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애독자들에게 ‘전민희’라는 이름 석 자는 국내 판타지 소설을 상징하는 대명사와도 같다. 1998년 PC통신 나우누리에 첫 작품 『세월의 돌』 을 연재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녀가 『룬의 아이들: 데모닉』 을 펴낸 이후 1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전민희 작가의 소설을 한장 한장 아껴가며 책장을 넘겨보던 학생 독자들은 이제 사회인으로, 학부모로 성장했다.
11년 만의 신작,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 의 출간을 기념하며 지난 1월 24일 홍대 프리스타일 스페이스에서 YES24와 문학동네의 장르소설 전문 브랜드 ‘엘릭시르’가 준비한 ‘전민희 소설학교’가 열렸다. 이날 북토크에는 오랫동안 그녀의 작품을 기다려온 독자 1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한 시간이었다. 사회를 맡은 엘릭시르의 임지호 편집장은 “전민희 작가님께 받은 글을 읽고 ‘나는 왜 판타지 작가가 되었는가’라는 토크 주제를 선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세상에 살아가는 한 개인의 답답함으로 판타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전민희 작가는 삶에서 문득 만나는 세세한 아름다움의 순간에서 영원과 불멸을 떠올린다고 전했다.
이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임지호 : 연말연초를 지나는 동안 굉장히 바쁘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전민희 : 2018년은 제게 너무 힘든 한 해였어요. 책 열다섯 권의 교정을 다시 보고, 새 책을 한 권 썼으니까요. 11월 말 쯤이 되자 1년간 전력 달리기를 한 기분이 들어서 당분간 좀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컸는데 쉬지 못했죠. 저희 집 고양이가 아파서 저를 떠났거든요. 그래서 12월은 간병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요. 고양이가 떠나고 1월 초에 정신을 차리고 싶어서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사실 아직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임지호 :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 는 11년 만의 신작입니다. 과거에 책을 출간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차이점이 있나요?
전민희 : 책은 한권 한권 낼 때마다 느낌이 많이 달라요.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은 아무래도 『세월의 돌』 1권을 냈을 때이고요. 그 이후는 비슷한 느낌의 반복과 더불어 각각의 책이 가지는 느낌이 있는데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 는 워낙 오랫동안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뒷이야기를 오랜 시간 상상해 온 독자분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궁금한 마음이 컸어요. 개봉 전에 기대가 제일 컸던 책이었습니다.
임지호 : 저는 작가님이 어떻게 판타지 소설을 쓰게 됐는지 궁금해요. 판타지라는 장르의 어떤 점에 그토록 매료되었던 건가요?
전민희 :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가 꿈이었어요. 물론 그때는 판타지 작가라는 직업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그저 뭔가를 쓰고 싶어서 좋아하는 소설의 뒷이야기를 써보곤 했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 처음 썼던 글부터 판타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웃음) 판타지라는 장르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떻게 이 일을 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가졌던 의문이 하나 있었거든요. 이건 저만의 별난 의문이 아니라 인류라면 누구나 가지는 궁금증일 텐데요. ‘나는 왜 하필 이 시대에, 이 모습으로,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이요. 그 의문을 처음 느꼈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황당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나는 특별한 존재인데, 이렇게 특별한 존재도 아무 이유 없이 탄생을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아주 어릴 때 했어요.
그럼 왜 이유가 없을지 좀 더 생각을 해봤더니 일단 내가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닐 수 있는 거죠. 또는 이 세상에는 어떤 특별한 일도 우연히 벌어질 수 있어요. 아니면 진짜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요. 셋 다 말이 되지만, 어쨌든 제게 절망만 안겨 줬어요. 인생이 마치 목적지도 없이 달리는 마라톤 같았거든요. 오랫동안 제 삶에 어떤 빈칸이 있었던 거예요. 제가 신화나 판타지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건 이 때문인 것 같아요. 신화나 판타지에는 그 세계가 왜 만들어졌는지 쓰여 있거든요.(웃음) 내가 신이 된 것처럼 세계를 조감할 수 있고, 이 세계의 존재와 작동방식이 쓰여 있는 그 문서들이 너무 좋았고 제겐 위로이자 즐거움이었어요. 그렇다면 나도 이러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인류가 처음 신화를 만든 것도 사실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자기에게 닥친 모든 것의 이유를 모르는 게 무서워서 이야기를 만들었던 게 아닐까요? 제가 최초에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판타지를 썼던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임지호 : 저도 최근에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엘릭시르는 미스터리 서적을 주로 만들고 있거든요. ‘미스터리는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 같은데, 나는 이 장르를 왜 좋아하는가?’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 이유 중 가장 그럴 듯 했던 게 전민희 작가님이 느끼신 것과 비슷했어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명확한 답이 있는 건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미스터리 안에서는 어떤 불가능한 문제나 갈등상황도 어떻게든 설명을 해내요.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도 책 속에서는 명쾌해진단 말이에요. 이런 이유로 저 또한 신화를 오랫동안 좋아했어요. 작가님께서는 과거에 흠모하며 보았던 신화나 판타지 작품 중 특히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전민희 : 제일 처음 보고 좋아했던 건 아무래도 그리스 신화였던 것 같아요. 저희 집에 있던 큰 전집 안에 그리스 신화가 있었는데 무척 축약된 거였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이야기가 끌리더라고요.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 세상은 이런 거야’라고 난폭하기 이야기해요. 이유가 너무 명확해서 징벌을 주기도 하고 세계가 뒤집어지기도 하죠. 일반 소설 속에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면, 신화는 ‘내가 다 안다’고 말하는 점이 참 좋았어요. 그렇게 여러 신화를 찾아보고 좋아하게 됐죠. 또 판타지 동화들을 좋아했어요. 그중에서도 어떤 세계가 보이는 것들이요. 예를 들어 『반지전쟁』에서 엘프들이 서쪽으로 떠나간다고 했을 때, 그 세계의 윤곽이 보이는 느낌이 있는 거예요. 이곳에서 한 걸음 걸어 나가겠다고 하는 순간, ‘아 여기는 경계가 있구나’라는 느낌이 드는 게 참 좋아요. 또 『사자왕 형제의 모험』 이란 책을 좋아했는데 여기에도 이 세계의 바깥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어요. 보통 이런 이야기들은 기쁘게 떠나기 보다는 약간 슬픔이 서려 있는 채로 세계를 떠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도 항상 그런 상상을 해요. 익숙한 이 세계의 윤곽을 느끼기 위해 한 발 떠나는 상상을 하는 순간의 그 느낌이 좋아요.
임지호 : 『룬의 아이들: 윈터러』 개정판 교정 작업을 하면서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어요. ‘윈터러’는 ‘겨울의 검’인데, 겨울이란 계절은 한 사이클을 끝내고 닫는 마무리의 느낌이 있잖아요. 작품의 내용과 계절을 연관시킨 이런 부분들도 혹시 의도하고 쓰신 건가요?
전민희 : 계절, 날씨는 제 글에서 숨은 조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계절이 때로는 인간의 심상을 반영하기도 하고, 앞서서 표현해주기도 하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천둥번개가 친다거나 하는 계절과 날씨의 변화는 신화나 설화에서 주로 사용된 표현기법이죠. 만약 제가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쓴다면 등장인물 또는 소설의 상황과 계절적 배경을 살짝 비틀어서 흥미로운 거리감을 만들 필요가 있을 텐데, 판타지는 제가 생각하기에 인간이 최초에 가지고 있던 무의식의 근원 같은 것과 맞닿아 있어서 하필이면 그때, 그 사건이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경우가 있어요.
임지호 : 인간이 최초에 가지고 있던 무의식의 근원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전민희 : 신화와 설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을 해보면, 저는 인류가 아주 원초적으로 갖고 있던 심상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앞서 이야기했듯 무서워서 신화를 꾸며낸 거죠. 천둥번개가 도대체 왜 치는지 모르겠는데, 모르니까 천둥의 신도 만들어보고요. 어쨌든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제일 잘 표현하기 위해 애써서 공들여 만든 이야기인 거예요. 오늘날 우리들은 그 이야기를 재미삼아 읽지만, 당시에는 어찌 보면 사람들의 성장이나 사회 질서를 책임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을 거란 말이죠. 그때는 솔직하고 기능적으로 어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인간은 자기 의도를 감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판타지는 비유적인 면모가 큰 장르잖아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쓰지만, 어떨 때 보면 현대 자체를 그대로 다룬 것보다 훨씬 직유법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그래서 날씨가 등장인물을 따라 바뀌고 어떤 계절이 일어나고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름다운 찰나에 불멸이 있다
임지호 : 캐릭터가 어떤 갈림길에 서거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이시는 것 같은데요. 작품에서 벗어나 작가님에 대해 여쭤볼게요. 만약 소설가가 아니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전민희 : 사실 소설가라는 직업을 제가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래도 상상을 한 번 해본다면, 어떤 직업일지는 모르겠으나 뭘 하든 간에 굉장히 성실한 사회인이었을 것 같아요. 판타지 소설가라고 하면 자유로운 상상력을 먼저 생각해주시는데 제 반대쪽 면에는 기묘하게 정돈되고 강박적으로 깔끔한 구석이 있거든요.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토론을 벌이는 장면에서 저의 그런 면모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런 사회인이 됐다고 해도, 취미로 무언가 쓰긴 했을 거예요. 일이 아니다 보니 더 강렬하게 제 글을 사랑했겠죠.(웃음) 하지만 양적으로는 얼마 쓰지 못했을 거예요. 돌이켜 보면 『세월의 돌』 을 쓰고 작가가 되기 전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글을 제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대학 가면 시간이 많아서 더 잘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성실한 사회인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겠죠. 지금 저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글을 썼다고 생각해요. 이정도 글을 쓰면 자기 자신을 다 펼쳐놓을 수밖에 없어서 내 안에 있는 불안이나 불만, 억울함 등 맺힌 부분이 어느 정도 풀려요. 그런데 만약 사회인인 제가 있다면 이만큼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뭔가 해소되지 않은 채 강렬히 꼬인 글을 쓰지 않았을까요.(웃음) 신맛이 확 나는 에스프레소같은 글을 쓰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임지호 : 소설은 쓰다가 막히면, 얽힌 부분부터 다시 쓰기 시작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실제 상황에선 그럴 수가 없죠. 작가님께서도 현실에서 만났던 어떤 갈림길을 돌아보시기도 하나요?
전민희 : 그렇죠. 제가 이런저런 노력을 했고, 때로는 잘하고, 잘못하기도 하면서 지금의 저를 만들었지만 그 안에는 제가 바꾸지 못하는 많은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최초부터 나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의 시도가 아닌 어떤 걸로 제가 바뀌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어느 시점에 멈춰 서서 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어리둥절할 때가 있어요.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린 거지? 이게 정말 현실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 세계에 대해 뭔가 조금이라도 알아냈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유감이지만 전혀 아는 게 없더라고요.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망할지도 모르겠어요. 하나 아는 게 있다면 언젠가 나도 이 세계에서 퇴장한다는 것뿐이에요.
그래도 마냥 절망적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죠. 혹시 <샤인>이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그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저는 대학교 3학년이었는데 정신적으로 힘든 아르바이트가 끝난 뒤, 지금은 없어진 ‘씨네하우스’라는 극장에서 혼자 그 영화를 봤어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온 로비에서 이 영화의 엔딩곡이 흘러 나왔거든요.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라는 곡인데 혼자 로비에 멈춰 서서 반복적으로 그 곡을 계속 들었어요. 그리고 홀린 듯 OST앨범을 샀죠. 어찌 보면 제가 아르바이트의 억울함을 아름다운 영화와 음악으로 해소했던 것 같아요. 23년 전의 이 작은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그 순간이 제게 참 아름다웠기 때문이겠죠.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계가 어떻게 태어나고 망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세계에서 잠깐 벗어나 어찌됐든 모든 게 상관없어지고 나와 아름다운 것만 존재하는 것 같은 짧은 순간이 있는 거잖아요. 순식간에 지나가는 찰나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걸 위해 태어난 것 같고, 이 기억만으로도 시시한 삶쯤은 충분히 용서해줘도 될 것 같고요.
임지호 : 그 얘기를 들으니 제 경험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출판단지 근처에 아울렛도 생기고 유동인구가 많아졌지만 7-8년 전에는 굉장히 휑했어요. 그런데 메가박스 영화관이 하나 있어서 일이 늦게 끝나면 종종 영화관에 들렀다 집에 왔거든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관 하나를 혼자 차지하고 영화를 볼 때가 많았어요. 그렇게 하고 집에 들어오면 뭔가 모를 충족감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있더라고요.
전민희 : 맞아요. 제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외에도 여러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저의 경우에는 돈을 벌거나 일이 잘 풀려서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은 별로 없어요. 그건 그냥 기분 좋음으로 끝날 뿐이죠. 저는 대부분 예술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고요. 또는 자연에서 받을 때가 많아요. 2007년경 유럽 여행에서도 굉장히 아름다운 어떤 순간이 있었어요. 독일의 ‘검은숲’에 방문했을 때예요. 저는 아무 장비도 갖추지 않았는데 트래킹 장비가 없이는 그곳을 들어갈 수 없겠더라고요. 맨 몸으로 감히 들어가기엔 숲이 너무 웅장한 거예요. 그래서 길을 잃을까봐 앞서 가는 사람들을 조금씩 따라갔어요. 가다보니 어느 순간 탁 트인 들판이 나오더라고요. 거기에 멈춰서 가만히 앉아있었어요.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아주 드넓은 들판에서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옆에 있는 남편에게 “우리 나중에 죽을 무렵이 되면 여기 다시 오자”라고 말했어요. 다시 찾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좋은 순간이었어요.
임지호 : 북토크 초반, 판타지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 세상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세상을 만드는 글을 쓴다고 하셨잖아요. 현실에서는 그러한 감정을 어떻게 극복해내시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극적인 순간에 힌트가 있는 것 같네요.
전민희 : 삶은 무의미한데다가 머지않아 사라질 게 틀림없고, 심지어 금세 잊힐 것 같은 두려움이 제게 판타지 소설을 쓰게 만들었고 그 이야기 안에서 불멸하는 존재들을 그리게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가 그린 사람들 중에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없거든요. 어찌 보면 저조차도 그런 이야기를 쓰며 무의식 속에 불멸이 답은 아니라는 걸 느꼈나 봐요. 그럼 어디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까 생각했을 때, ‘순간’에서 영원을 찾을 수 있겠더라고요. 아름다운 것과 나, 둘만 함께하는 순간 속에 하나하나 영원이 들어있는 거예요.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내 존재의 이유가 있든 없든 간에 그 아름다움으로 세상의 모든 두려움에서 잠깐 벗어난 순간 불멸을 획득하는 것 같고, 어쩌면 이게 진짜 불멸보다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구슬처럼 빛나는 그 순간들이, 작은 팔찌 정도의 규모만 돼도 참 좋겠어요. 내가 그걸 쥐고 덜 두려워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그 순간들이 저를 지탱해주고 있고, 그 힘으로 이 세상에 머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세계가 감추고 있는 무의미한 비밀이 압도적으로 거대해서 나 하나로는 대적이 안 되기 때문에 나를 계속 확장해나가는 거죠. 그래서 제 작품을 읽는 독자분들께서 ‘내가 두려운 나머지 세상에 마구 찍어놓은 점들을 보시다가 혹시 이렇게 작지만 섬광처럼 번뜩이는 불멸을 획득하시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질 때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지곤 합니다.
임지호 : 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작가를 꿈꾸거나 실제 작가가 된 이들이 많아요.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민희 : 판타지 소설은 우리 세상의 거대한 비유이자 어떤 순간에는 삶에 대한 불복종 같다는 생각을 해요. 현실이 우리를 압사시킬 때가 있잖아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윽박지를 때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데, 판타지 소설을 쥐고서 “나는 그렇게 안 살 건데?”라는 대답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만약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판타지에 이런 힘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동시에 많은 사람의 기쁨을 만들고 있다는 점도요. 기쁨에는 마력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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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전민희 저 | 엘릭시르
. 독자들은 캐릭터의 생각과 행동에 반응하며 공감하고 이입한다. 캐릭터의 역사가 쌓이면 독자와 세계의 친화도는 높아지고,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가 된다.
성소영
쓸수록 선명해지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