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더 캐슬>의 젠틀한 악마, 배우 최재웅
경험상 나쁜 놈들은 모두 젠틀하고 착했어요, 끝까지.
글ㆍ사진 윤하정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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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새 단장을 마치고 문을 연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에서 참신한 신작들이 잇따라 공연되고 있다. 바통을 이어받은 작품은 창작뮤지컬  <더 캐슬>  .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1893년 시카고의 ‘캐슬’ 호텔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새롭게 구성한 이야기다. 낯선 도시에서 전 재산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 벤자민과 캐리,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호텔 소유주 홈즈, 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선과 악의 양면성이 생각의 꼬리를 잇게 한다. 특히 살인을 일삼으면서도 시종일관 느긋하게 무대를 누비는 홈즈의 모습은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관대한 인간이 지닌 선과 악의 이중 잣대를 조롱하는 듯한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홈즈를 구현하고 있는 배우 최재웅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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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하워드 홈즈가 실존 인물이더군요. 의대에 입학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고, 온갖 사기로 돈을 모아서 살인을 비롯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호텔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그 인물과 사건을 모티브로 90% 이상 만들어낸 이야기예요. 연출과 기본적인 틀을 얘기할 때도 홈즈를 사람이 아니라 악마로 설정했죠. 극에 등장하는 벤자민과 캐리가 사람이라면 토니와 홈즈는 천사와 악마의 개념이에요. 이야기는 단순하죠.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느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럼 홈즈의 캐릭터는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접근하기는 쉬웠어요. 이번에는 연기를 그냥 하고 있거든요. 홈즈는 악마니까. 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인물이라면 특별한 연기가 필요하겠지만, 이미 악마니까 굳이 연기를 할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홈즈를 실존 인물로 접근했다면 연기 패턴이 달라졌겠죠. 그리고 홈즈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둥은 벤자민과 캐리의 이야기니까 이걸 더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홈즈나 토니는 캐릭터가 세서 뭔가 더 하면 밸런스가 깨질 것 같았거든요.”

 

홈즈가 너무 신사적이라서 나중에 더 섬뜩하던데요. 사실상 벤자민과 캐리에게 직접적으로 악한 일을 행하지도 않고요. 유도만 한다고 할까요?


“연기하면서 포인트를 둔 지점이에요. 경험상 나쁜 놈들은 모두 젠틀하고 착했어요, 끝까지(웃음). 그들이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않고, 철저히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길만 열어주죠. 직접적으로 나쁜 짓을 한다면 강도잖아요. 그게 포인트예요. 이번 작품에서도 모두 스스로 선택해요. 우리도 살면서 아주 단순한 것부터 끊임없이 선택하잖아요.”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선택은 작품이겠죠? 그런데 창작 초연의 경우 들인 공에 비해 관객들의 평이 좋지 않을 때도 많잖아요.

 

“관객들의 평은 잘 모르겠어요. 오래 공연하다 보면 전혀 신경을 안 쓰게 되거든요. 그리고 창작자들이 초반에 원하는 목표치가 있어요. 연습하면서 ‘이 정도까지 가면 됐어’ 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것만 달성되면 나머지 싫고 좋음은 관객들이 선택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선택할 때는 이왕이면 새로운 걸 하죠. 일단 제가 재밌어야 하니까. 요즘은 뻔하지 않은 플롯이라고 해야 하나. 보통 뮤지컬이 세게 시작해서 절정으로 치닫고 그랜드한 마무리를 하는데, <더 캐슬>  은 그래프로 치면 변화가 거의 없잖아요. 이런 게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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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 준비하면서 많이 생각하셨을 텐데, 선과 악이 무엇일까요?

“글쎄요. 선과 악에 대한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작품인데, 보편적인 선이 선이 아닐 수도 있고, 어떤 선택을 했는데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면 악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이 작품에서도 홈즈가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들이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는 홈즈가 악을 행하려고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악이 아닌 거잖아요. 관객들에게 거기까지 생각이 전달될지는 모르겠어요.”

 

홈즈는 자신의 캐슬을 지어서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행했는데, 의미는 다르겠지만 최재웅 씨만의 성이 있다면요?


“가족이죠. 요즘 제가 가장 많이 선택해야 하는 것도 ‘애들하고 뭐하고 노나?’이고(웃음). 공연을 하면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올 때쯤 저는 집을 나가고, 잘 때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에는 무조건 같이 있으려고 해요. 그리고 지금 4살, 7살, 한창 예쁠 때거든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떠올려 보면 제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을 때가 요즘일 것 같아요. 부모님 살아 계시고, 아이들 한창 예쁠 때고, 일도 많이 하고 있고. 지금 피부로는 못 느끼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좋을 때일 것 같아서 더 재밌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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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