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원저 / 이희재 그림 | 양철북)
누구나 어렸을 때에 한번 읽어본 고전 명작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의 이희재 만화판이 복간되었습니다. 너무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어렴풋하지만 제목이나 오렌지 나무만은 누구나 생생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아이들 마음에 이 책은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이희재의 만화판은 원작 문학보다 더 크게 반향을 일으켰던 책으로 절절한 그림과 개구쟁이 같은 표현이 어우러져 더 많이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그림을 본 어른이라면, 아 이 책! 하고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도 절판된 오래된 책을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하도 빌려봐서 출판사 쪽으로 사서분들이나 선생님들이 새 책으로 만들어주면 안 되는 요청으로 만들어진 도서라 더 이 복간본이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책은 다섯 살의 작은 악마라고 불리는 세상 쾌활해 보이고 말썽쟁이 제제의 크리스마스 소동에서 시작합니다.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거라고 예상하며 구두를 걸어놓았지만 실직자가 된 아빠는 제제에게 아무 선물을 주지 못합니다. 속상한 마음에 아빠에게 볼멘소리를 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구두닦이를 해서 아빠에게 담배를 사다 주는 모습에서 제제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동생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교회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으려고 온갖 고생을 하며 가게 되지만 야속하게도 선물창고는 모두 비워진 상태입니다. 눈물을 터뜨리는 막내를 업고 돌아오는 길 아기 예수님은 왜 제제를 좋아하지 않는지 눈물을 펑펑 흘립니다.
제제는 현실 속의 부족함을 상상으로 채워갑니다. 마을 사람들은 장난꾸러기라고 치부하지만 제제는 동생 루이스를 위해 현실 속 가지지 못한 것들을 상상력으로 만들어줍니다. 동물원, 영화관, 제제의 상상 속에서 막내는 행복을 느낍니다.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제제이지만 단 한 가지 제제의 것이 있었으니 제제를 닮은 작은 오렌지 나무였습니다. 커다란 나무를 갖고 싶었지만 항상 찌꺼기만 가지는 거 같아 슬펐던 제제에게 오렌지나무는 말을 걸어옵니다. 그때부터 오렌지나무는 제제의 슬픔을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가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슬픈 마음을 토로하던 제제에게 뽀르뚜까라는 아저씨가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제제를 다른 사람들처럼 장난만 치는 못된 아이라고 오해하지만, 곧 거친 제제의 마음속 순수함과 감춰두었던 폭행의 상처들을 알아주는 유일한 어른입니다. 나이 차를 뛰어넘어 아저씨는 제제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꿈과 고민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들어줍니다. 제제는 뽀르뚜까를 통해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또 오해로 비롯되어 가족들에게 엄청나게 매질을 당하게 되고 기차에 뛰어들어 죽을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제제를 겨우 말린 뽀르뚜까 아저씨는 혹시 다시 기차에 뛰어들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 매일 밤 기찻길 앞을 지키게 됩니다.
이 둘을 기다리는 건 어떤 결말이었는지 기억나시나요? 어린 시절 제제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책은 성인이 된 후에 보면 놓쳤던 많은 부분들이 보입니다. 제제의 귀여움이나 천진난만함, 그에 대비되는 너무도 어린 아이에게 주어졌던 가혹한 현실 속 진정한 어른으로써 행동해야 하는 우리의 자세 같은 것 말입니다. 책이 끝날 때쯤 흐르는 눈물은 모두 각자 다른 몫으로 간직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심코 스쳐 흘려들었던 글귀가 떠오릅니다.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는 바르게 자란다는 말. 어른이 된 나는 어떤 오렌지나무를 기르고 있었는지,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었던 누군가를 떠올려보는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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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J.M. 바스콘셀로스 원저/이희재 그림 | 양철북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대화,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만화라는 표현 수단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도, 현실 위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면서 깊은 공감과 울림을 남긴다. 단순히 원작의 스토리를 재현하는 만화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흡인력과 힘이 있다.
김수연 (어린이 MD)
누군가를 웃길 때가 가장 행복하다. 세상에서 초콜렛이 가장 맛있는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