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회사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이번 책은 “역시 마스마 미리”라는 감탄을 할만한 작품이었다. ‘걱정 마 잘될 거야’는 직장이란 사회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보여주는 재미있는 심리 발달 서적같이 읽을 수 있었고, 이를 마스다 미리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 더욱 반가웠기 때문이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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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기별 고민을 살펴보는 일

 

정신과를 수련 받으면서 배우는 것 중 하나가 심리발달이론이다. 프로이트, 피아제, 콜버그 등 유명한 발달이론을 공부하는데,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에릭슨의 발달이론이다. 에릭슨은 처음으로 성인기에도 발달은 이어진다고 주창을 했고, 8단계의 발달 단계를 나누면서 시기별로 중요한 미션이 있고, 이 미션을 잘 완수하는 것이 성숙의 지표가 된다고 했다.

 

환자의 문제를 평가할 때 에릭슨의 이론은 매우 유용하다. 지금 현재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는 똑같이 우울하고 불안하다고 호소해도, 그 사람의 발달단계를 이해하면 더욱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의 불안과 우울은 부모와의 독립 문제와 정체성의 이슈를 이해해야 핵심에 갈 수 있고, 60대의 우울은 지금까지의 살아온 날들을 통합하고 그 의미를 찾아가는 문제에서 찾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구분을 다른 곳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다음부터의 날들을 사회생활 1년차부터 시작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그 날까지의 시간에 적용하는 것이 꽤 유용했기 때문이다. 직장을 처음 들어가서 몇 년간은 마치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시기와 비슷하다. 5~10년차쯤 되면 사춘기부터 청년기와 같아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의 고민부터 직장에서 만난 사람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 적당한지의 고민이 무엇보다 앞선다.

 

20년차쯤 되면 직장인 중년기가 된다. 일에 대해서는 익숙하고, 이제는 다음 세대와 관계, 선배로서의 의무, 나아가서 직장에서 찾는 삶의 의미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시기별로 적당히 이런 식으로 구분을 해서 발달단계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면 자신의 현재적 고민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더욱이 많은 세대 갈등이 서로를 지금 고민을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나듯이, 직장에서 생길 수 있는 어려움도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의 각 시기별 고민을 서로 잘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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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를 힘들게 올라갔지만 결국 밋밋한 평지


마스다 미리의 ‘걱정 마 잘될 거야’는 바로 딱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스다 미리는 우리나라에서 지난 수년 동안 핫한 만화가이자 수필가가 아닐까? 덕분에 짧은 시간에 많은 책들이 발간되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  아무래도 싫은 사람』 ’,  주말엔 숲으로』  , 평균 60세 사와무라 씨네』   등 다양한 주제로 담담하게, 또 섬세하게 삶과 마음을 관찰해서 그림으로 풀어내왔다. 이 코너에서도 초기부터 여러 번 소개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결혼, 관계, 나이듦이 아닌 직장인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이 책의 주인공은 3명이고 공교롭게 모두 이름이 ‘마리코’다. 오카자키 마리코는 2년차, 야베 마리코는 12년차, 나가사와 마리코는 20년차다. 같은 이름이나 고민은 제각각 다르다. 2년차 마리코는 하루하루가 낯설다. 회의 시간에 한 마디도 하지 못한 것이 직장인으로 한 몫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동기들이 제 역할 하는 것 같아 부럽고, 그러면서도 지기 싫은 마음이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 만난 20년차 마리코가 너무 오래 화장을 고치면서 농땡이를 피우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한 회가 이렇게 끝나면 이번에는 20년차 마리코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사실 20년차 마리코는 화장실에 만난 2년차 마리코의 건강함이 소변보는 소리에서조차 느껴지고, 화장이 필요 없는 피부결도 부럽다. 그러면서 동시에 2년차가 자기가 화장을 너무 오래 고치고 있다고 생각할 것까지도 느낀다. 2년차가 부장에게 자기 의견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도 이해한다. 부모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 속에서 의견을 말할 때 긴장감이란게 얼마나 큰지 잘 알고 20년 전의 회의실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덕분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말한다 ‘힘내, 힘내. 어른들 세계에서 기죽지 말고’.

 

이번엔 12년차 마리코다. 12년차 마리코가 2년차 마리코에게 “저기, 조금 전 자료에서 뭔가 좀 추가했으면 좋겠는데 괜찮겠어?”라고 물으면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지시한다. 20년차가 보기에 후배에게 좀 세게 하는 것 같지만, 30대라면 조금 어깨에 힘이 들어가도 괜찮다고 본다. 12년차 마리코는 아직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 안다는 듯이 대답하는 후배를 보면 짜증이 난다. 그녀는 약삭빠른 “네”보다는 필사적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거래처랑 농담도 하고, 살살 낮은 자세를 보이기도 하는 40대 선배를 보면서 일을 할 때도 아줌마가 되어간다고 답답해 하며 자기 미래가 보이는 것도 느낀다. 후배도 못마땅하고 선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책은 이렇게 2년차, 12년차, 20년차 세 명의 마리코가 경험하는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서로의 시점에서 교차해서 등장하고, 점차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같은 일에 대해서 연차별로 보고 해석하는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같은 이름으로 설정한 것도 결국 그 들은 한 사람의 다른 성장과정이라는 걸 이야기하기 위한 포석이었으리라.

 

세 명은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언덕 위를 힘들게 올라갔지만 결국 밋밋한 평지라는 걸 발견한 선배 두 명, 그리고 그 두 명을 보면서 언덕 위가 보이는 2년차는 별 것 없는 것을 알게는 되었지만, 그 연륜이 부럽다는 걸 느낀다. 세 명은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사적인 이야기도 조금씩 하고, 밥도 같이 먹으며 가끔은 이렇게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정도의 상사 이야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을 정도의 사내 소문 이야기, 너무 파고들지 않을 정도의 연애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다가도 너무 오래 가까이 있었던 것 같아지니 전철역을 같이 가다가도 각자 다른 볼 일 보고 가자며 헤어진다. 이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서로 인정하면서.

 

2년차는 이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어린아이와 같다. 모든 게 불안하다. 회의에서 자기 발언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못하면 한몫 못했다고 자책한다. 직장인의 기세를 담기 위해 흰 셔츠에 힐을 신어보기도 하지만 왠지 어색하다. 12년차는 사춘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는 발달 단계다. 여기서 내가 어디인지 포지션이 애매하고, 후배들은 마음에 안 들고 선배를 봐도 썩 달갑지 않다. 일은 익숙하지만, 아주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후배들이 회식 후 2차에 불러줘서 고맙지만, 언제까지 젊은 축으로 끼어 줄지 불안하다. 부장이 새로운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면 반가우면서 두렵다. 이런 애매함이 가장 힘든 시기다. 20년차에는 새로운 것도 없고, 앞날도 대강 눈에 들어온다. 동기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같이 들어온 남자 동기는 부장이 되었다. 중년의 삶과 유사하다. 루틴 안에서 에너지는 그리 들지 않지만, 의미를 찾지 못하면 우울해지거나 정체된 느낌을 갖기 쉽다. 이때 20년차 마리코가 찾은 것은 후배들과의 만남과 관계였다.

 

3명의 마리코로 3명의 시점으로 한 공간을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연차 별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 낼 기회를 주면서 동시에 같은 이름 마리코 3명으로 결국 한 사람의 궤적이라는 암시를 강하게 준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 수필집 참 많이 나와서 피로감이 있었는데, 이번 책은 “역시 마스마 미리”라는 감탄을 할만한 작품이었다.  걱정 마 잘될 거야』  는 직장이란 사회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보여주는 재미있는 심리 발달 서적같이 읽을 수 있었고, 이를 마스다 미리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 더욱 반가웠기 때문이다.


 

 

걱정 마, 잘될 거야마스다 미리 글그림/오연정 역 | 이봄
세 명의 마리코들의 일상과 고민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는데, 그것은 이들의 이야기가 내 옆에 가까이 앉아 있지만 잘 몰랐던 내 동료의 마음속 이야기이며,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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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