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맥주를 마셨던 탓인지 어제는 영화관에 들고 간 맥주 한 캔으로도 취기가 올랐다. 고작 한 캔이었다. 지난 3달 간 거의 마시지 않았던 술이었지만, 이렇게 단숨에 주량이 줄어들 줄이야. 어떤 음식을 먹을 땐 꼭 술이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무색하게도, 단 몇 달 만에 내 몸은 술을 받아들이기 어렵도록 변화했다. 그간 쌓아온 알코올에 대한 면역이란 이토록 약한 것이었던가. 내심 실망이 들기도 했던 찰나였다.
오로지 맥주를 먹기 위한 만남. 좁은 골목이라도 맥주와 노가리만 있으면 행복하던 날.
스무 살 이후부터 한 달 이상 술과 떨어져 지낸 날은 없던 것 같다. 뭐 그렇다고 매일 마신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술자리로 이어지곤 했고, 집에는 언제든 마실 수 있도록 맥주와 위스키, 그리고 와인 정도는 갖추어 두던 정도? (회사 다니는 사람이라면 대개 그렇지 않나!) 기호 식품이 어느덧 습관으로 자리할 즈음, 익숙했던 술과의 이별을 잠시만 해 보기로 했다. 운동을 주 4회 이상 해도 다이어트가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술 때문이 아닌가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이건 내겐 아주 대단한 결심이었다. 이름 앞에 ‘술’이 붙은 채 불려본 사람이라면 더 잘 알 텐데, 생활의 낙을 포기하는 일이니까!
곱씹어 보면 참 독하게도 금주 생활을 실천했었다. 냉장고에는 분명 맥주가 있었고, 혼자 치킨을 먹는 와중에도 맥주를 따지 않았다. 두툼한 스테이크를 구웠는데 마침 냉장고에 와인이 있었음에도 애써 참았다. 그래, 이건 혼자였으니까 절제가 쉬웠다고 치고. 술자리가 있을 때도 사전에 ‘나는 술을 못 먹는 상태’임을 밝히고 탄산수를 사 다녔다. 건배용으로 받아 둔 술이 눈 앞에 있어도 전혀 마시지 않았다.
애주가라면 눈 앞의 술을 참아낸다는 게, 같이 먹으면 궁합이 절정인 음식을 두고서도 술을 찾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큰 유혹을 감내해낸 것인지 알 테다. 알코올을 단 한번도 입에 대지 않았던 60일 동안, 나는 매일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마구 칭찬해줬다. 칭찬 받아 마땅한 일 아닌가! 나는 9년 간 쌓아온 나의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사진첩에 늘 술과 함께 하던 일상이 가득했는데, 더는 기록할 게 없었는지 음식 사진이 줄어들었다. 그만큼 행복감도 줄어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뿌듯하기도 한 감정의 모순이 반복됐다.
음료도 맛과 냄새를 강렬하게 융합한다. 모든 술에 포함된 알코올인 에탄올은 문란한 분자이다. 에탄올은 뇌의 미각계, 후각계, 촉각계에 모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들이 합쳐져서 기분에 강력한 효과를 미친다. 와인이나 맥주 또는 버번을 한 모금 마시면, 알코올이 단맛과 쓴맛 수용기 그리고 열 감지 수용기에 들러붙는다. 알코올의 강도에 따라 이런 감각 중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알코올 농도가 10퍼센트 이하일 때에는 알코올이 약한 단맛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뇌는 당을 섭취했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데, 당을 먹고 사는 효모는 에탄올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유전자의 영향도 작용한다. 단것을 아주 좋아하는 집안 내력이 있는 사람들은 술을 더 많이 마시는 경향이 있다.
-존 매퀘이드, 『미각의 비밀』 中
커피만 시키기엔 아까우니까. 항상 디저트와 함께 하던 카페 투어리스트의 일상.
아, 그리고 잊었던 사실. 다이어트가 금주의 주목적이었으니, 당과 탄수화물도 함께 절제 중이었다.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는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이었고, 부드러운 빵은 유명한 빵집을 지나치지 못하는 호기심 가득한 소비의 산물이었다. (이 두 가지는 금지는 아니고 절제 정도였다.) 이들이 가져다 주는 달콤한 행복과 알코올의 풍미가 어우러지지 못한 삶이란, 감정의 동요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간 나를 사로 잡았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혹시 이런 기호 식품들이 가져다 준 거였을까.
생각을 깊게 하거나 감정에 깊게 빠지는 것도 에너지 소비가 큰 것이었는지, 누군가를 극도로 미워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줄어들었다. 전체적으로 먹는 게 줄다 보니 잡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충동적인 생각과 행동도 거의 없었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연락을 한다든지, 야식을 갑자기 먹는다든지. 군더더기 없는 삶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당에 탐닉하면 욕구와 애호와 학습의 정상적인 리듬이 깨진다. 인간은 큰 뇌와 유연하고 활동적인 신체를 유지하는 데 딱 필요한 만큼만 먹도록 진화했다. 위는 담을 수 있는 양이 제한돼 있고, 내장과 뇌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강력한 호르몬들은 도파민에 민감한 부위들을 흥분시켜 배고픔을 느낄 때 음식을 찾도록 자극한다. 즐거움은 배고픔이 절정에 달한 시점인 식사를 시작할 때 피크에 이르렀다가 감소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과다한 양을 투여하면, 신호가 변질되기 시작한다.
-존 매퀘이드, 『미각의 비밀』 中
두 달 여간의 기호식품 절제로 얻은 건 입사 전 몸무게로의 복귀와 정돈된 삶, 그리고 나도 무언가를 참을 줄 안다는 나에 대한 신뢰다. 먹는 습관을 바꾼다는 게 생각보다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이제는 술에 취한 상태보다 조금 더 멀쩡한 정신의 내가 좋고, 디저트를 마구 먹고 싶더라도 체중계를 한 번 더 올라가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왁자지껄한 술자리보다는 평온한 집을 선택할 것 같다. 그래도 끝없이 내 욕구와 줄다리기를 해야겠지. 한번 맛 본 맛은 잊기 힘들 테니까.
나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스스로 지금 든 이 욕구가 어디에서 온 건지 되새겨 보는 것. 매일 이렇게 살면 답답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입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나를 보고 싶을 때라면, 기호 식품과의 이별을 다시금 해 볼 테다. ‘삶의 낙’이라 부를 것은 딱히 없지만 평온한 정신과 몸의 상태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던 어느 애주가의 금주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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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비밀존 매퀘이드 저 / 이충호 역 | 문학동네
우리 몸의 대사 계들에서 보내온 신호를 어떻게 모아서 결합하는지, 왜 같은 음식인데도 어떤 사람은 역겨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즐거움을 느끼는지, 현대인의 극단적인 맛에 대한 집착이 뇌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지 등을 설명한다.
이나영(도서 PD)
가끔 쓰고 가끔 읽는 게으름을 꿈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