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정 아나운서 “부모는 슬픔이고 원망이었지만”
왜 우리 아빠는 후줄근한 작업복을 입고 출근할까? 퇴근한 아빠는 왜 저렇게 지쳐서 잠만 잘까? 왜 우리 부모는 한글을 잘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계속 했던 거죠.
글ㆍ사진 신연선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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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일찍 취업을 하고, 다시 아나운서를 꿈꾸고, 좌절하고, 끝내 아나운서가 됐지만 부모라는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사현장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의 직업을 ‘건축업’이라고 적으면서, “부모님은 어느 대학을 나오셨나?”라는 질문에 입을 닫으면서, 가족여행 다녀왔다는 친구의 말을 부러워하면서 부모라는 질문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그래서 썼다. 쓸 때마다 아팠다. 가난한 부모의 노동과 부모에 대한 평생의 의문들, 그리고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는 고백을 써 내려갈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는 임희정 아나운서는 “글을 쓸 때마다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글이 치유해주었다. 부모의 가난을 정확히 응시하자 부모의 큰 사랑과 전적인 믿음, 그 성실한 삶이 얼마나 큰 유산인지 거듭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이 비로소 그를 부모의 과거와 화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쓸 때마다 아팠고, 쓸 때마다 건강해졌다”는 임희정 아나운서.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는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임동명과 조순덕의 딸’ 임희정의 눈물과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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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부모는


책 나오고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어떤 반응이셨는지 궁금했어요.


엄마는 책 띠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오메. 춥겄다, 춥겄어.”라고 하시더라고요. 독자 입장이 아닌 거예요.(웃음) 책 내용이 중요하지 않고, 당신 딸 사진이 먼저 들어온 거죠. 정말이지 처음 들어본 서평이었어요. 아빠는 책을 곰곰이 살펴보시더니 “긍까, 니가 이 책을 잘 팔아야 용돈이라도 벌 것 아니냐. 뭐, 이제 책 팔러 다녀야 되냐?” 하셨어요.(웃음) 그 반응을 보면서 아, 우리 엄마고 우리 아빠다, 생각했어요.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글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을 때도 그랬죠. 부모님 얘기를 썼는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괜찮아! 암시롱 안 해! 올려!”라고 말했잖아요.


(웃음)그게 저희 부모님의 가장 큰 매력 같아요.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셨다고요. 글을 써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직장 생활로 너무 바쁘다보니 쓸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다 <제주MBC>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온 2016년이 넘어가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삶의 여유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여유가 생기자 제일 해보고 싶은 일이 글쓰기였어요. 그동안 일도 바빴지만 마음도 여유가 없었거든요.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도 많았고요. 무엇을 진득이 사유한다거나 생각해보는 걸 잘 못했죠. 하지만 그동안 생각은 많이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제 경우 그게 부모님이었고요. 은유 작가님의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책도 처음부터 끝까지 찾아 읽고, 칼럼까지 다 챙겨 읽었을 정도거든요. 홈페이지에 수시로 들어가서 챙겨보고요. 그러다 2017년 가을에 은유 작가님의 ‘감응의 글쓰기’ 수업 오픈 소식을 듣고 바로 신청을 했죠.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쓰지 못했을 것 같아요. 

 

책에도 30년을 넘게 골몰한 문제가 부모님에 관한 것이었다고 하셨잖아요. 그토록 부모님 생각에 골몰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어릴 땐 마냥 투정 같은 것이었죠. 사달라는 것, 해달라는 것을 내 부모가 못해주는 것에 대한 투정인데요. 시간이 지나면서는 다른 사람의 부모와 비교를 하면서 질문하게 된 것 같아요. 친구네 아빠는 정장 입고 출근하는데 왜 우리 아빠는 후줄근한 작업복을 입고 출근할까? 퇴근한 아빠는 왜 저렇게 지쳐서 잠만 잘까? 왜 우리 부모는 한글을 잘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계속 했던 거죠. 특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갖게 된 후에는 이 직업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이런 식이에요. “임 아나운서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우신 부모님은 어느 대학을 나오셨나?”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는 거예요. 거기에 저희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셨다는 말을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니 시간이 지나도 계속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군요.


우선 그것을 부끄러워했던 제 잘못이 제일 커요. 그렇지만 그런 시선도 잘못되었던 거죠. 아빠는 평생 노동자로 살았는데요. 그래서 남은 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열심히 노동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왔는데 자식인 제가 보기에는 마냥 애처롭더라고요. 늙은 몸밖에 남지 않은 것 같고요. 친구들 부모님은 월급이 오르고, 직급이 오르고, 임원이 되는데 똑같이 50년을 일한 우리 부모님에게는 남은 게 없는 것 같은 거예요. 화가 났고, 뭐가 문제인지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처음 글을 쓸 때는 글에 화가 되게 많았어요.(웃음)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는 부모님의 삶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고요. 쓰면서는 부모님을 지긋이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쓸 수 있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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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때마다 아프고


쓸 때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너무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잖아요. 어떤 것이 제일 고민이었나요?


하물며 내 얘기를 써도 고민일 텐데 부모님의 이야기를 쓰는 일이라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쓰면서도 계속 생각한 거지만 저는 되게 행복하고, 복 받은 자식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마다 삶의 배경이나 살아온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부모님에 관해 아픔과 슬픔을 겪은 분들도 굉장히 많고요. 그런 분들께 제 글이 행여 상처가 되진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 표현 하나까지 너무나 조심스러웠죠. 그래서 퇴고를 정말 많이 했어요. 퇴고만 8개월을 한 것 같아요. 편집자님과 주고 받은 메일만 100통이 되더라고요. 세어봤어요.(웃음)

 

말씀처럼 아주 다양한 상황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 고민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궁금하거든요.


우선 제가 인정하기로 했어요. 나는 행복했고,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은 일부였다는 전제에서 글을 썼죠. 각자의 사정이 다 다른데 그걸 전부 헤아릴 수는 없고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라는 존재와 자식이라는 존재의 근본적인 마음을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은유 작가님의 말 중에서 마음에 새겼던 말이 ‘작가도 독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거든요. 그 말에 공감을 많이 했고요. 그렇다고 해서 이해하는 분만 읽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상황까지 포용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 한계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의외로 많은 분들이 제 글을 공감해주셔서 조금은 안심했어요. 처음에 글을 쓸 때는 의구심이 정말 컸어요. 그런데 제 얘기를 했을 뿐인데도 정말 많은 독자 분들이 “제 이야기 같아요”라고 해주셨어요. 배경이나 경험이 달라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삶의 결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궁극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글을 쓸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고 하셨잖아요.


은유 작가님 수업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썼는데요. 그날 밤새 한 숨도 못 잤어요. 처음으로 제대로 아버지의 나날을 돌아보게 된 거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집을 나서 지하철 첫 차를 타고, 현장에서 종일 몸을 써 일하고, 지쳐서 돌아왔을 하루를 곱씹으며 글로 쓰니까 너무 괴롭고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잠을 못 자고, 다음날 몸살이 오고 일주일을 앓았죠. 또 글을 쓸 때 몸을 엄청 떨었어요. 얼마나 내 속에 부모에 대한 생각이 곪아 있었으면 그랬을까 싶죠. 글을 쓴 게 아니라 토한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차차 나아졌어요. 처음에 일주일 몸살을 앓았다면 다음부터는 기간이 조금씩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써도 아프지 않아요. 쓸 때마다 아프고, 쓸 때마다 건강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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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의 부모가 막노동을 한다


고백에 가까운 공감 리뷰가 많아요. 느낌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소위 사회에서 성공이라 말하는 척도가 있잖아요. 돈, 명예, 학벌, 타이틀 같은 것. 그것으로 평가하고, 재단하죠. 그런데 부모님이 저를 키우며 해온 노동, 헌신, 사랑, 믿음 같은 가치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그 앞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사실을 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알고는 있지만 자꾸 잊는 것 같아요. 숫자로 표현되지 못하고, 보여지지 않는 것들이니까요. 그러다보니 돈이나 명예를 더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게 됐던 것 같고요. 저는 그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는데요. 독자 분들도 그것을 읽어주셨다고 생각해요.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가장 많이 받은 내용이 부모님 직업에 대한 고백이었어요. 저희 아버지와 비슷한 일을 하시는 분들의 자녀 분들이 그렇게 메일로 “저도 부끄러워하며 살았어요. 작가님 글 보고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용기를 얻게 됐어요.”라고 보내주시더라고요. 이건 너무 놀라운 일 같거든요. 알게 모르게 저처럼 부모를 부끄러워한 자식들이 많았던 거죠. 우리가 갖고 있던 너무 큰 편견이고, 잘못된 생각들인데요. 그것을 깨는 데 어쩌면 조금 매개체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아버지의 노동뿐 아니라 어머니의 노동에 대해서도 같은 무게로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저도 몰랐었죠.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동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말이에요. 사회에 나와 돈을 벌어보고 매일의 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거고요. 결혼을 하고 쌀을 씻어보니 삼시세끼 밥을 챙기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알게 된 거예요.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가장 강력한 방법 같아요. 또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면 글이나 영화 등 간접 경험을 함으로써 이해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다양한 목소리와 이야기가 더 많이 쓰이고 말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나운서의 부모가 막노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었잖아요. 제가 글을 씀으로써 ‘그럴 수 있지’로 이해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 같고요. 그것이 선순환이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제목에 들어간 ‘겨우’는 어떤 의미인가, 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겨우 자식이 되어가는 걸까요?


저도 ‘겨우’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보통 “겨우 이것밖에 못했어.”라고 할 때 ‘겨우’는 미미하고, 부족한 거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못하나요. ‘겨우’라도 쌓을 수 있으면 그것도 가치 있고,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자식이라는 존재는 저절로 얻어진 위치 같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자라는 동안 받은 보살핌과 사랑, 희생과 시간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이죠. 자식이니까 받아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쓰면서 했고요. 그러니까 자식도 ‘겨우’ 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껏 나를 키운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부모님을 보살펴도 부족한 것 같고요. ‘겨우’인 거죠. 그래도 그 ‘겨우’라도 해야 하는 거고요. 이것은 부모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있다면 ‘겨우’ 얻은 것이라도 마땅히 칭찬 받고, 존중 받아야 할 거예요.

 

무엇보다 부모님의 우직한 태도, 삶에 대한 성실한 자세가 참 값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가난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성실과 근면을 가르쳐요. 본인들이 그렇게 살 뿐이고, 자식들은 그걸 저절로 보고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노동을 하고, 자식들을 살뜰히 챙기죠. 그런 것들은 의식적으로 배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체득되는 것 같아요. 또 부모님이 제게 해주신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암시롱 안 해”거든요.(웃음) 어쩌면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도 그것일지 몰라요. 부모님은 제가 뭘 한다고 했을 때도, 뭘 안 한다고 했을 때도 그 말을 했어요. 믿음이죠. 저는 그 믿음을 받고 뭐든 했고, 뭐든 안 했어요. 저는 그 마음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는 마음, 암시롱 안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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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부모가 슬프지 않다


삶에서 여유를 되찾았을 때 제일 먼저 글쓰기가 떠올랐던 이유도 궁금하네요.


일단 글쓰기는 응시하고, 사유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제 경우 글쓰기를 처음에는 화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의 시간을 거쳤어요. 차츰 화가 누그러지고 궁극적으로는 인정과 기쁨으로 바뀌었죠. 책을 쓰는 내내 제게 부모는 슬픔이고 원망이었는데요.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아요. 어떤 슬픔은 이해의 시간을 거치면 기쁨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쓰면서 그걸 많이 경험했어요.

 

쓰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막연히 상상하곤 하는데 방금 말씀이 정말 좋네요.


더 이상 부모를 보면 슬프지 않아요. 사실 과거에 부모를 보고 슬프다 느꼈던 것도 좁은 생각이었죠. 부모님의 삶에 슬픔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걸 저는 슬펐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거예요. 힘들고, 가난한 삶을 살았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쓰다보니 부모님 삶에 있던 다양한 감정을 인정하게 됐고,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어요. 전에는 ‘엄마’, ‘아빠’ 같은 단어만 들어도 울었지만 이제는 안 그래요. 부모님 생각하면 웃음도 나고요.

 

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다고 하셨어요. 부모에 대한 이토록 솔직한 이야기를 쓴 분이 쓰게 될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해요. 에필로그의 제목이 ‘한 경계를 지났다. 꽃이 피었다’거든요.


첫 번째 책을 낸 분들의 공통된 생각일 텐데요. 과연 다음 책을 쓸 수 있을까(웃음) 생각도 들어요. 많이 비워냈으니 다시 채워야겠죠. 지금 생각 같아서는 다시는 부모님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기도 해요. 이 책을 쓰면서 너무 힘들었거든요. 너무 많이 슬펐고, 너무 많이 괴로웠기 때문에 다음에 쓰는 이야기는 좀 더 가벼운 이야기였으면 해요. 다른 장르의 글도 써보고 싶고요. 오랫동안 아나운서로서 말을 하는 사람으로 살았는데요. 앞으로는 쓰는 사람으로 오래 살아가고 싶어요. 말과 글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하며 살고 싶죠.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임희정 저 | 수오서재
한 자식의 고백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세상 모든 아들과 딸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아버지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 자식의 마음, 결국 모두의 이야기다.글을 읽지 못하는 부모에게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따뜻한 음성 편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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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임희정 아나운서 #부모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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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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