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재해변, 파호이호이 위에 서서 “무엇이 중요한지 가치를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며 제주도의 과학적 가치를 설명하는 탐험가 문경수 대장.
2019년 7월 16일 화요일 밤 9시, 제주도에서 이 글을 쓴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곳은 박소해 작가님과 남편 분이 운영하는 오후 네 시 펜션이다. 내 걸음으로 스무 발자국쯤 걸어가면 ‘그리고 서점’이란 이름의 책방이 있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슬리퍼 바람으로 찍찍 걸어가 구경할 거다. 분명 나는 이곳에서 ‘또’ 그럴 듯한 책을 한 권 구입할 것이다. ‘또’라는 표현을 붙인 걸 보면 이미 다들 짐작하셨겠지만, 제주도에 와서 끊임없이 책을 사고 있다.
지난 주 금요일, 제주도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다. 많아야 한두 권만 구입할 셈이었다. 도착한 당일엔 잘 지켰다. 다행히(?) 가는 길에 서점이 없어서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 당장 다음날인 토요일, 위미항 근처의 라바북스에 가자마자 첫 책을 구입했다. 제목은 『너와 추는 춤』, 제주도에서 개와 만나 동거를 시작한 이야기를 그린 4컷 만화였다. 안 살 수 없었다. 사인본이 있는데 그냥 지나치는 건 덕후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이 책을 샀을 때 나는 봇물이 터졌다는 사실을, 이후 며칠간 무명서점, 디어마이블루, 소리소문, 보배책방 등 지역별 서점을 돌며 다섯 권 ‘이상’의 책을 구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했어야 했다. ‘이상’이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5권이 넘는 순간 책의 권수 세기를 포기한 탓이다.
많은 숫자의 책을 단기간에 구매하면 무의식 중에 랭킹을 정하곤 한다. 엿새간의 일정, 마음속으로 정한 ‘제주 책 지름 랭킹 1위’는 앞서 언급한 독립 서적 『너와 추는 춤』이었다. 하지만 월요일, 사인본을 몇 권 더 얻고 나니 마음을 바뀌었다. 이번 랭킹 1위는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 이다.
이 책의 저자 문경수 대장이 처음 제주도란 섬을 인식하고 온 것은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섬에 어떤 ‘과학적인’ 의미가 있는지,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왜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하는지 깨닫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란다. 문경수 대장은 과학자들이 왜 제주도에 오고 싶어 했는가, 그 까닭을 파고든 후에야 제주도의 파호이호이와 아아를 만난다.
피아니스트 유니스황의 사진. 이 날, 강연 후 이동한 차귀도 - 협재 사이 바다에서 우연히 큰남방돌고래를 만났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뜻일까 확실하게 알아듣기 어렵다. 이걸 파호이호이란 돌로 설명하면 쉬워진다. 파호이호이는 제주도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검고 구멍이 뽕뽕 뚫린 암석의 다른 이름이다. 구멍이 뚫려서 맨발로 걸으면 아플 것 같지만 실제로 밟아보면 부드럽다. 제주도는 화산이 분출한 용암이 굳어진 것이 쌓여 만들어진 섬이다. 즉, 검은 돌 ‘파호이호이’ 덩어리가 섬 자체다. 이에 반해 아아는 아주 날카롭다. 제주시 용두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나운 짐승의 비늘 같은 느낌의 녀석이다. 문경수 대장은 이 두 개의 돌 이름을 알려주며 덧붙였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파호이호이, 제주도 그 자체다. 이 이야기를 들은 곳은 협재 해변, 파호이호이 위였다.
나는 파호이호이에 앉아 문경수 탐험가의 강연을 듣다가 살짝 손을 뻗었다. 내가 앉아있는 단단한 파호이호이를 만지작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쩐지 나는, 이 날 제주도의 민낯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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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문경수 저 | 동아시아
용암과 공기가 만나 생성된 주상절리의 경이로움, 나무와 덩굴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는 곶자왈의 독특한 생태계, 제주에서 바라본 밤하늘의 환상적인 아름다움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제주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