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 C영상미디어
취준생이라는 거대한 불안을 편안하게 잠재워주던 사랑스러운 그녀. 매일같이 붙어다니다 1주년을 맞이할 즈음 승준은 일년 동안 해외인턴십을 가기로 결정했다. 출국날 공항에서 그녀의 이별문자를 받고 멘붕에 빠졌지만 잘 극복했다. 대기업 3년차 대리, 대부분 장가간 친구들은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척하는 승준을 ‘씹선비’라 부르며 조롱대곤 한다. 이제 결혼할 여자만 고르면 되는데 딱 꽂히는 여자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마주쳤다.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는 하필이면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결국 헤어지자고 먼저 말하는 순간, 지는 게임을 시작했다. (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줄거리)
트위터에 출간 소식을 올리자마자 40만 뷰를 기록하며 젊은 여성들의 뜨거운 호응과 격려 속에 출간된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 지금 시대 젊은이들의 연애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활동하는 민지형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서 기존의 일반적인 소설과는 다르게 문학성보다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을 취한 소설이다. 한국의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남자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페미니스트가 된 첫사랑과의 재회를 그림으로써 ‘젠더 이슈’가 연애에 어떻게 걸림돌이 되는지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다. 적나라해서 웃기고 좀 짠한 남녀간의 사랑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설을 통해 지금 시대 젊은이들의 연애, 성, 사랑, 결혼에 대한 풍속도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소설을 쓰게 된 집필 동기와 작업과정, 출간이 가져온 파장이 궁금해서 작가를 인터뷰했다.
어쩌다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나요?
무엇보다도 제 스스로 이런 얘기가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해서 훌륭한 페미니즘 소설들이 이미 많이 나와있었지만, 페미니스트의 연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페미니스트로서 일상에서 겪는 여러가지 고충 중에 특히 피부로 와 닿았던 것이 저에게는 연애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봐도, 수많은 친구들이 페미니스트가 아닌 남성과의 연애 과정에서 고충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우리 사회가 ‘기혼’과 ‘연애’를 비정상적으로 강조해왔기 때문에 페미니즘 담론 안에서는 주로 ‘비혼’, ‘비연애’가 강조되어왔고, 그래서인지 실존하는 헤테로 페미니스트의 연애의 어려움이 별로 얘기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얘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썼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혹시 작가가 남자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로 남자 1인칭 시점을 제대로 구현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혹시 관심법을 쓰는 건 아닌가요?
관심법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제가 만났던 남자들과의 경험이 모티브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미친 페미니스트’ 역할이었겠지만, ‘나와 만나고 있는 저 남자가 왜 저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말할까’를 계속 생각해보고 나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던 것이 이 소설 속 남자의 1인칭 시점을 쓰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남자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 남자』 ,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를 비롯한 다양한 책들도 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변에 소위 ‘빻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 말을 가로막기보다는 열심히 그들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싸워봤자 내 입만 아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가적인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모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소설 첫 페이지에 ‘나의 전 남친들에게’로 시작하는데 어떤 의도가 있는지요?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실제로 많은 부분 저의 전 남친들에게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고요. 이 책의 제목이 남자 시점이기 때문에 제목만 보면 ‘안티 페미니스트 책인가?’라고 오인될 수 있는 지점도 있어서 ‘여성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썼습니다’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일종의 신호로 첫 장에 그 문구를 넣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거기서 이미 소설이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고요. 많은 분들이 그 부분을 좋아해 주셨고, 재밌었다는 반응이 많아서 뿌듯했습니다.
무수한 연애실패담이 소설의 재료가 되었다고 했는데 본인의 연애가 어떠했는가요?
물론 좋은 순간들도 아주 많았고 각각의 연애가 저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 하게 된 2016년 이후의 연애들은 상당히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페미니즘을 통해 의식하고 생각하게 된 것들이 기존의 젠더 고정관념에 기반한 한국 스타일의 연애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싸우기도 많이 했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고 서로 힘들고… 그런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페미니스트로 살다보면 매일 같이 화낼 일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연인에게 그 답답함을 토로하게 되는데 상대가 공감하거나 이해해주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힘들기도 했고요. 서로 접속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다르다던지… 그런 것을 가지고 기싸움을 해야 하는 때도 있었고…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피곤하다고 느낄 때도 많았고요.
책을 낸 후 가장 인상적인 독자들의 반응은 무엇인가요?
채만식의 ‘치숙’처럼 화자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사실은 한번 꼬아서 풍자하는 메타소설을 의도했는데, 그 메타를 문자 그대로 읽는 반응을 볼 때는 조금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 너무 괜찮다’ 같은 반응이 실제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마 읽는 사람의 젠더 감수성이나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은 일부였고, 대체로 소설 속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2-30대 여성들이 너무 내 얘기 같았다, 내 전남친들이 공동집필한 줄 알았다 등의 반응을 보여주셔서 뿌듯했습니다. 눈물을 흘렸다는 리뷰도 많이 봤는데, 처음에는 작가로서 좀 우쭐하기도 했지만 이내 제가 글을 너무 훌륭하게 잘 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각자가 그간의 연애에서 받았던 상처들이 독자분들을 울게 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30대 여성 페미니스트 연애는 워킹데드‘라고 작가의 말에 썼는데 그렇게 절망적인가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절망적입니다. 많은 한국 남성들이 심각한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영역에 아슬아슬하게 아직도 몰카나 성매수, 가스라이팅 등이 포함되고, 그런 것들을 모두 통과하더라도 강력한 젠더 고정관념을 가졌거나 성적대상화를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들, 가부장적인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그런 것들이 문제라고 인식조차 되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아직도 일부에서는 ‘훌륭한 남자, 남자다운 남자’라고 추켜세워지기도 하죠. 페미니즘을 접하고 생각을 깊이 한 여성들과 아닌 남성들의 갭이 너무 큽니다. 그런데다 페미니즘을 무턱대고 혐오하는 젊은 남성의 비율도 높은 것 같고요. 솔직히 참…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집필 당시 ‘페미니즘’ 연애소설 VS 페미니즘 ‘연애소설’ 사이에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그렇게까지 고민한 이유가 있는가요?
처음에는 그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작업이 진척될수록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연애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한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존의 연애가 지금 우리 시대, 특히 페미니스트들에게 어떻게 힘들게 다가오는지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승준은 기존의 사회적인 고정관념을 적용한 연애소설의 남자주인공으로 봤을 때 전혀 나쁘지 않은, 책임감 강하고 로맨틱한 남자일 수 있거든요. 그러나 더 이상 그런 젠더 고정관념에 기반한 연애를 원하지 않는 여자들이 도래한 것이죠.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으면 그저 페미니즘을 소재로 쓴 연애소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저를 포함한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사실 모욕적인 일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애초에 ‘페미니스트의 연애’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논쟁적인 지점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왜 페미니스트의 연애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지를 스스로도 계속 질문해야 했고 어디까지나 연애소설의 형식을 띈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그 포인트를 집요하게 붙잡아야만 했습니다.
*민지형
1986년생. 서강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신문방송학, 일본학을 공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대학원에서 극영화 시나리오를 공부했다. 2015년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서 [조선공무원: 오희길 전]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한 편의 소설집과 에세이를 펴냈고, 웹소설을 썼으며, 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와 한경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소속 성폭력예방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첫사랑은 중학교 3학년, 첫 연애는 대학교 2학년. 이후 연애에 나름 소질(?)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선 열심히 연애하고 이별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우리들의 연애와 사랑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하며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이 소설은 그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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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민지형 저 | 나비클럽
사랑하고 싶기에 부딪히고 싸우는 과정 그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젠더 이슈 문제로 연인과 출구 없는 갈등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더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으로 완성된 소설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