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대담] 바두르 오스카르손 “그림책 『납작한 토끼』 의 탄생 스토리”
결국은 ‘상상력’으로 귀결됩니다. 저희가 은행이나 개인 회사에 다니는 분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거의 안 하지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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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디자인, 교육, 라이프스타일 등 다각도에서 북유럽 문화가 주목받고 있고,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출판이다.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스칸디나비안 포커스>라는 이름으로, 낯설게 느껴졌던 북구의 책들이 어떻게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게 되었는지 그 매력을 조명하는 기획전을 열었다.

 

이에 북유럽의 작은 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꼽히는 페로 제도 출신의 그림책 작가 ‘바두르 오스카르손’이 방한해 ‘북유럽의 작은 나라 페로 제도 작가가 들려주는 조금은 낯선 그림책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대담을 펼쳤다. 오스카르손의 책들은 미니멀한 그림체와 이야기로 사랑받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널리 퍼졌고, 한국 독자들과는  납작한 토끼』   로 처음 만났다. 지난 6월 23일 서울국제도서전 대담에서는 2008 뉴욕 타임스 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된  『파도야 놀자』 ,  『강이』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이수지 작가와 그림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등을 쓴 최혜진 작가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최혜진 : 이수지 작가님께 첫 질문을 드릴게요. 이 대담을 의뢰받으면서 처음으로 바두르 오스카르손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오스카르손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오늘 대담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여쭤볼게요.

 

이수지 : 오스카르손 작가님이 한국에서 처음 책을 내기 때문에, 독자분들도 처음이고 저 또한 처음이네요. 또 작가님 역시 저에 대해 잘 모르실 것 같아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얘기해 보면 정말 재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혜진 : 오스카르손 작가님은 어떤 기대감을 품고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오스카르손 : 저도 정보가 많은 상태에서 온 것은 아니고, 그저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더구나 저는 아시아 방문이 처음이에요.

 

최혜진 : 이제 본격적인 대담에 들어가 볼게요. 오스카르손 작가님께서 단독 강연 중에 ‘이중 독자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얘기해 주셨어요. 그림책은 다른 장르와 달리 어른 독자와 어린이 독자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숙제를 가진 장르인데요. 어떤 특징을 가진 그림책들이 모든 연령의 독자들에게 다가갈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시는지 두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어요. 어떤 특징을 가진 그림책들이 반복해서 읽을 만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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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르손 : 저도 그 답이 무엇인지 굉장히 알고 싶은데요. 추측해 보자면 반복해서 읽어도 계속 새로움을 주는 책은, 결론이 딱 떨어지지 않고, 여러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방향으로 유추해 볼 수 있고, 해석에 따라 의미 자체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수지 : 저는 사실  납작한 토끼』  를 전자 원고로 처음 읽으면서 중간에 납작한 토끼가 등장할 때 정말 ‘헉!’ 했습니다. 저희 아이들과 봤을 때도 함께 ‘헉’ 했죠. 제가 가끔 아이들에게 책을 사 주려고 책을 고를 땐, 몇 장만 읽어 보고 책을 산 뒤 끝까지 읽지 않고 집에 가져옵니다. 그러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을 때 모두가 처음 읽는 것이므로 같은 곳에서 숨을 참고, 같은 곳에서 ‘헉’ 하면서, 같은 곳에서 감동할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이 바로 아이와 부모 독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지점일 텐데요. 우선 『납작한 토끼』 에 그런 지점이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고요. 다음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림책은 여러 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가 똑같은 방식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두 독자에게 어필하는 것이므로, 엄마는 엄마의 눈으로 아이는 아이의 눈으로 책을 읽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풍부해지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제 책  파도야 놀자』  를, 어떤 독자들은 정말 아이가 바닷가에 가서 한바탕 잘 놀고 온 책으로 읽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독자는 책이 반으로 접힌 부분, ‘경계’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아이가 저쪽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장치를 사용한 것에 재미를 느끼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무척 다른 관점으로 책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독자들이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책을 보는 것을 굉장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읽을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하다면 양쪽 독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혜진 : 대담을 준비할 때, 이수지 작가님께서 두 작가님의 공통 키워드로 ‘여백’이라는 단어를 꺼내 주셨습니다. 오스카르손 작가님은 열린 결말처럼 규정되지 않은 스토리에서 여백이 느껴집니다. 또 이수지 작가님 작품의 경우, 독자가 어느 층위에 있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완결된 정확한 스토리가 주는 ‘쾌감’이 있잖아요? 동의하시죠.(^^) 열린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두 작가님은 왜 완결되지 않고, 해석의 여지와 여백이 많은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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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르손 : 참 다행인 점이라면, 세상에는 저희 둘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굉장히 많은 작가가 있습니다. 완결성 있는 결말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른 작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해석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그런 방식이 재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재미가 있어야만 작업을 합니다.

 

이수지 : 오스카르손 작가님 말씀에 동합니다. 물론 저도 열린 결말을 싫어하기도 합니다. ‘어쩌라고?’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죠. 다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딱 해 주셨는데요. 세상에 저희 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대다수의 작가가 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희까지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혜진 : 그림책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두 가지의 구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끌고 가는 경우도 있고, 그림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경우도 있죠. 오스카르손 작가님 책에서는 글이 중요한 서사를 끌고 간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작가님 그림책을 보면 레이아웃이 거의 동일해요. 왼쪽에는 작은 그림과 텍스트가 있고, 오른쪽에는 정사각형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레이아웃으로 대부분의 그림책이 만들어졌어요. 작가님께서 그림책 작업할 때, 글과 그림 사이의 비중을 어떻게 배분하시는지, 그리고 작업할 때 에너지를 어떻게 나눠 사용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오스카르손 : 저는 굉장히 의도하여 이런 방식의 레이아웃을 사용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왼쪽에 글과 작은 삽화가 있는데, 처음에는 글 위에 여백이 많이 남으니 채워 넣을 수 있는 그림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린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주인공들의 대화를 이해할 때 도움을 주는 장치로서 그리게 되었죠.

 

그리고 작업할 때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하냐는 질문을 해 주셨는데요. 우선 저는 드로잉을 먼저 합니다. 드로잉을 하고 색을 입힌 다음, 그림이 다하지 못한 내용을 글로 넣어 내용을 풍부하게 만듭니다. 저는 글을 통해서 내용을 반복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이 이미 하고 있는 얘기를 글로 또 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일러스트레이션이 다하지 못하는 얘기만 글로 채워 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글과 그림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제3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모든 것을 의도했다고 했는데요, 특히 독자들이 책장을 넘길 때 오른쪽 페이지로 대화를 이어간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

 

최혜진 : 이수지 작가님 책에서는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은 역할을 한다고 느꼈어요. 글 없는 그림책 작업도 많이 하시고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림책 장르와 동화책 장르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 그런 구분을 하시는지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이수지 : 오스카르손 작가님께서 그림을 먼저 그린다는 얘기가 재미있네요. 저는 글을 먼저 쓰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희가 비슷하네요.(^^) 저는 저를 표현할 때, ‘그림으로 글을 쓴다’고 해요. 사실 그것이 글인지 그림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글 없는 그림책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림의 비중이 높고 그림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글 없는 그림책’ 장르를 생각해 보면, 원래 글이 있는 그림책에서 글을 뺀 것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그림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이야기인 거죠. 그러니까 그림이 먼저냐 글이 먼저냐의 부분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찾다가, 오스카르손 작가님이나 제가 각자의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동화책과 그림책에 대해 짧게 얘기하면, 굳이 이 둘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논의보다는, 어쨌든 그림책은 하나의 독립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갔으면 좋겠고요. 작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림이 없어도 성립하는 이야기가 동화이고요. 그림이 없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그림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혜진 : 오스카르손 작가님은 ‘재밌어야만 작업을 한다. 재미가 작업의 동력이다’라는 말을 하셨어요. 그런데 작가님의 책들을 보면, 작가님께서 재미를 느끼는 지점이 꽤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납작한 토끼』  를 보면 ‘죽음’을 다루고 있어요. 이야기에서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한국에서도 곧 출간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나무』  도 믿음이라는 행위를 시험대에 올려 ‘이걸 정말 믿을 수 있겠어?’라는 질문을 합니다. 『잔디밭 전쟁』 은 타자의 이로움과 위협에 대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고요. 『윌버트』 는 ‘본다는 행위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작가님은 철학적인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시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는데요. 다소 난해한 주제로 그림책 작업을 할 때 작가로서 어떤 기쁨을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오스카르손 : 저는 아이들이 말을 모르고 그것을 표현할 단어를 몰라 정확히 얘기할 수 없을 뿐, 난해한 주제에 대해 나름대로 충분히 생각한다고 믿습니다.

 

예전에 제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ATM에서 돈을 인출할 일이 있어 함께 간 일이 있습니다. 아들이 그 모습을 보더니 “아빠가 죽으면 그 카드 내가 써도 돼요?”라고 묻더라고요. 저는 그런 아들을 보면서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왜냐면 ‘아빠가 죽고 나서 나는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걱정을 지금부터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어려도 생이나 죽음, 여러 주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있다고 느끼고요. 제 책은 이런 난해한 주제에 대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부모를 위해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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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 제가 오스카르손 작가님의 단독 강연 중 인상적으로 들었던 얘기는 그림책을 볼 때는 ‘책으로부터도 노력이 나와야 하고, 부모와 아이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서로가 책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책 한 권을 다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납작한 토끼』  를 보면서 책을 읽는 아이가 그 수준에서 가질 수 있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기 좋은 플랫폼을 만들어 주는 게 그림책 같아요.

 

방금 든 생각인데요, ‘존재와 비존재, 그리고 믿음’ 이 세 가지를 표현할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가 뭔지 아시나요? 그건 바로 ‘까꿍 놀이’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실 그림책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최혜진 : 네,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지금까지는 두 작가님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해 봤는데, 한눈에 쉽게 보면 두 작가님의 작업이 굉장히 다릅니다. 오스카르손 작가님의 작업에서는 심리적인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관조하는 느낌과 정적인 이미지가 있고요. 반면 이수지 작가님 작업의 경우, 인물의 움직임이 강조되고 동적이면서, 독자로 하여금 같이 느껴 보자고 끌어들이고 유혹하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굉장히 몰입감이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두 분의 작업에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그림책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두 작가님은 그림책으로 독자와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이수지 : 이번에는 제가 먼저 이야기해 볼게요. 저는 항상 먼저 얘기해 주는 사람이 고맙더라고요.(^^) 저희 두 사람이 굉장히 다르면서도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재밌습니다. 책은 여는 순간 드라마가 시작되어 닫는 순간 끝이 납니다. 저는 그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독자가 다른 세계에 완전히 ‘퐁당’ 들어갔다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뭘 하고 있는지를 그냥 보는 것보다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를 상상하면서 작업을 하고, 책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책을 읽는 아이를 보면, 그 순간 그 아이는 저와 다른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모습이 아주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아이는 다른 세계에 있다가 ‘목욕해라, 밥 먹어라’ 같은 소리와 함께 깨어나는 겁니다. 현실로 돌아왔다가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경험을 주는 것이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스카르손 : 저도 최혜진 작가님이 말한 것을 느꼈습니다. 이수지 작가님 책을 보면서 ‘아, 이분은 나와 굉장히 다르다’라는 것을요. 제 책이 전통적인, 정적인 연극이 공연되는 평평한 무대라고 한다면 이수지 작가님은 원형의, 실감 나는 발레 공연이라든가 굉장히 움직임이 많은 공연 무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림을 하나의 소통 매개로 생각합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저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 사이에서는 그림이 하나의 소통 경로였죠. 아버지도 그림을 그리셨는데 아버지와의 소통에서도 물론 그림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제 그림책에서도 이런 점이 나타나기를 원했습니다. 사회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듯이 그림도 하나의 언어입니다.

 

최혜진 : 이건 저의 비약일 수 있어요. 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같은 것을 하면 안 되지만요, 재미를 위해서 한번 해 보자면요.^^ 두 작가님께서 보여 주신 세계의 다른 점이 저에게는 이렇게 느껴졌어요. 우선 오스카르손 작가님의 작품은 굉장히 북유럽답다고 느껴져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북유럽의 이미지에 가깝기도 하고요. 이수지 작가님의 작품은  흥과 몰입이 느껴지면서 이것이 한국적인 감성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 봤습니다. 그래서 좀 가벼운 질문을 드려 보자면요. 두 작가님께서 세계 곳곳의 도서전을 다니실 때, 모국 독자가 책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해외 독자들이 책을 받아들이는 태도 사이의 차이를 느껴 보신 적이 있는지, 그런 경험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오스카르손 : 나라별로 굉장히 다르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일반화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지만 어느 정도 인정할 부분도 있습니다. 페로 제도는 굉장히 조용하고 간결한 느낌을 주는 지역이라 그런 점이 제 책에 깃들여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덴마크를 가면, 언어는 달라도 문화가 비슷해서 그곳 사람들이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 가면 다릅니다. 독일과 덴마크는 지리적으로 멀지 않는데도 독일에서는 제 책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또 미국에서는 아예 문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요. 미국에서는 그림책을 보는 시선도 다르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언어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새롭게 배워야 할 정도라고 느낍니다. 나라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이수지 : 저는 책마다 다릅니다. 즐거운 책도 있지만 시커먼 책도 많아서요.(^^) 예를 들어 파도야 놀자』  는 전 세계 중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팔려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흥이 많은 민족이라 그런 걸까요. 스페인 책 축제에 초청받아 다녀온 적도 있는데, 그분들도 흥이 많으시더라고요. 확실히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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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 : 이제 마무리 질문인데요, 단독 강연 중에 오스카르손 작가님께서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출판사에서 ‘그림을 너무 비슷비슷하게 그리지 마세요. 색깔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려 주세요.’라고 해서 오히려 그 요청과 반대로 작업해 보셨다고요. 그림을 굉장히 비슷하게 그리면서 색깔을 거의 쓰지 않고 『나무』 라는 책 작업을 하신 거죠. 이수지 작가님도 이런 반골 의식을 약간 가지고 계신 거로 알고 있어요. 책에서 접지선을 없는 듯이 처리해야 하는 부분에서, 접지선을 보란 듯이 드러내 실험하신 작품이 ‘경계 3부작’이잖아요. 그래서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작가가 스스로 제약을 만들거나 그림의 스케일을 축소하는 등 한계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어떤 창조적인 발상을 자극하기도 하는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오스카르손 : 저는 예전에 어느 출판사에서 계속 이런저런 수정을 요구하길래 출판을 거부한 책도 있었을 정도로 저만의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는 편인데요. 그럼에도 출판사와 작가 사이에는 상호 신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함께 작업하는 출판사는 교직원협회출판사이기 때문에 언어 표현 수위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존중하여 작업합니다. 물론 제 최근 몇 작품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누렸기 때문에, 작업하는 데 여지가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을 때, 출판사에 양해를 구하면 출판사에서도 그것에 대해 허용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신뢰를 만들어 갑니다.

 

이수지 : 제 책  거울 속으로』  는 책이 접혔다 펴지는 부분, 즉 책을 제본하는 부분을 경계로 한 쪽은 아이의 현실 세계, 다른 한쪽은 아이의 거울 속 상상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글이 없는 책입니다. 제가 이 책을 가제본으로 만들어 볼로냐에서 출판해 보려고 할 때, 외국 출판사 편집자분이 보시더니 “와, 좋네요! 괜찮네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출판을 해 주겠다고 했어요. 대신에 책에 글이 없으니까 글을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왔죠. 글이 없어서 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글을 쓰라고 하면 불가한 작업인 거죠.

 

저는 제한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이런 방식을 밀고 가 봅니다. 이런 작업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오스카르손 작가님처럼 출판 기회를 포기했던 겁니다. 물론 다른 곳에서 결국 책이 나오기는 했지만요. 이 책의 마지막에 거울이 깨지는데, 어떤 분은 거울을 깨면 엄마들이 싫어하니까 거울을 깨지 않는 결말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을 하다 보니 오히려 제가 뛸 수 있는 반경이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그림책 자체가 제한 그 자체입니다. 겨우 열여섯 장 정도의 책에서 온 세계와 죽음 등을 논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제한이 에너지를 주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최혜진 : 제가 마무리 멘트로 생각한 것을 이수지 작가님이 먼저 말해 주셨어요! 제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다시, 그림이다』   인터뷰집에서 굉장히 와닿는 문장을 발견했어요. “제한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극제가 됩니다. 만약 5개의 선, 또는 100개의 선을 사용해 튤립 한 송이를 그리라고 한다면 5개의 선을 사용해서 그릴 때 당신은 훨씬 창의적이 될 것입니다.” 이 문장이 그림책의 매력을 잘 설명하는 문장이 아닌가 했습니다. 그럼 정말 마지막 질문 딱 하나만 드릴게요.

 

여기 모인 분들은 모두 그림책을 사랑하는 성인으로서 이 자리에 오셨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마법과 같은 장르를 꾸준히 사랑하고 싶은 성인 독자들에게 어떤 태도나 자세가 필요할지 조언을 부탁드려요.

 

오스카르손 : 결국은 ‘상상력’으로 귀결됩니다. 저희가 은행이나 개인 회사에 다니는 분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거의 안 하지요. 그런데 작가나 예술가에게는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상상력을 풍부하게 키우고, 어른이 되어서도 상상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림책은 어른과 아이가 동등한 위치에서 참여하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또 그림책을 읽을 때만큼은 아이가 부모에게 무언가를 더 줄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는 새로운 시각으로 그림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줄 때, 그것을 활용하는 것, 그 비밀 열쇠를 활용하는 것이 그림책 읽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림책은 부모와 아이의 컬러버레이션 속에서 더욱 풍부해지니까요.

 

이수지 : 저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그림책을 많이 보시길 추천합니다. 거의 모든 것이 그림책 속에 있고, 여기 있는 분들은 이미 그 열쇠를 한 번 열어 본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많은 작가와 많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저도 도서전에 오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어요. 이 마음을 유지하면서 그림책을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납작한 토끼바두르 오스카르손 글/권루시안 역 | 진선아이
평온한 전개 속에서 죽음이 엿보이고, 독특하고 익살스러운 계획에서 따뜻한 배려와 아름다운 슬픔이 느껴지는 그림책입니다. 조용한 유머와 이상한 경이로움이 있는 이야기 속에서 많은 상상과 질문을 던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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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