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빈센트의 그림을 볼 때마다 ‘당신이 그린 그림은 절대 안 된다’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눈부신 젊은이를 본다. ‘너는 절대 안 된다’는 세상의 벽을 향해 매일 지칠 줄도 모르고 온 힘을 다해 간절하게 노크를 하던 빈센트의 의지가 눈부신 해바라기로, 밤하늘에 빛나는 별로, 타오르는 듯한 꽃과 의자, 사람의 얼굴과 감자 먹는 사람들의 그늘진 얼굴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나는 빈센트의 편지를 여러 번 다시 읽으며 깨닫는다. 절대 안 된다는 말에 지지 않을 용기, 바로 그 간절함이 내가 여전히 빈센트를 사랑하는 이유임을.
정여울 작가의 책 『빈센트 나의 빈센트』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정여울 작가 편>
오늘 모신 분은 문학, 여행, 마음에 대해 쓰시는 분입니다. 이 분의 글을 읽으면 문학에 투영된 우리 마음이 보이고, 그 자취를 따라 걷는 여행에 동행하게 되죠. 책 『마음의 서재』 , 『헤세로 가는 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등 다수의 책을 쓰셨고요. 이번에는 고흐를 만나기 위해 떠났던 10년의 여행 이야기를 담아 『빈센트 나의 빈센트』 를 쓰셨습니다. 정여울 작가님입니다.
김하나 : 이번 책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사실 빈센트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책들도 여럿 있었잖아요. 그런데 『빈센트 나의 빈센트』 는 정여울 작가님이 빈센트와 공명했던 부분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진 책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고흐가 내 안의 뭔가를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진 순간을 기억하세요?
정여울 : 고흐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던 순간은 여러 번 있었는데요. 그가 살았던 모든 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일본이었어요. 3박 4일로 짧게 간 여행이었는데, 그때 저는 대학원에 있었고 열정 페이를 하던 시절이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고민이 있었고, 공부를 계속 하고 싶기도 하고 글도 너무 쓰고 싶은데, 지금처럼 작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작가가 되고 싶기는 하지만 ‘아마 안 될 거야, 나는’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자존감이 굉장히 낮았던 시절이죠. 그런데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일본의 보험회사 건물에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해바라기>라는 작품은 여러 점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점이 손보재팬보험 건물에 있다는 거예요. 너무 신기해서 꼭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보험회사 건물을 찾아가는 건 원래 있던 일정이 아니었는데’ 하고 투덜거리면서도 계속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어요.
김하나 : 아침 일찍이었겠네요.
정여울 : 네, 그리고 해가 엄청 따가웠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문이 안 열리는 거예요. 경비실에 물어봤더니 오늘 휴관이라고(웃음)... 그런데 사실은 하염없이 기다린 그 시간이 좋았어요. 제가 고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인 거죠. ‘내가 고흐를 이렇게 좋아했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지 몰랐던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많이 좋아해주니까 ‘내가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도 되겠지’라는 생각도 있었던 거예요. 아직 저만의 고흐는 없었던 거죠. 그런데 그 기다림 속에서 뭔가를 깨달은 거죠. ‘이렇게 타오르는 햇살 속에서 힘들어서 투덜거리면서도 그래도 나는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싶어 하는구나’, 그 순간 간절한 목마름 같은 게 느껴졌어요. 미술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고흐의 삶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 같아요. 고흐와 저의 공통점을 찾았던 것 같아요. 뭔가를 너무나 하고 싶은데 그 길이 잘 안 열리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을 향해서 소리 지르고 문을 두드리는 거죠.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내가 그림을 그리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절규를 하지만 세상이 나에게 문을 안 열어주는 느낌이 났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제가 자주 하는 표현이지만, 벌써 뭔가 소름이... 소름이 살짝 돋았어요.
정여울 : 그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 같은 그 느낌 때문에 더 울컥하는 게 밀려오면서 ‘일본에 와서 우연히 <해바라기>를 보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가장 보고 싶은 빈센트의 그림을 먼저 봐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김하나 : 그러면 그때는 <해바라기>를 안 보셨어요?
정여울 : 못 봤어요. 다음날 한국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김하나 : 그 다음에 간절히 원해서 보러 가셨던 그림은 뭔가요?
정여울 : <별이 빛나는 밤에>였어요. <별이 빛나는 밤에>를 가장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검색을 해봤는데 엉뚱하게 뉴욕에 있더라고요. 저는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같은 데에 있어야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고흐에 관련된 모든 곳을 찾아가 봐야지’라는 생각만 했는데, 너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더라고요(웃음).
김하나 : 세계 일주를 하게 되셨네요(웃음).
정여울 :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발품이 너무 많이 들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웃음). 그런데 고흐가 저를 그렇게 움직이게 한 거죠. 평생 생각도 안 해 본 장소에 가 보게 만든 거죠.
김하나 : 너무 신기한 것 같아요. 그림을 보고 나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그림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지 않아서 못 봤는데 그 안타까운 간절함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던 거잖아요. 그래서 세계여행을 시작하게 되신 거고요(웃음).
정여울 : 네(웃음), 고흐 때문에 떠나게 된 이상하고 계통 없는 여행이었죠. 그 전에도 유럽 여행을 좋아하기는 했어요. 굉장히 다양한 테마가 있었고요. 헤르만 헤세가 살았던 곳을 찾아서 떠나는 이야기를 『헤세로 가는 길』이라는 책에 쓰기도 했고,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을 쓸 때는 도시에 집중해서 썼어요. 제가 좋아하는 도시들, 그곳에서 느낀 감정들과 맛 본 음식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추억, 그런 것들 중심으로 썼는데요. 고흐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는 온전히 그 한 사람에 집중했어요. 무언가를 꿈꾸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환경이 안 받쳐주는 걸 수도 있고,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데 세상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가 세상이 아직 필요로 하지 않는 글쓰기일 수도 있고요. 그림이나 음악도 마찬가지겠죠. 뭔가 세상과의 접점을 못 찾은 분들에게 고흐에 대한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어요.
김하나 : 아, 세상과의 접점을 아직 못 찾은 분들에게...
정여울 : 네. 저는 Bliss라는 말, ‘Follow your bliss’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Bliss는 내면의 희열이거든요. 남들이 좋다고 해서 아니면 대세나 유행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내적인 희열이에요. 김하나 작가님도 글 쓰실 때 그런 거 느끼지 않으세요? 글을 쓰는데 너무 힘들 때가 있잖아요. 흰 화면을 노려보지만 아무 문장도 안 떠오를 때가 있고, 밤새 썼던 걸 다 지울 때도 있고, 그리고 가장 힘들 때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썼는데 ‘이게 과연 발표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예요. 그런데 그런 순간조차도 희열이 너무 강한 거예요. 그래서 글을 안 쓰는 날은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글을 쓰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글을 안 쓰면 몇 천 배 더 고통스러운 거죠. 그게 Bliss거든요. 훨씬 복잡한 행복이에요. 저는 Bliss를 찾는 게 인생에서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Bliss는 글쓰기이고, 그걸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안 받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김하나 : 이번 책은 빈센트를 찾아서 떠났던 여행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여행 에세이와는 꽤나 다르잖아요.
정여울 : 네, 여행 에세이는 아니에요.
김하나 : 그렇죠. 빈센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그를 만났던 장소를 이야기하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는 그곳으로 가야 되고, 그것 자체가 여행이니까요. 그러면, 처음에 이 책을 쓰시려고 했을 때는 어떤 형식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셨어요?
정여울 : 형식은 조금 더 자유롭게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고 빈센트의 전기도 아니고, 저는 만남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 편집자님이 ‘두 감성의 만남’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빈센트 반 고흐의 감성과 정여울의 감성인 거죠. 둘 사이에 공통점도 있고 다른점도 있는데, 공통점에 대해서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빈센트 반 고흐는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남달랐는데 사회성이 부족했어요.
김하나 : 너무 부족했죠. 만약에 빈센트가 SNS를 했으면 저는 블락했을 거예요(웃음).
정여울 : (웃음) 그런데 빈센트는 사람을 너무 그리워했어요. 완곡어법을 잘 못 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좋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싫으면 얼굴에 다 드러나는. 그렇게 너무 순진한 성격이었어요. 마치 아무런 방패도 갑옷도 없이 전쟁에 나온 전사처럼,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열심히 싸웠어요. 자기가 다치는 줄도 모르고. 고갱과의 관계에서도, 빈센트는 고갱을 너무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고갱은 고흐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던 거죠. 고흐는 평생이 짝사랑이에요. 부모님도 짝사랑이었고... 보통은 부모님이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 경우는 자식이 부모를 더 사랑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책에서 인용해 두신 고흐의 편지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어요. “제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조차 늘 유리를 통해 바라보듯 희미하게만 느껴졌을 뿐이에요.” 이 말 너무 마음이...
정여울 : 너무 슬프죠. 그런 글을 보면 어제 쓴 글 같아요. ‘이게 어떻게 백몇십 년 전에 쓴 글일까’ 싶고. 글도 너무 잘 써요.
김하나 : 맞아요, 글 너무 잘 써요.
정여울 : 빈센트 반 고흐는 글쓰기, 여행, 문학의 관점에서도 제 마음을 두드렸고 심리학의 관점에서도 저한테 고흐는 굉장히 매혹적인 인물이에요.
김하나 : 만약에 테오와 주고받은 천 통이 넘는 편지가 없었다면, 물론 빈센트의 그림 자체도 굉장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곁들여지는 덕에 우리가 훨씬 더 크게 감동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정여울 : 빈센트의 편지가 없었더라면, 그의 그림 자체가 이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편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 그림은 이런 맥락에서, 이런 트라우마와 상처를 극복하면서 그린 거구나’라는 모든 사연이 설명이 되잖아요. 본인이 작업노트를 추구하지 않았어도, 편지가 굉장히 치밀한 작업노트이기도 한 거죠.
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