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언론인 게리 타우브스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에 걸쳐 영양과 대사에 관한 3부작을 발표했다. 2010년 출간된 이 책 『왜 우리는 살찌는가』 는 2007년의 『굿 칼로리, 배드 칼로리』와 2016년의 『설탕을 고발한다』 사이에 발표된 두 번째 저작이다. 저자가 지적하듯 소위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유행한 적 있다. 그중 미국에서 최근에 폭발적으로 불어닥친 열풍의 도화선이 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자면 저탄고지 식단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의 번역 출간을 먼저 제안한 데는 이유가 있다. 비만과 건강에 대해 생각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대부분 얼버무리고 마는 주제들을 한 가지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기 때문이다. 저탄고지 식단을 시도해보고 싶지만, 그전에 먼저 이론적으로 알아보고 마음을 정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반대로 저탄고지 식단의 논리를 이해하고 과학적으로 반박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저자가 얼마나 성실하게 중요한 주제들을 탐구하고 추적했는지는 차례만 읽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적게 먹으면 살이 빠질까?”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질까?” “왜 어떤 사람은 살이 찌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을까?” “다이어트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이유” “고기냐 채소냐” 등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한 가지 대답밖에 들을 수 없었던 문제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단 한 가지 대답밖에 들을 수 없다”고 했는데, 그 한 가지 대답은 무엇일까? 체중은 들어온 칼로리와 나간 칼로리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므로, 살이 찌는 이유는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살을 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꾸로 하면 된다.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이다. 너무나 명쾌하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체중을 조절하기가 왜 그리 힘든가? 설사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기 때문에 살이 찌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비만이 점점 더 유행하는 추세를 막을 수 없다면 뭔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저자가 지적하듯, 의료계와 과학계에서 들어온 칼로리와 나간 칼로리 이론의 위력은 막강하다. 이 이론에 의문을 제기할라치면 황당하다는 반응이 돌아오거나 사이비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타우브스는 여기에 과감히 반기를 들고 나선다.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식이 비만의 원인이라기보다 비만이라는 상태가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과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키든 몸무게든, 근육이든 지방이든,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모든 것은 과식을 유발한다”는 전복적인 생각의 연원은, 결국 비만이 생물학적 현상이며, 생물은 호르몬이라는 신호전달물질을 통해 내부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절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이쯤 되면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유사과학의 궤변에 말려드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아찔할 정도로 많은 예를 들어 시각을 조금 바꾸어볼 것을 제안한다. 우선 많이 먹고 몸을 움직이지 않아 비만이 된다는 논리가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비만은 항상 빈곤, 즉 칼로리 부족과 과도한 육체 노동에 시달린 계층에 만연했다는 증거를 풍부하게 제시한다(많기도 하다). 그 뒤로 적게 먹는 것과 운동량을 늘리는 것이 체중 조절에 큰 효과가 없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예와 연구가 줄줄이 이어진다. 그리고 동물이든 인간이든 생물은 섭취한 칼로리를 수동적으로 소모하거나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소모와 저장을 능동적으로 결정하며, 저장하는 경우에도 특정 부위에 “구획화”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유전자와 호르몬이다.
비만에 관한 연구와 해결책이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며 오래도록 엉뚱한 곳을 헤맨 것이 사실이라면, 진정한 해결책은 어디에 있는가? 저자의 주장대로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유전과 호르몬의 절대적인 영향에 있다면, 비만의 문제에서 가장 중심적인 호르몬은 바로 인슐린이다. 그리고 인슐린은 탄수화물 섭취와 절대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결국 탄수화물을 조절해야 체중을 조절할 수 있다. 책의 2부는 인슐린과 지방세포의 조절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고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것이 체중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역시 풍부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결국 저자는 “저탄고지” 식단이 비만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왜 역자는 이 책의 많은 부분에 동의하면서도 저탄고지 식단에 찬성하지 않을까? 우선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저탄고지에서 중요한 것은 “저탄低炭”, 즉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이다. “고지高脂”는 탄수화물을 줄인 식단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결국 단백질과 지방이 남는다. 하지만 고단백 식단을 계속한다는 것은 대사적으로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지방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식단을 섭취하게 될까? 탄수화물인 밥, 빵, 국수, 과일을 피하고 기름진 고기를 끼니마다 먹어야 한다. 하루이틀이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도 비만으로 건강이 위험에 처한 정도라면 치료식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약간 살이 찐 정도라서 체중을 건강한 상태로 조절하고 싶은 보통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인가?
보다 시야를 넓혀본다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우리는 살을 빼기 위해 사는 것인가? 어디선가 어린이의 비만에 관해 이렇게 쓴 일이 있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는 영양 섭취란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에게는 음식의 맛과 색깔을 보고, 질감을 느끼고, 조리 과정에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음식을 생산한 분들과 장만한 부모님의 노고를 느끼고, 식탁 예절을 지키고, 적당한 선에서 그만 먹는 절제를 배우는 과정이 모두 삶의 공부입니다. 뭐든 다양해야 하고,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삶을 배웁니다.” 다양성과 절제란 덕목은 비단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며, 비단 먹는 일에만 국한된 말도 아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살을 빼기 위해서 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진지한 과학의 차원에서 비만과 건강의 문제를 탐구해보려는 저자의 의도와 달리 현재 저탄고지 식단이 온갖 사이비에게 남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가 일반화되면서 인류의 지성이 성숙해질 전기를 맞았다는 희망도 잠시, 가짜 뉴스 가짜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의학 분야의 가짜 정보는 몇 가지 전형적인 전략을 구사하는데, 가장 흔한 것이 기존 의학계와 제약산업의 상업성과 부도덕함을 공격하고 그 한계를 지적하면서 대척점에 서 있는 자신들의 말이 옳다고 우기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백신반대론인데, 이로 인해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기피하면서 급기야 2018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천만 명이 홍역에 걸려 14만 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희한하게도 이런 사이비들이 하나같이 신봉하는 것이 바로 저탄고지 식단이다. 결국 저탄고지라는 용어는 과학적으로 제대로 궁리해보기도 전에 오염되어버린 셈이다. 현재 의학계의 정설은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비만 환자에서 6개월 내지 1년 정도의 단기간에 걸쳐 저탄고지 식단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이며 장기적인 효과나 부작용은 검증된 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의 미덕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은 칼로리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며, 비만이 건강 차원을 넘어 사회적 낙인이 된 과정을 고찰하고, 생명체인 인간의 대사와 영양, 유전과 호르몬의 관계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진실에 이르는 길은 맥락을 이해하고 사실을 철저히 검증하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역사를 알고 과학적 방법론을 응용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다. 이 책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
-
왜 우리는 살찌는가게리 타우브스 저/강병철 역 | 알마
칼로리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며, 비만이 건강 차원을 넘어 사회적 낙인이 된 과정을 고찰하고, 생명체인 인간의 대사와 영양, 유전과 호르몬의 관계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진실에 이르는 길은 맥락을 이해하고 사실을 철저히 검증하는 데 있다.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