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이 새 책을 출간했다. ‘기다리던 단독 저서’라는 수식어와 함께 나온 책의 제목은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선언, 다짐, 격려, 경고. 여러 종류의 목소리로 들리는 이 문장에는 권김현영이 독자들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압축돼 있다. 세상은 달라졌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며 우리는 계속 진화한다는 것. 페미니즘은 언제나 모순과 역설 속에서 어떻게든 길을 찾아냈고(12쪽) 그렇게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는 권김현영이 지난 20여 년간 활동하며 쓴 글을 모은 책이자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 독자들에게 건네는 용기의 메시지다.
나에게 페미니스트란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 알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는 올바름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8쪽)
증언처럼 전하는 말 “나아졌고 나아질 것”
첫 단독 저서입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출판사에서 ‘기다리던 권김현영의 단독 저서’라는 표현을 써서 마케팅 하는 걸 보고 정말 고마웠어요.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잖아요. 단독 저서라고 뭐가 다르겠나 했는데 혼자 책임져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확실히 더 부담되더라고요.
‘스스로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쓴 책’이라고 하셨는데 읽으면서 저도 응원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단독 저서를 쓰는 일이 무서웠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지 일단 해보자’ 싶었어요. 페미니즘 분야에 한국 여성의 단독 저서가 많지 않거든요. 로컬에서 한국 여성들의 목소리가 나오려면 독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그런 환경이 조금이나마 만들어졌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독자와 응원을 주고받는 환경에서 책이 나오게 된 것 같아서 좋아요.
한 발을 내디딘다는 생각으로 책을 내셨다고 했어요. 페미니즘적 실천과 관련해서도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고요.
어떤 부족함과 실수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늘 모르는 게 있잖아요. 과거에도 실수했고, 지금도 실수하고 앞으로도 실수할 수 있고요. 실수하더라도 더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몰랐던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마음의 무늬를 조금 바꿨으면 좋겠어요. 알고 나서 바뀐 나를 응원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마음이랄까요?
된장녀부터 개똥녀, 강남역 살인 사건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어요. 그간 정말 많은 일을 겪어왔구나 싶더라고요. 왜 진화하는 페미니즘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알 것 같았고요.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 안 좋아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여기서 운동해봐서 아는 데 나아질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20년 전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폭력적이었거든요. 요즘은 비슷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해?’라는 반응이 있잖아요. 확실히 변했어요. 변화의 중앙에 있어서 못 느끼는 것일 뿐 세상은 나아지고 있죠. 이렇게 “지난 20년간 큰 변화가 있었다”고 증언자처럼 말하고 싶었어요.
SNS에 남긴 영화 <82년생 김지영> 리뷰가 인상적이었어요. ‘0점 테러’ 같은 부정적 반응에 주목하기보다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셨더라고요.
그렇게 굴곡 없는 영화가 이렇게 대중적인 반응을 얻기 어렵잖아요. <침묵에 대한 의문>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분노한 여성이 누군가를 죽이는 영화인데 아무도 이해를 못하지만 영화를 본 여성들은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영화죠. <82년생 김지영>도 그런 영화같아요. 이 영화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 다들 알잖아요. 사회적 맥락이 만들어진 거예요. 정말 큰 변화라고 생각했어요.
제목이 선언 같아요. 다짐, 격려, 경고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어떻게 지어졌나요?
페미니즘을 흔히 빨간약에 비유하잖아요. 페미니즘을 안 이후로 예민해져서 모든 게 다 재미가 없어졌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다고 해서 없었던 일로 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느냐? 안 되잖아요. 보이는데 어떡해요. (웃음) 돌아가면 더 고통스럽죠. 알게 된 걸 모르는 척까지 해야 하니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다음’ 뿐이에요. 이중의 고통을 겪느니 돌아가지 않기를 결심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었어요.
세미콜론과 괄호가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정답이 없는 페미니즘을 표현하는 표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의견을 강조할 때 따옴표를 쓰고, 잠정적인 의견을 표현할 때는 세미콜론이나 괄호를 넣잖아요. 이렇게 괄호 안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세미콜론 안에 있기도 한 게 페미니즘이 아닐까 싶어요. 출판사에서 전혀 다른 느낌의 표지 시안을 다섯 개 주셨는데 이 표지가 가장 맘에 들었어요.
행동을 규제하는 표현이 필요하다
서문에서 ‘한남’이라는 용어를 해석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대항발화로써 효과를 얻을 수 없는 말이라고 하셨는데 자세히 듣고 싶어요.
‘한남’이라는 말은 어떤 측면의 규제적 효과도 일으키지 않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말하면 쾌감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백래시가 더 강해지고 그들끼리 연대하게 만들고, 달라지고 싶은 남자들끼리도 편을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표현보다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하는 남자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이와 반대편에 있는 남자들을 도태시키는 말들, 구체적인 행동을 문제 삼는 용어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테면요?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데요. “오빠가~”라고 말하는 남성들 많잖아요. 이런 사람들을 ‘빠가남’이라고 한대요. 그동안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얼마나 이상한지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던 남성들이 ‘빠가남’에는 반응해요. 수업 중에 학생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빠가남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한 남학생이 다시는 “오빠가”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대요. 굉장히 훌륭한 언어적인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바뀌지 않던 남성들이 ‘빠가남’이라는 말 한마디에 행동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싸튀충, 성매수충 같은 말도 마찬가지예요. 문제 행동 자체를 지적하는 말들은 규제적 효과를 발생시켜요.
여성들이 ‘한남’이라는 표현에서 효과를 얻지 못하는 데 반해 남성들은 된장녀, 맘충같이 행동을 규제하는 표현을 많이 만들어 내고 효과를 봤잖아요. 이런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이건 문제 있는 행동이잖아’라고 공유하는 문화가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이다혜 기자님 책을 봤는데 ‘GV 빌런’이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GV에서 이상한 질문을 해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이런 말들이 만들어지면 규제적 효과가 있어요. 어떤 행동을 관찰하고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있어야 이게 가능한데요. 여성들 사이에서 이런 문화가 시작되는 단계에서 한남이라는 너무 큰 표현이 탄생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규제적 효과가 있는 말들이 굉장히 많이 발명됐는데 한남이라는 말에 묻히기도 했고요.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목소리를 낸다는 건 인신공격에 계속 노출된다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인신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공격받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괜찮았다”라고 하셨던데 이제는 공격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잖아요. 요즘은 어떠세요?
정말 흥미로운 게…. 사람들은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말할 때 크게 화를 내지만,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별로 화내지 않아요. (웃음) 그러니까 이건 진짜 권력 문제예요. 이제 저도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생겨서인지 저한테 직접 화를 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냥 걸러질 뿐이죠. 예를 들면 제가 <82년생 김지영>를 봤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고 공격받지 않아요. 어떤 내용에 대해 언쟁하려고 하지도 않고요. 그들도 피곤하거든요.
그럴 것 같아요. (웃음) 언쟁 자체가 굉장히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요.
많은 남성이 페미니즘을 잘못 알고 있어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만 거두면 토론 가능해지거든요. 자신이 아는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만 알면 토론 가능한 상태가 되는데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오해를 풀 생각이 없는 사람과 풀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요?
자기 주변에 있는 여성과 인격적 관계를 맺어 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이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자기 누나든 여자친구든 동료든 여성과 인격적 관계를 맺어본 남성들은 여자를 폭력적으로 소비하거나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만 이야기하면 바뀔 가능성이 있는데 인격적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거나 남성 사회에 너무 익숙하거나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잘 안 바뀌는 것 같아요.
포털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관한 글을 보면서 故 설리 씨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2008년에 쓰인 글을 보면서 2019년에 일어난 일이 오버랩 된다는 사실이 씁쓸하더라고요. 악플 문제로만 축소해서 보는 경향도 있고요.
악플도 문제인데 악플을 쉽게 달게 만든 환경을 이야기해야 해요. 악플 달기 쉬운 환경에 두고 사람들한테 “악플 달지 말라”고만 하면 너무 어렵거든요. 포털에 있는 실시간 검색어, 댓글 없애야죠. 환경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을 너무 오래 방치했어요. 사실 언론사나 기업들이 그걸로 돈을 벌어왔던 거예요. 댓글 뉴스를 통해서 조회수를 올리고, 댓글이 많이 달린 뉴스를 먼저 보게 하면서 적극적으로 악플을 콘텐츠의 일부로 만든 거예요.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보게 만든 거죠. 뉴스를 오염시켰어요. 이런 방식으로 뉴스가 타락하게 만든 포털에도 책임을 물어야 해요.
여자 연예인에게 유독 엄중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있어요.
여자 연예인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걸 이렇게까지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있는 거죠. 여자 팬들이 남자 아이돌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반면 왜 남자 팬들을 여자 아이돌을 보호하지 않는 걸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를 지키는 게 아니라 스타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드는 방식의 여자 아이돌의 팬덤 문화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서로 믿을 수 있게 연예인과 팬과의 관계도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른바 삼촌 팬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지키기 위해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목소리를 낸 여자 연예인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건가 싶어요. 페미니즘에 닿아 있는 어떤 것을 조금이라도 얘기하면 난리가 났잖아요. 다르게 생각하면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자각하고 있는 거고요.
방송 출연을 반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1999년인가 2000년 즈음에 몇 번 방송에 출연했어요. 20대였는데 공격을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모르는 사람이 집에 찾아오고 그랬죠. 이런 경험을 통해 메시지보다 외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는 문화에서 방송 출연이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좋은 매체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출연을 꺼렸죠.
그런데도 최근에 고 설리 씨와 관련한 방송에는 출연하셨어요. 의무감 같은 것 때문이었을까요?
더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미안하기도 했고요. 더 열심히 나서서 지지했어야 했는데… 악플에 시달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설리 씨에게 많이 미안했어요.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걸그룹의 최정점을 찍고 연기자로 이동한 그 시점이 제일 취약한 시기거든요. 유명한데 기획사는 도와주지 않고 혼자 이미지 관리하기 힘들죠. 그런데 그 시기에 설리 씨가 혼자 너무 많은 걸 감당했어요. 그야말로 물어뜯김을 당했을 때 더 열심히 나서서 ‘이런 건 아니지’라고 말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여전히 방송이 싫지만 출연했고요.
오래 전부터 학생들을 만나오셨잖아요. 과거와 지금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요?
외모의 변화죠. 2003~2005년 때만 해도 학생들이 성형수술을 반대했어요. 부모가 주신 소중한 몸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였거든요. 그러다가 2009년, 2010년 되면 아무도 성형수술을 반대하지 않아요. 개인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지금은 탈색 머리가 유행하잖아요? 당시에는 탈색 머리는커녕 긴 머리에 되게 비슷한 형태의 아웃룩이었어요. 2003년부터 몇 년간 이랬죠. 그런데 페미니즘이 부활하면서부터 확실히 학생들의 외모가 다양해지기 시작했어요.
한 걸음 더 내딛기 위해서는
따뜻한 문장도 많았어요. ‘분노로 인해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뿌리가 단단해야 한다’고 했는데 뿌리를 단단하게 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이 사회가 사람들을 너무 쉽게 불안하게 만들잖아요. 이럴 때 필요한 건 하나하나의 실감을 느끼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것, 통제할 수 있는 것, 내 몸을 움직여보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 음악 등을 떠올리고 손에 꼽아보는 거죠. 이런 실감을 느낄 때 불안이 잦아드니까 이걸 느끼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리고 요즘 데이트 폭력도 심하고 묻지 마 폭행 같은 여성 혐오 범죄가 발생하니까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기엔 너무 외롭잖아요. 사랑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사랑을 급진적으로 생각하면 좋겠어요. 연애는 하지 않되 사랑은 포기할 수 없죠.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사랑받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내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불안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사랑이 주어지는 위치가 나한테 오니까 불행할 이유가 없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가가 중요할 뿐이고요. 상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게 지금까지 여성에게 주어진 자리였다면 이제는 다른 자리에서 사랑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내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사람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사랑에 더 가능성을 두고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해요.
사랑을 재발명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네. 재발명이 필요해요. 연애를 일종의 프로젝트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또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확장해 가는 거로 여겼으면 좋겠어요. 내 인생에 타인을 받아들인다는 경험, 이런 기적 같은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죠.
지금 이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논의해야 할 것은 뭘까요?
추상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구체적인 이야기인데요. 페미니즘이 서로의 흠을 찾아내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고 나아짐을 축하하는 방식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가면 결국 한 사람만 이겨요. 제일 올바른 한 사람이요. 그렇지만 나아진 사람으로서 함께 있는 그림을 그리며 나아가면 우리를 연결해 주고 더 강하게 만들죠. 예를 들면 더 많은 여성이 정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완벽한 사람은 없거든요. 그러니 “어떤 면에서 부족하긴 하지만 의미 있어”라고 여기고 밀어주는 문화가 필요해요. 어떤 건 괄호 안에 넣고, 또 다른 건 따옴표 안에 넣어서 강조하기도 하면서요. 그냥 다 묻고 가자는 게 아니에요. 이만큼의 용기를 가지고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남성들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작은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 나아갔다면 응원 받아야 해요. 이렇게 서로 응원하는 길로 가야 함께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응원 받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는 걸 볼 때 뒤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면 나도 나가봐야겠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과거에 쓴 글을 보면 고치고 싶은 욕망이 생기잖아요. 고친 글도 있나요?
문장을 고친 것도 있고 내용을 덧붙인 것도 있어요. 남성성에 관해 쓴 후반부의 글들은 아주 오래전에 쓴 거라 최근의 이야기를 붙여서 수정했어요. 고치고 싶은 게 엄청 많았는데 참느라고 힘들었어요. 글 자체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게 역사이기도 하니까…꾹 참았죠. 어쨌든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요.
벌써 후속작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연구서라고 들었는데 출간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이 책을 내기 전에 휴머니스트에 원고 뭉치를 두 개 드렸어요. 긴 글 모음과 짧은 글 모음이요. 짧은 글 모임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가 되었고 긴 글 모음이 내년 상반기에 나올 연구서예요. 편집자랑 어떤 책을 먼저 낼지 의논하다가 이 책을 먼저 냈죠.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이렇게 싸워봤자 세상이 안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무기력한 사람들한테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일 큰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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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권김현영 저 | 휴머니스트
지난 20여 년 동안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로서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여성과 연대해온 권김현영의 첫 단독 저서. 낯설지만 통렬한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지금-여기를 돌아본다.
최진영
'이야기하면 견딜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