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이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처음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힙합에서 주로 ‘허세를 부리듯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스웨그’라는 단어와 ‘조선’이라는 국호가 나란히 놓인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작품은 201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뮤지컬 부문 선정작이기도 한데요. 현대의 랩과 힙합처럼 조선시대 삶의 고단함과 역경을 시조에 담아 털어내던 백성들이 시조 활동이 금지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랩의 라임 못지않은 연어 유희, 국악을 기반으로 동서양과 시대를 아우르는 음악, 한국무용부터 현대무용, 힙합, 락킹, 비보잉까지 적용된 안무는 무대를 색다른 에너지로 채우는데요. 취재하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레 배우들이 상당히 고생했겠구나 짐작되기도 했습니다. 이 공연에서 가장 의외라고 생각한 배우를 만나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요.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 인근 카페에서 이경수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배우들이 굉장히 고생했는데, 공연이 올라가니까 힘든 부분이 많이 해소됐어요. 애들이 무대에서 놀더라고요. 그 힘으로 가는 것 같아요.
창작 초연인데도 객석 반응은 좋습니다. 제목이나 포스터만 봐서는 어떤 작품인지 도통 짐작이 안 돼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저도 이런 작품인지 몰랐어요(웃음). 처음 대본을 읽고는 무슨 소린가 했고, 개연성부터 디테일 하나하나 잡아왔죠. 대본을 정말 많이 봤어요. 창작이니까 정해진 게 없잖아요. 계속 아이디어 내고 드라마도 열심히 잡아가고. 최근에 계속 창작만 해서 머리가 더 빠릿빠릿하게 돌아간 것 같아요. 그래서 창작을 하면 확실히 연기가 늘고요.
그러게요, 전작인 <여명의 눈동자>와는 너무 다른 작품이라 놀랐습니다. 최근 참여했던 작품 중에서는 몸을 가장 격렬하게 움직이는 거죠(웃음)?
안무가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과거에 익혔던 재즈발레 등도 아니고 처음 접하는 장르더라고요. 무릎도 안 좋은 데다 도저히 소화할 수가 없어서 캐스트 발표가 됐는데도 누가 될까봐 빠지려고 했어요.
그래도 다른 배우들에 비해서는 차분하던데요. 연기하는 십주라는 인물이 골빈당의 수장이니까 오히려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다른 배우들 레벨까지는 도저히 안 돼요. 솔직히 안무 때문에 인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하고 싶지만, 안 외워지더라고요. ‘대사 안 외워지면 이런 스트레스겠구나’ 싶었어요. 다행히 다른 친구들이 워낙 잘해서 저한테까지는 시선이 안 오고, 또 십주라는 캐릭터가 너무 열심히 추는 것도 안 맞을 것 같고요.
안무를 제대로 소화하고 싶지만 안 외워지고 안 된다니...
이경수 씨의 필모그래피를 아는 분이라면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무슨 말인지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웃음)!
‘스웨그’와 ‘조선’이 제목으로 함께 묶인 게 의외였는데, 극 안에서는 또 재밌게 풀어냈더라고요. 이런 재미가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수애구(壽愛口)’라고 해서 목숨 수, 사랑 애, 입 구. ‘목숨 걸고 시조 사랑을 외치다’로 얘기하죠. 작품이 갖고 있는 힘도 있고, 운도 있고. 시대를 잘 반영한 것 같아요. 민초들의 이야기인데,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게 둬라, 생각하고 표현하게 놔두라’는 거죠.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을 때 백성에게 알려지는 걸 막으려는 세력이 있었다고 하잖아요. 백성이 글을 알게 되면 거기에서 시조를 비롯해 문학적인 것이 피어날 테고, 백성들이 너무 많이 알게 되니까 다시 후퇴하게 하려는 거겠죠. 대사 중에 ‘나라의 진정한 힘은 백성들의 자유와 그들과의 소통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 작품의 주제가 아닐까. 커튼콜 때 보면 관객들도 많이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우리가 몇 년 전에 겪었던 상황과도 맞물려서 더 공감하시는 것 같고.
억압 속에서도 비밀시조단 골빈당을 중심으로 자유를 외치는데, 골빈당의 수장이 십주입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인물인데 코믹한 부분도 있고 균형을 잘 잡았더라고요.
‘절대 무겁게 가지 말자’가 철학이었어요. 십주는 그냥 ‘허당 대장’이에요. 대본에도 그렇게 적혀 있고. 십주가 무거우면 극이 재미없어질 거예요. 적절한 가벼움 안에서도 충분히 역할을 소화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거든요. 사실 이렇게 왁자지껄한 작품, 또 인물은 처음인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저를 내려놓고 여러 가지 모습을 시도하게 되더라고요. 연기하면서 정말 재밌었어요. 제 실제 성격과도 비슷하고요.
전작인 <여명의 눈동자>를 봤던 분이라면 더 놀라셨겠죠. 개인적으로는 발성이 완전히 바뀌어서 놀랐습니다만. 노래만 들으면 성악 전공자로 알았을 거예요.
완전히 달라졌죠. 2015년 <리타> 준비하면서부터 배웠거든요. (양)준모가 그 작품을 연출하면서 고음이 많은 테너 역할을 못 찾고 있었는데, <고스트> 끝나고 며칠 안 지났는데 저더러 오페라를 하자는 거예요. 성악은 어릴 때부터 무척 좋아하기는 했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죠. 전문가에게 배우니까 깊게 들어가더라고요. <여명의 눈동자> 전에는 2~3년간 공연을 안 했는데,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공부했어요. 계속 듣고 노래하고. 전공자 이상 한 것 같아요. 지금도 제 휴대전화에는 성악곡만 있어요.
그런데 이미지도 반듯하고 성악 발성이 짙게 나오면 역할이 제한적일 수도 있을 텐데요.
저도 그 생각을 했는데, 그런 한계를 정하면 재밌게 공부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요. 그 안에서도 변화를 한다면 좋을 것 같고요.
2006년 뮤지컬 <라이온 킹> 심바로 데뷔했으니까 초반 3년 정도 극단 시키에서 활동한 점을 감안해도 다작은 아니잖아요. 고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의도한 건 아니고 안 써주시니까(웃음). 작년에는 오디션 본 것마다 안 되더라고요. ‘포기할까’ 생각도 자주 했지만,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계속 연습했죠. 다행히 올해는 <여명의 눈동자>부터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일단은 ‘공연을 많이 하자’가 목표예요. 그동안은 죽고 죽이는 역할, 진지한 인물을 많이 해서 사실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다른 작품도 충분히 할 수 있겠더라고요. 이런 춤도 췄는데 뭘 못하겠어요. 아, 멜로는 모르겠네요(웃음).
이번 작품에서 다음 작품이 연결될 때도 많으니까요. 또 생각한 대로 이뤄진다고 가창력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욕심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가장 잘하는 게 음악이고, 노래 배운 게 아까우니까 흔히 말하는 성대 혹사극은 다 해보고 싶죠. <영웅>이나 <레미제라블> 같은. 콘서트도 해보고 싶어요. 마이크 없이 노래하는 무대에도 서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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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