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로 출판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나영 씨는 광고업, 언론 일을 잠시 하다 현재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외서 MD로 일하고 있다. 외서 MD가 된 후부터는 넷플릭스의 화제작, 트럼프의 행보,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아이돌의 근황, 영화 개봉작 등을 주요한 이슈로 살피고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의 영향력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유튜브에 소개된 책을 찾는 고객들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나영 씨는 시조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서울문화재단지원금에 선정돼 첫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시조를 택하게 된 건, 시조의 결과 운율을 지켜 나가고 싶기 때문. 이나영 씨는 “시조의 결을 지킬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최근에 좋게 읽은 책을 소개해주세요.
막 끝낸 책은 권여선 작가의 『레몬』 입니다. 요즘은 점심 시간이면 도시락을 들고 여의도 공원의 작은 연못을 찾아요. 『레몬』 은 이 연못에서 틈틈이 읽은 책이에요. 연꽃이 막 피기 시작한 연못에서 새들과 바람이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먹먹해진 마음으로 사무실로 걸어 들어오곤 했습니다.
몇 년 전, 친구가 세상을 떠났어요. 친구의 죽음을 겪은 건 처음이었는데요. 그 뒤로 친구의 기일이 다가오면 장례식에서 만났던 다른 친구들은 '그 친구의 죽음 이후로 어떤 삶을 살고 있나' 한 번씩 살펴보게 되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어요. 누군가의 죽음 뒤에 남은 우리는 평하게 살고 있는지, 각자의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를 생각나게 했어요. 작가의 말까지 꼭 같이 읽어보길 바라는 소설입니다.
저는 시조를 쓰다 막힐 때면 시집을 들춰보곤 해요. 새로 나온 시집이 있으면 시인을 가리지 않고 우선은 사고 보는 편입니다. 최근에는 박미란 시인의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 를 가방 속에 넣어 두고 막힐 때마다 펼쳐보곤 했어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여자 주인공처럼, 저도 과거를 동경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 날도 유난히 오래된 노래들이 듣고 싶던 밤이었는데, 막 펼쳤던 페이지에서 ‘우리들의 올드를 위하여’가 보였습니다. '당신이라는 말은 아무리 불러도 왜 올드 하지 않은가 / 철없이 좋아'라는 구절이 괜히 좋아 사진으로도 남겨 두었던 시였어요. 이외에도 시집들은 가방마다 한 권씩 두고 읽지 않더라도 괜히 챙겨 다니는 습관이 있어요.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 은 술이 생각나는 밤마다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술 생각이 절로 나요. 김혼비 작가님의 귀엽고 유쾌한 술에 관한 이야기가 안주가 될까 두려워 야금야금 읽고 있습니다. 또 운동에 한창 취미를 붙인 저와 딱 들어 맞는 『보통 여자 보통 운동』 도 재밌게 읽었어요. 동네 서점에서 발견했던 책인데, 복싱과 수영에 푹 빠진 저는 운동으로 변화한 그녀들의 삶에 특히 공감하면서 운동으로 강해지는 여자로의 꿈을 계속 꾸게 되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선택하게 되었나요?
『레몬』 은 오래 전 읽었던 권여선 작가님의 『사랑을 믿다』 가 어렴풋이 생각이 나기도 했고, 왜 레몬일까가 궁금해서 무작정 읽기 시작했어요. 『레몬』 을 읽고 작가님의 문체를 다시 곱씹어보게 되었고, 드러내지 않고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게 만들었던 『사랑을 믿다』 도 다시 읽으려 꺼내 두었습니다.
시집은 앞서 말했듯이, 새로 나온 시집 중 제목이나 목차 속의 시 제목들이 마음에 들면 우선 사놓는 타입이라 그때 그때 느낌 따라 챙겨 보는 게 달라요. 그 와중에 20년 만에 박미란 시인이 쓰신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 는 더 기대하고 펼쳐 보았습니다. 역시나, 그간 참았던 말들을 다 쏟아내셨는지 밑줄 칠 구절이 넘쳐나더라고요.
『아무튼, 술』 은 맥주가 땡기던 날 충동 구매했어요. 홍대에 살던 때에는 거의 매일 술을 먹었어요. 지금은 홍대를 벗어났고, 또 수영과 복싱을 시작한 뒤로는 술을 마실 여유가 나지 않아 술을 많이 줄였거든요. 혼자 맥주를 따고 싶었는데 간신히 마음을 부여잡고 술에 대한 글이라도 읽어보자고 충동적으로 전자책으로 구매했던 책이에요.
평소 책을 선택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요?
분야마다 다른 것 같아요. 번역서를 볼 때는 출판사와 번역가를 보고 선택하는 편이에요.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책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편집자로 일할 때 느꼈거든요. 시집은 제목과 목차의 시 제목들을 훑어보고 결정하는 편입니다. 소설은 작가의 전작들을 우선적으로 보고, 그 뒤에 어떤 출판사에서 내는지를 확인해요.
요즘에는 표지를 보고 어떤 출판사인지 혼자 맞히기도 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새로 생긴 출판사들도 많더라고요! 그렇게 새로 알게 된 출판사들 중 비교적 신생이거나 고집 있게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을 최근에는 찾아보게 됐습니다. 알아서 독자들이 많은 책보다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책을 골라보는 게 MD의 일이기도 하니까요.
부끄럽게도 원서를 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 외서 MD로서 어떤 책이 잘 나가겠다고 선택하는 기준은 있어요. 해외 출판사에서 매일 책 소개 메일을 보내오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괜찮겠다고 고르는 책들은 제목과 표지를 보는 편입니다. 영어 제목은 간결하면서 내용이 농축된 듯 진한 제목들이 꽤 잘 나가더라고요. 제목을 보고 과장님과 아, 이 책 제목 좋다! 했던 책들은 우선 해외에선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어떤 책을 볼 때, 특별히 반갑나요?
얼마 전 첫 책 발간 지원금을 받게 되면서, 신진 작가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 책을 내는 뜨끈뜨끈한 작가들의 두 번째 책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저의 경우, 첫 시집은 작업하면서도 부끄러워서 숨고 싶어지는데, 두 번째 책은 조금 더 정돈된 마음으로 쓸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졌거든요. 두 번째 책을 내는 신진 작가들의 책이 반갑기도 하고, 첫 번째와 어떻게 달라졌을지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는 것 같아요.
또 작가가 평소에 말하던 가치관과 책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책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요. SNS나 각종 인터뷰에서 작가가 말한 것들이 그의 책에 들어가 있으면 괜히 반갑더라고요. 내가 아는 사람 같고. 사람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말하는 것과 쓰는 것이 같은 사람이 된다는 건 작가들에게도 어려울 텐데, 제가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작가의 생각이 글에서도 드러나면 그 작가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래서 평소에 눈여겨 보는 작가가 있으면 인터뷰나 SNS를 꼭 보곤 합니다.
신간을 기다리는 작가가 있나요?
김세희 작가의 『항구의 사랑』 이 기대 됩니다. 『가만한 나날』 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초년생들의'첫' 순간에 대해 써 낸 이 단편집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여학생이라면 한 번쯤 빠져보았을 팬픽, 아이돌, 그리고 첫사랑 이야기라니요. 이번에도 내 인생의 어느 '첫 순간'을 그려낼 소설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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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김세희 저 | 민음사
아이돌 그룹의 A군과 B군이 서로 사랑하고 섹스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읽으며,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닌 모든 섹슈얼한 정보들을 배웠다. 그리고, 사랑이 있었다. 여학생들은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