어요.
저는 고인의 이름을 계속 불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참 좋았어요. 죽은 이는 없어진 사람이 아니다, 너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다, 라는 것을 강조하는 거죠. 그래야만 상실감이 덜어질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런 부분들이 저한테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어요. 저도 그때부터 아버지 이름을 자기 전에 꼭 한 번씩 불러 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 첫 문장이 “매년 약 8백만 명의 미국인이 가까운 가족을 잃습니다.”인데요. 숫자도 어마어마하지만 저는 8백만 개의 슬픔을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책의 존재가 얼마나 든든한지, 얼마나 따뜻한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저는 이런 책을 믿지 않았었거든요. 그러다 유족이 된 상황에서 읽다보니까 위로가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저는 이 책이 유족에게도, 유족을 가까이에 둔 사람들에게도, 앞으로 언젠가 유족이 될 사람들에게도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도 상실감을 느낍니다. 또한 그것이 제게 가져다 준 새로운 삶도 느낍니다. 모든 상실에는 숨겨진 가능성이 있습니다. 새로 빨아놓은 이불 안쪽에 들어간 잃어버린 양말처럼 그것은 누군가 이불을 흔들어 느슨하게 하기 전까지 그 안에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이불을 조금 움직여 그것이 나오게 하면 됩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저/이현경 역 | 돌베개
프리모 레비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이고요. 1943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극에 달했을 시기에 아우슈비츠로 가서 1945년 러시아군에 의해 아우슈비츠가 해방될 때까지 갇혀서 생활을 했던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입니다. 1945년 수용소에서 나와 몇 달에 걸쳐 힘들게 고향으로 돌아온 레비는 그 직후에 바로 이 책, 『이것이 인간인가』 를 집필해요. 그리고 2년 뒤 여러 대형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지만 거절 당하죠. 결국 유명하지 않은 작은 출판사에서 초판 2,500부를 찍고 출간된 후 절판이 됩니다. 그러다가 10년이 지난 1957년에 유명 출판사에서 재출간이 되고 그때부터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에 번역도 되면서 꾸준히 읽히고 지금까지 사랑 받는 책이에요.
프리모 레비는 “심판자보다는 증언자 역할이 좋다”고 말했거든요. 이 책은 본인이 직접 겪고, 눈으로 본 일들만 썼다고 하고요.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절망이나 한탄 보다는 침착하고 정제된 언어로 관찰하는 글이 참 인상적이에요. 특별히 악하지 않아서 악한 사람들, 보통의 사람들이 행하는 악함을 들여다보는 일이 너무 힘든 일이고요. 바로 그 부분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질문과 숙제를 주는 것 같은데요. 이 책에도 사실은 그런 인물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안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어요. 저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요. 한 이탈리아인 노동자가 프리모 레비에게 만날 때마다 빵을 주고, 배급 받은 음식을 남겨서 주고, 기운 스웨터를 줬던 거예요. 어떤 자부심이나 기쁨도 없이 아주 평범하고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그 일을 행했던 거죠. 그의 이름이 로렌초인데요. 그에 대해 쓴 부분을 읽어드릴게요.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게 된 것이 로렌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도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끝없이 상기시켜준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수용소 밖에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선善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땅에 묻혔다.(중략) 하지만 로렌초는 인간이었다. 그의 인간성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다. 그는 이 무화無化의 세상 밖에 있었다.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쫌 이상한 사람들』
미겔 탕코 글그림/정혜경 역 | 문학동네
저한테 다행인 건 뭘까를 생각해봤어요. 그랬더니 두 분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희 방송을 들어주시는, 특히 <어떤,책임>을 조금 더 좋아하고 챙겨서 들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어요. 그래서 청취자 분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책을 떠올렸고요. 이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2년 전에 나온 책인데요. 출간되자마자 보고, 너무 좋아서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몇 번 선물을 했던 책이에요.
사실 이 그림책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면 읽으시면 안 돼요.(웃음)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쫌 이상한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짧지만 아주 단단한 그림책이라고 생각하고요. 짧으니까 한 번 읽어드릴게요.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마음을 씁니다.
혼자라고 느끼는 이가 있다면 곧바로 알아채고,
자기 편이 졌을 때도 상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요.
가끔은 그저 자기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합니다.
즐거우면 그만이죠.
다른 사람 웃기기를 좋아하고,
나무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중략)
세상에 이렇게 쫌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색감 많이 안 쓰고, 심플한 그림을 좋아하는데요. 이 그림은 아주 감각적이고요. 그림과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저라는 사람도 생각하게 되면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생각하게 돼요. ‘다른 사람 웃기기를 좋아하’는 불현듯 님이나 ‘식물을 보살피는 데 재주가 있’는 캘리 님이 생각나는 그런 그림책이었어요.(웃음)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 ‘쫌 이상한데 너 진짜 사랑스러워!’라는 말을 고백하고 싶을 때, ‘네가 있어서 나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라는 말을 전하고 싶을 때, 이런 말을 직접 쓰기는 낯간지럽고 부끄러우니까 슬며시 이 책을 선물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24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