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내가 사라질수록 내가 간절해져요”
엄마가 저희 남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나는 너희에게 사랑만 줬어. 사랑만 있으면 사람은 제대로 살 수 있다’고.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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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인공이고, 우리 삶이 다 드라마예요.”

 

KBS 〈인간극장〉 방송작가로 일하던 시절, 고수리 작가는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의 이야기에 머뭇거리는 출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말은 훗날 작가로서의 자신을 지탱해주는 말이자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다. 고수리 작가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삶에도 드라마가 있다는 사실을 매순간 떠올리며,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미비하나마 세상에 작은 온기를 더하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나란히 걷는 노부부, 수화로 대화하는 두 사람, 계단에 구부정히 앉은 아저씨,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 유모차에 늙은 개를 태우고 가는 할머니… 길거리를 걷는 낯 모르는 사람들 모두에게서 숨겨진 행복과 삶의 애잔함을 발견하는 데 탁월한 고수리 작가는 ‘정작 당신은 모르는 뒷모습에 담긴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에 담긴 만지고 쓰다듬고 가만히 붙잡아 위로해주는, 따뜻한 손길 같은 글들로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남는 건 사람, 그리고 사랑이었어요

 

첫 번째 에세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가 출간된 후 3년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이번 책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에는 어떤 글이 담겨 있나요?

 

지난 3년간 삶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어요. 쌍둥이 형제의 엄마가 되었거든요.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면서 정말 간절하게 글이 쓰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잠들면 무조건 글을 썼고 그렇게 모인 글들이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되면 아이들 이야기만 쓰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내가 사라질수록 내가 간절했거든요. 나, 나의 서사, 나의 글, 나의 일. 아기를 재우고 혼자 글 쓰던 작가들을 생각했어요. 박완서, 손원평, 윤이형, 아룬다티 로이… 그분들의 기분이 이랬겠구나 싶었어요.

 

제목에 담긴 의미도 궁금합니다. 아이를 낳고 사랑에 대한 생각과 범위가 달라졌을 것 같아요. 

 

첫 책이 스물여덟 살이라면 두 번째 책은 서른네 살 같아요. 명랑하지만 어두웠던, 나 자신을 쉬이 사랑하기 어려웠던 스물여덟. 이제는 그 시기를 지나와 가만히 그때를 돌아보는 서른넷. 책에 그런 문장이 있어요. “외롭다 힘들다 그러는 사이에도 우리는 여기까지 흘러왔다.” 그 시간들을 흘러온 지금, 나에게 남은 게 뭘까 생각해봤어요. 사람, 그리고 사랑이었어요. 엄마가 된 서른넷 저에게는 ‘사랑’이 다르게 느껴져요. 세상 곳곳에서 사랑을 발견하거든요. 나름대로 사랑에 대해 재정의 해보았던 것 같아요. 그걸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야 만다고요.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책을 읽어 보니, 사랑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정말로요. (웃음) 원래 따뜻한 성격이신지 궁금해졌어요.

 

20대 때까지의 저는 내면이 우울하고 뾰족한 사람이었어요.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감추고 살고 있었거든요. 잘 웃고 친절하지만 속내는 잘 비치지 않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가장 큰 계기는 글쓰기였던 것 같아요. 솔직한 글쓰기를 하면서 마음이 치유되기도 했고,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마주보게 되었죠. 책에도 썼듯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두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는 어쩔 도리 없이 따뜻해져 버렸죠. 사랑에 푹 빠졌으니까요. 물론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감수성이 짙어졌어요. 모두 아이들 덕분이에요.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를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타인의 삶. 우리 곁에 살아가지만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궁금해하고 이해해보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동사무소에서 만난 장애인 직원, 폐지 모으는 할머니, 혼자 컵라면 먹는 아이, 카페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 지하철 노동자들, 시 쓰는 농부.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쓰는 동안 영화 <타인의 삶>에서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를 들으며 울던 HGW XX/7이 된 것 같았어요. 어째서 나는 그런 존재들만 바라보게 되는지, 그때마다 왜 그렇게 먹먹하고 뭉클했는지 더듬어보았어요. 글 쓰며 생각했어요. 제가 그런 눈을 가져서 다행이라고. 앞으로도 선한 사람들을 위해 글 쓰고 싶어요. 작은 것들을 발견하고 쓸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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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는 말했어요. 사랑만 있으면 사람은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작가님에게 그런 선한 시선을 갖도록 도와주신 분이 계실까요. 혹은 이 책을 쓰면서 특별히 고마웠던 분이 있을 것 같아요.

 

엄마. 지금껏 쓰면서도 그랬고 앞으로 쓰는 글도 모두 엄마를 향할 거예요. 엄마가 사랑을 가르쳐줬거든요. 아이들을 키우며 놀라곤 해요. 누군가를 이토록 넘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 저는 알코올중독인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겪었고, 부모님이 이혼한 후에는 가난한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렇지만 무사히 잘 자랐어요. 엄마가 저희 남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나는 너희에게 사랑만 줬어. 사랑만 있으면 사람은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제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두려웠어요. 이렇게 자란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 없었죠.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사랑을 잃지 않고 언제나 품고 있었어요. 엄마가 심어준 것이지요.

 

작가님은 글쓰기가 막막한 분들께 ‘함께 쓰기’를 권하시잖아요.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은 어떨지 궁금해요.

 

1년쯤 이어온 금요 글방이 있어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읽고 나누는 모임인데요. 제 방공호 같은 곳이에요. 농밀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채워가요. 실제로 거기서 만난 이야기들이 제 글에 녹아 들기도 했고요. 학교와 도서관에서 책 만들기 평생교육도 지도하고 있어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만나요. 따돌림 당한 아픔을 담담히 적은 초등학생이나 마흔이 되어도 글쓰기가 설렌다는 엄마, 혼자 백여 편의 시를 써온 일흔의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 뭉클했어요. 저는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기보단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자기만의 문체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고 노력해요.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출신 작가님으로도 유명해요. 방송작가로서의 삶과 지금의 일상을 비교해보면 무엇이 좋고 무엇이 어렵나요?

 

혼자 글 쓰는 에세이 작가의 삶이 고양이 같다면, 방송작가의 삶은 강아지 같달까요. 활동적이고 사교적이고 협업에 능숙하고 체력이 좋아야 합니다. 방송은 아니지만 지금도 구성작가 일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어린이 콘텐츠, 홍보 영상, 다큐멘터리 등 분야에 틀을 두지 않고 일하는 편이에요. 구성작가 일은 필력보다 기획력과 구성력이 우선이에요. 내레이션은 쉽고 짧고 명확하게 써야 하고요. 할 수만 있다면 더 다양한 글쓰기를 경험해보고 싶어요. 뭐라도 쓸 수 있는 지금이 저는 좋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커다란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들, 무엇보다도 제 책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는 책이길 바랍니다.

 

 

 

 

*고수리

 

세상에 온기와 위로를 전하는 작가 고수리. 광고 기획 피디를 거쳐 KBS [인간극장], MBC [TV 특종 놀라운 세상]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방송으로 만들면서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삶에도 드라마가 있다는 걸 배웠다. 카카오 브런치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일상을 보듬는 그녀만의 포근한 시선들이 담긴 첫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는 독자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세종도서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됐다.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 글쓰기 안내자로 활동하며 남편과 쌍둥이 두 아이와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고수리 저 | 수오서재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모든 존재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사는 오롯한 주인공이 된다. 슬프지만 따뜻한 그녀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찔끔 눈물을 흘리다 빙그레 미소 짓게 만드는 마법 같은 위안의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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