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도덕의 지형도를 그린 책 『예의 바른 나쁜 인간』, 후쿠시마에서 오염 제거 작업을 했던 하청노동자의 기록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 ,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했던 여성의 이야기 『체공녀 강주룡』 을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 『예의 바른 나쁜 인간』
이든 콜린즈워스 저/한진영 역 | 한빛비즈
제목부터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은 책인데요. 사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더 직접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건 원제인 것 같아요. 『Behaving Badly : The New Morality in Politics, Sex, and Business』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새로운 ‘도덕’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책이에요. 도덕과 양심이라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 변하지 않아야 하는,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무엇’으로 생각되고는 하잖아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받은 느낌은, 도덕이 가변적이라는 거였어요. 정해진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시대에 따라 다르고, 사회/문화에 따라 다르고, 한 개인에게 있어서도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회/문화 안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뀐다는 거예요. 고정불변의 무엇이 아니라는 거죠.
이든 콜린즈워스 저자는 아버 하우스 출판사와 허스트 코퍼레이션을 운영했던 여성이에요. 10년 동안 잡지를 만들면서 CEO로 일하기도 했고 ‘이스트웨스트 재단’이라는 국제적 싱크 탱크에서 부사장, COO, 참모총장을 지냈습니다.
저자가 책을 쓰기 위해서 중국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중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덕과 서양인이 생각하는 도덕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그러면서 도덕의 지형도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대요. 그래서 살인범,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신경과학자, 뇌과학자,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 여성 경호원, 케냐의 전 총리, 군인들, 사회변화 예측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섹스에 있어서 도덕이란 무엇인지, 민주주의에 있어서 도덕은 어떤 모습인지, 뇌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도덕은 어디에서 발현되는 것인지 등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쟁이라는 것은 살상 행위잖아요. 그런데 아군일 경우에는 그들이 한 일이 숭고하고 이타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지죠. 그렇다면 ‘과연 도덕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때에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가,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고정화된 상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떠오르는데요.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단호박의 선택 -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
이케다 미노루 저/정세경 역 | 두번째테제
저자 이케다 미노루는 1952년생으로 도쿄 출신이고요. 1970년에 우체국에 취직해서 43년 동안 계속 근무했다고 합니다. 2011년에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저자는 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 2013년에 우체국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2014년부터 후쿠시마에서 제염 작업을 하게 됩니다. 제염 작업이라는 게 오염을 제거하는 일인데요. 제염 작업원으로 재취업을 해서 1년 정도 근무를 했고, 제1원전에 들어가서 폐로 작업에도 동참했습니다. 그 이후에 ‘이 작업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지를 엮어 책을 내게 됐고요. 지금은 후쿠시마 내 하청노동의 실태를 알리는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해요.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됐을 때 저자가 도쿄에서 우편배달부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비 오는 날 우편을 배달하는데 한 여자 분이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봤다는 거예요. 당시에 지진이 일어나고 방사능이 누출됐다는 뉴스는 다 나왔을 때였는데, 알고 보니까 그 날 후쿠시마에서 방사능 구름이 바람을 타고 도쿄까지 왔었다고 해요.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직업인들이 방사능에 노출이 됐었던 거죠. 도쿄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 정도인데, 후쿠시마에서 일하는 집배원은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던 거예요. 나중에 저자가 후쿠시마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과정이 나와 있는데, 당시 후쿠시마에는 직접적으로 쓰나미가 왔었기 때문에 집배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뒤에서 밀려오는 쓰나미를 피해서 사력을 다해 도망쳤을 정도라고 해요.
이 일지를 통해서 원전에 대한 문제점, 하청에 대한 문제점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아요. 정말 전쟁 같은 상황은 맞는데, 전쟁이 눈에 안 보이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청의 하청을 통해서 이루어진 노동 자체는 정말 단순해요. 처음에 했던 제염 작업이 뭐냐 하면, 땅의 오염 물질을 없애기 위해서 자라고 있는 잔디를 갈퀴로 긁어내는 거예요. 토양도 오염되어 있으니까 5cm 정도 파서 다 버리고 새 모래를 깔고요. 그냥 땅파기인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일도 없고, 방사능이 있다고는 하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고, 뭔가 찝찝하기는 한데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은 거죠.
어떠한 스펙타클이 전혀 없어요. 그냥 천천히 계속 일을 하는데, 눈에 보이는 방사능 같은 것들이 덮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조용하고 진 빠지는 작업인 거죠. 그렇게 답답함이 느껴지지는 않았고요. 너무 담담하다 보니까 저도 그곳에 가서 점점 진이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톨콩의 선택 -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저 | 한겨레출판
눈에 확 띄는,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표지인데요. 이 책 자체도 그렇습니다. 강렬하고요. 표지처럼 심플한 느낌이 있어요. 강주룡의 생애 자체가 아주 파란만장한데 플롯도 아주 심플하고요. 책은 강렬한 한 장면을 묘사하는 걸로 시작합니다. 실제 이야기가 시작되면 강주룡이 평양에서 간도로 옮겨가서 살고 있을 때 혼례를 올리는 게 첫 장면이에요. 강주룡은 조금 늦은 나이인 스무 살이었고, 남편이 되는 사람은 열다섯 이었어요. 둘이 같이 알콩달콩 잘 지내요.
그런데 남편이 독립군을 해야겠다고 떠나는 거죠. 강주룡이 남편을 혼자 보낼 수가 없어서, 둘이 같이 야반도주처럼 독립군으로 떠납니다. 거기에 가서 훈련도 받고 하는데, 여자는 거의 없는 거예요. 그곳의 남자들이 여성을 그다지 동지로 생각해 주지 않는 것 같고요. 그런데 강주룡을 눈여겨보는 백광운이라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백광운이 강주룡을 신뢰하게 되어서 따로 불러내서 이야기도 하고 지령을 주기도 하니까 그 안에서 이런저런 수군거림이 생겨요.
그런데 이 남편은 아직 여린 소년이고 약자인 거죠. 독립군 안에서 수군대는 것에 대해서 따지고 들 주변머리가 아직 없는 아이인 거예요. 그런 이야기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 갈등이 일어나고, 강주룡은 남편이 자신을 믿지 못하자 그 길로 뿌리치고 간도로 돌아옵니다. 여기에서 굉장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돼요. 그리고 간도를 떠나 평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게 2부의 시작이에요.
평양에서는 고무 공장에서 일을 해요. 거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자가 태반이고, 그보다 더 어린 여자들은 실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여자 직공들이 아주 열악한 처우에서 일을 합니다. 고무 공장에서 일을 하기 전에, 강주룡이 약간 팔려가게 되는 상황이 됐었는데요. 어떤 문서를 통해서 자신이 소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가격에 팔려가다시피 신분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장면이 제가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요. 혼자 있을 때 그 문서를 보고서는, 그걸 집에 전달하면 자신이 팔려가는 것과 진배없는 상황인 건데, 그것을 접어서 가슴에 넣으면서 한 장을 더 작성합니다. ‘오마이 보시오. 나 죽었다 여기고 잊어 주시오’라고 쓰고는 그 편지를 남기고 떠나는 겁니다.
강주룡이라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었고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고공농성을 벌인 여성입니다. 이 사람은 독립운동을 했던 전적도 있고, 옥에 갇히기도 했었고, 제 손으로 글씨를 써놓고 가족을 떠나온 사람이기도 하니까, 여기에서도 주체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이 운명을 개척하겠다’라고 마음먹은 인물이었던 거죠. 아주 뜨거운 사람이었고, 강렬한 이야기였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62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