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김사월의 책장
뮤지션 김사월이 요즘 애정하는 『비교적 낙관적인 케이스』, 『사진의 용도』, 『동급생』, 《씨네 21》, 『우는 나와 우는 우는』.
글 : 김사월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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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낙관적인 케이스』

오카다 도시키 저/이홍이 역 | 알마


단편 소설집이지만 왠지 초월적 에세이로 읽힌다.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을 통찰하다 불현듯 인간 세상을 허무하게 통달해 버리는 순간들이 담겨 있다. 여기서 많은 경우 화자의 속을 썩이는 상대방은 무대에 서는 사람, 퍼포머이고 그건 작가 자신의 직업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기본적으로 개그적인 분위기가 옅게 깔려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꾸 개그를 치려는 사람은 슬픈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지적 시점으로 휙휙 넘어가 버리는 화자는 진지한 자세를 잡을수록 웃기고 슬퍼지고, 소심한 척 사소한 것들을 짚다가 정곡을 찔러버린다.


 


『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저/신유진 역 | 1984 books


나는 그녀가 쓰는 섹스 이야기가 좋다… 욕구에 너무 솔직해서 웃기고, 자신과 사건을 파고 파다가 거의 인류학자가 되어버리는 지점이 좋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조금 훑어보고는 바로 주문을 했다. 이 책은 연인이 벗어놓은 옷과 신발, 어질러진 식탁과 복도를 찍은 사진들이 실려있고 그 사진들을 전시장 도록처럼 설명하다가 장면이 이끄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탐미적인 연인들이 옷을 정신없이 벗어 던지고 사랑을 나눈 후, 그날 밤의 흔적들을 범죄 현장인 양 진지하게 사진으로 남기는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미친 사람들 같다. 그리고 미친 여자가 쓰는 미친 글을 사랑하지 않기란 어렵다.



 

『동급생』

프레드 울만 저/황보석 역 | 열린책들


충격적인 반전으로 유명한 중편 소설. 뭐 얼마나 반전일까 생각하며 읽다가, 마지막 그 한 문장에 그만 움직일 수 없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역사 속에서 사춘기 소년들이 어떤 것을 느끼고 변화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다소 표면적으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두 소년의 우정이 아름답고 재미있어서 술술 읽힌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싶다. 이 정도 우정이면 거의 러브 스토리 아니야? 하며 낄낄 웃으며 따라가다가 이거 러브 스토리였네… 하며 울면서 닫게 되는 책.


 

씨네 21

씨네21 편집부


최근 1년 동안 내가 가장 잘 쓰고 싶었던 글은 《씨네 21》 에세이 지면 연재였다. 국내 유일의 영화 주간지로 종이책이 매주 나오고 있는 이 매체에 나는 존경심을 느낀다. 어린 시절 학습지처럼 부지런히 읽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도 있지만, 생각보다 밀리지 않고 꾸준히 읽고 있다. 당연히 영화를 주제로 한 잡지지만 보려고 마음먹는다면 이 렌즈를 통해 현재의 세상을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올해 4월 동안에는 30주년 특집 4부작(?)으로 매주 풍성한 기사들을 만날 수 있다. 날카롭고 지적인 논평들 속 1g의 유머가 풍미를 더한다.


 


『우는 나와 우는 우는』

하은빈  | 동녘


가슴이 벅벅 찢어질 것 같다. 장애인-비장애인 연인의 사랑 이야기에 너무 슬퍼하는 건 좀 별로인 것 같아서 정치적 올바름을 찾아야 할 것 같다가도 그런 거 다 치우고 그냥 엉엉 울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결심한 사람이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려봐도 성에 안 찰 정도로 괴로워하는 자학의 언어가 이상하게 아름다워서 말리는 것도 잊은 채 감탄하게 된다. 게다가 장애인 돌봄 당사자성 개그가 웃기기도 하여 독자를 (좋은 의미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다.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너무한 세상과 실패라고 말하기에는 너무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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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낙관적인 케이스

<오카다 도시키> 저/<이홍이> 역/<홍살롱 그림방> 그림

출판사 | 알마

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공저/<신유진> 역

출판사 | 1984Books(일구팔사북스)

[예스리커버] 동급생

<프레드 울만> 저/<황보석> 역

출판사 | 열린책들

씨네21 (주간) : 1503호 [2025]

씨네21 편집부

출판사 | 씨네21

우는 나와 우는 우는

<하은빈>

출판사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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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2014년 김사월 × 김해원의 [비밀]로 데뷔. 프렌치 팝과 록의 영향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는 포크 송을 쓴다. 정규 앨범 [수잔], [로맨스], [헤븐], [디폴트]를 발표했다. 가끔 목소리나 편곡으로 다른 이들의 음악에 서포트를 한다. 가끔 수필을 쓰거나 영화 음악을 만든다. 그리고 안 해본 것도 재미있어 보이면 한다. 잘 웃고 잘 울다가 뭔가를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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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도시키

1973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게이오 대학교 상학부를 졸업한 후 소설가이자 극작가, 연출가를 겸하는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07년 출간한 첫 소설집 《우리에게 허락 된 특별한 시간의 끝》이 “‘의지의 행위로서의 낙관주의’를 문학의 범주에서 실감시켰다”는 극찬을 받으며 제2회 오에 겐자부로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각 문예지를 통해 단편소설들을 발표하고 있다. 2013년에는 첫 연극이론서「소행遡行: 변형해가는 연극론」을 출간했다. 1997년에 ‘셀피쉬selfish’를 어린아이가 발음한 듯한 이름의 ‘첼피츄 chelfitsch’를 창단했다. 2004년 연극 「삼월의 5일간」을 발표, 일본 최고 권위의 희곡상인 기시다 구니오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부터 동 희곡상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그 외에도 2005년 요코하마 문화상·문화예술장려상을, 2007년에는 가나가와 문화/스포츠상의 문화/미래상을 수상하였고, 2006년에는 독일 뮐하임 극작가 페스티벌에 일본극작가 대표로 참가했다. 그의 연극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문법으로 일본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을 뿐만 아니라, 성공적으로 유럽 무대에 진출해 ‘현대의 베케트’라는 극찬을 받았다. 언제 끝 날지 알 수 없는 구시렁거리는 듯한 말투와 힘 빠진 신체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은 오늘날 도쿄 젊은이들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며, 오카다 연극의 중요한 특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그만의 극작술은 후배 극작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경계를 넘어 무용계와 시각예술, 문학 분야에서도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연극은 일본뿐 아니라 독일, 벨기에, 한국 등 세계 각국에서 제작되어 끊임없이 초연 및 재공연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오카다 도시키 작/연출 작품으로는 「삼월의 5일간」, 「핫 페퍼, 에어컨, 그리고 고별사」, 「현위치」, 「지면과 바닥」, 「God Bless Baseball」 등이 있으며, 이중 「God Bless Baseball」은 오카다 도시키의 첫 한일 공동제작 프로젝트로, 2015년 광주 아시아 예술극장 개막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다. 또, 잡지 《미술수첩美術手帖》에 게재된 「여배우의 혼」(2012년)과 미발표 소설 「여배우의 혼 속편」을 한 작품으로 묶은 「오카다 도시키 단편소설전: 여배우 의 혼, 여배우의 혼 속편」이 한국 연출가와 한국 배우에 의해 2016년 1월에 ‘연극실험 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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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프랑스 작가이자 문학교수이다. 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Yvetot에서 보냈고, 노동자에서 소상인이 된 부모를 둔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정식 교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주제들을 드러내는 '칼 같은 글쓰기'로 이를 해방하려 노력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4년, 자전적인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했고, 1984년,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남자의 자리La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 전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대형 프레스코화로 완성한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자신의 출생 이전에, 여섯 살의 나이로 사망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인 『다른 딸L'autre fille』을 선보였고, 같은 해에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를 갈리마르 Quarto 총서에서 선보였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 총서에 편입되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2020년 『삶을 쓰다』에 실렸던 글들을 추려서 재수록한 『카사노바 호텔』을 발표했다. 데뷔 시절부터 아니 에르노는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의 카페-식료품점이었던 자신의 유년 시절로 구성된 자전적 소재에 몰두하기 위해 모든 픽션을 포기했다.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한 그녀의 작품들은 부모의 신분 상승(『남자의 자리』, 『부끄러움』), 자신의 결혼(『얼어붙은 여자』), 성과 사랑(『단순한 열정』, 『탐닉』), 주변 환경(『밖으로부터의 일기』, 『바깥세상』), 낙태(『사건』),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심지어 혹은 자신의 유방암 투병(『사진의 사용』, 마르크 마리 공저)을 소재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해부하였다. 그녀는 “판단, 은유, 소설적 비유가 배제된” 중성적인 글쓰기를 주장하면서 “표현된 사실들의 가치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객관적인” 문체를 구사,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과 동일한 가치로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 에르노에게는 “자아에 내재된 시적이고 문학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쓰기는 “문학적, 사회적 위계를 전복하려는 의도에서 출발, 문학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상들 ― 슈퍼마켓, 지하철 등 ― 에 대해, 이것보다 고상한 대상들 ― 기억의 메커니즘, 시간의 감각 등 ― 을 서술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 둘을 결합하여” 글을 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생각할 때 썼던 그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인 그녀의 작품은 자전의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니 에르노는 사회학자의 방법론을 채택, 자신을 집단적 표본과 특성을 체득한 한 체험자의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를 특수한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특수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나 자신을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나를 사회적, 역사적, 성적 경험과 판단의 총합, 언어의 총합, 또한 세계(과거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주관성을 형성하게 된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의 주관성을 보다 일반적이고 집단적인 메커니즘과 현상을 되살리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다. ” 그녀에 따르면 사회학적 방법은 전통적으로 자전적인 ‘나’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사용하는 나는 비인격적 형태를 띄고 있다. 성별도 애매하고, 종종 나의 말이기보다는 타인의 말일 수도 있는, 전체적으로 다인격적 형태이다. 그것은 나를 픽션화하는 수단이 아닌, 내 체험 속에서 현실의 지표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로써 그녀의 작품은 자신의 궤적의 “사회적 이종교배”(소상인의 딸에서 학생, 교수, 이어 작가가 된)와 그에 따르는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망을 접하고 [르몽드]지에 애도의 헌사문 「부르디외, 회한」을 기고하면서 사회학적 방법론과 자신의 작품 사이의 유대감을 밝혔고, 부르디외의 글이 그녀에게 “자유와, 세계 펼에서의 실천이성과 동의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