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바냐 삼촌> - 마침내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회의감, 우정, 사랑, 욕망이나 슬픔 같은 것들 이후에도 일상이 온다. 모든 순간을 일상으로 뒤덮고 견디다 보면 진정으로 추구했던 쉼에 가닿을 수 있을까.
글ㆍ사진 이수연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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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새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러시아의 작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연극 <바냐 삼촌> 이 시작된다. 식탁 위에서 차를 따르는 유모의 느린 손길처럼, 무대 위 시간도 고요하고 나른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오랜 시간 이곳에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유모는, 뒤죽박죽되어버린 일상을 나직하게 한탄한다. 평소 같으면 일상의 중심이 되었을 시간인데 모두가 잠든 시간처럼 고요해지고, 사라진 것처럼 되어버렸다. 소냐의 아버지 세레브랴코프 교수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옐레나가 온 이후부터 저택의 사람 모두가 정오가 다 돼 잠에서 깨고, 점심 식사는 오후 7시나 되어야 한다. 밤새도록 책을 읽는 교수의 심부름을 해야 하는 바람에 하인들도 낮과 밤이 바뀌었다. 고요한 호수 같았던 일상은, 시간의 흐름이 바뀌면서 물밑에서 일렁이는 파장을 맞이하게 된다.

 

 

끓어오르는 감정들이 하나씩 터진 이후에도


연극  <바냐 삼촌> 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희곡 작품이다. 1897년에 발간된 『회곡집』에 발표되었고, 1899년 모스크바에서 초연했다.


연극의 배경이 되는 시골 마을 저택에는 오랜 시간 바냐와 그의 어머니, 죽은 누이동생의 딸인 소냐와 유모, 하인들이 살았다. 바냐의 오랜 친구인 의사 아스토르포는 식구들은 물론 집안의 하인들과도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식구가 아닌 방문객이라고는 아스토르포 뿐이었던 고요한 저택에 소냐의 아버지 세레브랴코프 교수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옐레나가 아주 오랫동안 이곳에 살 것처럼 머물기 시작했다.


그들이 저택을 찾아오면서 바냐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생각이 조금씩 균열되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 바냐는 저택을 지키며 끊임없이 일을 했다. 일한 것으로 빚을 갚고, 저택을 유지하고, 도시에 사는 교수에게 생활비를 보냈다. 교수는 바냐가 보낸 돈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그런데 그들이 시골 마을에 오는 순간 바냐는 그렇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자신의 가족들이 칭송하고, 존경했던 교수는 역사에 남을 만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유행처럼 흘러갈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 이후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를 위해 일했던 자신의 삶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냐는 그와 함께 온 그의 두 번째 부인 옐레나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 때문에 피어난 비참함인지, 비참함 때문에 매달리게 된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냐의 마음은 매일같이 끓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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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을 일상으로


교수와 아내 옐레나, 바냐 뿐만 아니라 의사 아스토르포와 소냐까지, 복잡한 선을 그리며 서로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는다. 바냐는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만, 옐레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극의 막바지에서 바냐는 끝없이 표현했던 자신의 진심이 하나도 가닿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


모든 관계의 중심이 되었던 교수와 옐레나가 저택을 떠나고, 혼돈에 빠졌던 저택에 마침내 평온한 저녁 시간이 온다. 그때의 저녁 시간은 점심을 먹는 시간도 아니고, 조용하고 평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옐레나가 떠나던 날 절망에 빠져 죽음을 선택하려던 바냐에게 소냐는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마침내 우리는 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하루를 정리하고, 가계부를 작성하고, 내일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테이블에 앉는다.


마치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처럼, 보았던 것도 지나간 것도 머물렀던 것도 없었던 것처럼, 저택의 시간은 다시 이전과 똑같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수많은 일이 지나가고 고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도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견디고, 누군가는 흘려보내면서. 연극 <바냐 삼촌> 은 2월 24일까지 성균관대학교 입구 근처에 위치한 소극장 안똔체홉극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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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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