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고통’에 집착하고 있을 때였다. ‘Small Hobby Good Life’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또래의 30대 여성들을 많이 만나는데, 취미와 그 즐거움을 이야기하면서 마음 한쪽에는 ‘고통’을 명심하고 있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처럼 30대 이상의 여성들이 즐겁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더라도, 책 속의 한 줄 혹은 행간 사이에 보일 듯 말 듯한 고통의 시간들을 찾았다. 나이 들어서 얻은 행복한 삶은, 젊은 시절의 그들이 열심히 그것도 아주 열심히(때론 고통스럽게) 그리고 치열하게 산 결과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라도 행복하고 편하기 위해서 지금 나는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소확행’이니 ‘워라밸’이니 뭐니 말고, 열심히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일에서 분리되어 재밌자고 한 취미 활동에서 조그마한 고통, 힘듦이 나타나면 당장 그만두면 될 일이다. 그러자고 하는 게 취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발레가 내 삶도 한 뼘 키워줄까요?』 의 곽수혜 작가는 그러지 않았다. 발레를 배우고 있다고 말하지만 옆에서 보기엔 고통에 몸을 내맡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 매트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바를 잡고 동작을 하고 바 없이 중앙에서 동작을 하는 것. 한 줄로 말할 수 있지만 한 단계를 거듭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취미라고 하기엔 즐거움과 성취감을 얻기까지(발레리나는 될 수 없으니 어디까지를 성취라고 할지) 너무 많은 고통을 겪는 게 아닐까, 굳이 발레여야 할까.
‘굳이…’를 고민하는 사이에 작가는 어느새 햇수로 취미 발레인 4년 차가 되었다. 그는 회사에서 일도 열심히, 취미 활동도 열심히 하는, 본받고 싶은 선배가 되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손사래 치지만,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마당인 그 후배가 거짓말하지는 않았을 거다. 발레 수업을 들을 때면 여전히 부들부들 버틴다고는 하지만, 발레 선생님이 ‘좋아요, 그거예요’ 한다는데 여전하지는 않은 것 같다. 고통을 참아낸 그는 누가 봐도 조금씩, 그러다가 어느새 훌쩍 성장한 것이다. ‘굳이’가 들어간 문장은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을 책망할 때 쓰는 말인 줄 알았다. 근데 문득 그를 보며, 어쩌면 그 문장은 성장이 멈춘, 성장을 멈춘, 성장을 잊은 어른이 하는 말이지 않을까 싶었다.
일에서 벗어나 무조건 즐기는 삶도 좋다. ‘살기 힘든데, 뭘 또 성장해야 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즐기다가, ‘굳이’라는 말이 떠오를 때 한 번쯤은 한 번 더 해 보는 게 어떨까, 나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슬쩍 권해 본다. 취미를 찾아 나서는 것도, 방황하는 것도, 취미가 아닌 삶이 지루해서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 지루함은 결국 아무 변화도 없다는 데서 오지 않을까. 가만히 있으면 변화라고는 후퇴 아니면 노화뿐일 테니, 그보다는 ‘굳이’ 한 걸음 내딛어서 성장 혹은 성숙을 향해 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스스로 혹은 타인에 의해 ‘취미를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발레가 내 삶도 한 뼘 키워줄까요?』 가 몸소 보여줄 것이다. 당신은 잘하고 있다고, 당신의 삶은 어느샌가 훌쩍 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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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가 내 삶도 한 뼘 키워줄까요?곽수혜 저 | 팜파스
이 고통은 끝나기 마련이고, 고통스러울 때 조금 더 뻗으면 근육이 자란다는 것을, 고통을 주는 것도, 버티는 것도, 이기는 것도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은규(팜파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