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저속 노화에 관심 있다면
여느 때보다 ‘나이 듦’을 많이 이야기하는 요즘, 최혜미 한의사가 추천하는 노화에 관한 책 4권.
글ㆍ사진 최혜미
202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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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쩍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진료가 끝난 후에도 남아서 일하다 서둘러 퇴근하는 길, 길고양이들만이 어슬렁거리는 아파트 단지를 통과해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보면 졸음이 쏟아집니다. 문득 고개를 돌리다 복도의 거울에 비친 푸석푸석한 중년의 여인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아니 저기 나이 든 여자는 대체 누구람! 


‘나이 듦’이라는 키워드가 그 어느 때보다 화두입니다.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되는 사회, 늘어나는 노인 인구, 범람하는 노인성 질환과 같은 키워드가 먼저 떠오르는 것도 당연합니다만, 지금 시대의 노화는 사회적인 이슈이기보다 개개인에게 직접 가 닿는 실물의 공포에 가깝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로, 스트레스, 커피와 자극적인 음식과 쇼츠와 도파민으로 점철된 날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과로와 만성피로, 수면 부족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대로서 우리가 부모님 세대보다 더 빠르게 노화를 경험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언이 도무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정희원 저 | 더퀘스트

 

저속노화라는 개념을 유행시킨 서울 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 교수는 저서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를 통해 마치 트루먼쇼를 보듯 제 모습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단기간에는 일의 효율을 높여주지만 과잉 축적되면 수면의 질은 떨어지고 건강한 뇌의 휴식 활동은 줄어든다, 장기적으로 집중력, 판단력 등 인지기능이 낮아지니 더 긴 시간을 앉아서 일하는데도 업무의 성과는 떨어진다, 그 결과 또다시 더 늦게까지 일을 하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줄인다.’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정확히 요즘의 저와 같거든요. 노화가 60대, 70대의 화제가 아니라 30대, 40대에게 현실 타임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정확히 말해주는 책입니다. 그 후로 이 책을 마저 읽어 나가는 저의 심정은 거의 종교적인 구원을 찾는 절박함에 가깝습니다. 저와 같이 느끼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아마도 이 책이 그렇게나 베스트셀러인 거겠지요.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기를 권하다』

마리아네 코흐 저/서유리 역 | 동양북스(동양books)

 

마리아네 코흐 의학박사는 저서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기를 권하다』에서 자존감과 삶을 신뢰하는 긍정적인 태도야말로 노화 방지의 핵심이라 말합니다. 정신신체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을 기반으로 나이 듦을 대하는 태도가 실제로 노화의 속도와 정도를 결정한다는 것을 다양한 연구와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것, 삶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나의 능력과 욕구를 알며 나와 남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확실하게 늙음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이 몸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을 들여다본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우리 시대의 노화가 더 이상 세포와 동물실험, 항산화나 안티에이징에 머물지 않고 마음의 영역으로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 아흔이 넘어서도 의사, 작가 그리고 기자로 왕성하게 활약했던 저자의 목소리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착각』

베카 레비 저/김효정 역 | 한빛비즈

 

한편 『나이가 든다는 착각』을 쓴 저자 베카 레비는 노화의 속도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주장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노화라는 이름의 고정관념’에 대해 폭로합니다. 노화심리학자로서 고정관념에 대해 연구해 온 저자는 연령 인식이 과학적 사실보다 문화적 편견의 산물임을 지적하고 나이 듦에 대해 우리가 가진 편견을 하나하나 깨부수며 나아갑니다. 뇌가 노화에 따라 퇴화한다? 거짓! 기억력은 나이가 들수록 나빠진다? 거짓, 나이 든 뇌는 재생되지 않는다, 거짓!

 

실제로 뇌의 가소성(뇌가 유연성을 유지하고 새로운 신경 연결을 형성하는 능력)은 나이가 들어도 진행된다는 연구가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순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오랜 고정관념에 불과하며 노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생리적, 인지적 문제 역시 사회가 주입한 연령 인식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이지만 생물학을 뛰어넘는 존재이고 연령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항노화라고 말합니다. 나이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실제로 문제는 노화가 아니라 연령 차별과 부정적인 연령인식에 있다는 지적은 묵직하게 와닿는 명제입니다. 

 


『적당히 잊어버려도 좋은 나이입니다』

가마타 미노루 저/지소연 역 | 더퀘스트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책 『적당히 잊어버려도 좋은 나이입니다』는 이미 가속노화를 경험한 저를 토닥토닥 다독여 준 책입니다. 도쿄 의대의 노년대과 의사인 가마타 미노루는 나이 들수록 잘 잊는 것의 순기능에 대해 말합니다. 치매를 두려워하지 않는 노인은 없을 만큼 잊는다는 것은 나이 듦의 부정적인 그림자처럼 여겨져 왔지만 저자는 ‘나는 누구, 지금은 언제, 여기는 어디’만 제대로 알면 나머지는 잊어버려도 어떻게든 된다’고 유쾌하게 선언합니다. 

 

본래 사람이 뇌는 잊도록 만들어졌으며 잊어도 상관없는 일을 잊는 것은 오히려 기억이라는 기능의 중요한 요소인 셈이라는 겁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많은 과정에 의외로 잊는 힘이 바탕이 된다고 말합니다. 가볍고 작은 책은 활자가 크고 빽빽하지 않아서 좋은데, 목차만 펴서 읽어도 어쩐지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낡은 건강상식을 잊고, 부정적인 감정 따위를 잊고, 애쓰려는 집착을 잊고, 세상이 말하는 정답을 잊으면 인생의 군살을 덜어내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노화와 나이 듦이 두려워진 사람이라면 우선 이 책을 한 번쯤 펼쳐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길고 노화는 천천히 스며드는 계절과도 같습니다. 어쩌면 아주 오래, 인류의 역사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오래 그 계절을 살아 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과도 같지요. 분명한 건 이 주제와 우리의 거리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단 저는 이 마감을 끝내고 나면 야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저속노화 교수님이 잠이 부족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하셨거든요. 믿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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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al0321

2025.01.21

방문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애쓰는 작가님이 정작 야근으로 본인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쓰럽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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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_

2025.01.19

알고 있지만 쉽지 않은 저속 노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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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kxkgksp

2025.01.19

버스안에서🚌 흥미롭게 잘 보았음 추천 도서 잘 읽어보겠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ㄱㅅㄱ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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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미

한의사. 달과궁한의원 대표 원장.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졸업 후 〈더블유코리아〉 창간 멤버로 입사해 패션 에디터로 일했다. 자신을 비롯한 주변 여성들이 겪는 몸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에디터 4년 차에 한의학도의 꿈을 안고 퇴사, 같은 해에 한의과 대학에 진학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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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카 레비

노화심리학자. 예일대학교 공중보건 및 심리학과 교수이자 예일대 글로벌 보건 연구소 부교수이다. 저자는 대학 졸업 직후 정신병원 노인 병동에서 일하면서 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곳에서 환자의 경과를 기록하는 일에 매료되어 노인 환자들과 대화를 나눴고, 그들이 받는 치료, 가족에 대한 감정 등 배후 사정을 꼼꼼히 알아가는 일에 몰두한다. 나아가 우리의 정신건강이 개인의 신체 상태 외에도 우리가 속한 문화 집단의 배경, 인간관계 등 다양하고 미묘한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노인의 뇌가 청년의 뇌 못지않은 회복력을 지녔다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그 후 독자적인 이론을 수립하면서 ‘연령 인식’이라는 사회 심리학적 요소가 우리의 신체 노화라는 생물학적 요소와 주고받는 영향을 연구하게 되었고 이 분야를 선도하는 노화심리학자로 성장한다. 이 책은 노화에 대한 우리 사회·문화의 집단적 고정관념이 가진 강력한 힘에 주목한 저자가 20여 년간 집대성한 연구의 흥미로운 결과물과 개인적인 경험담, 나아가 연령차별에 대한 제언을 담았다. 또한 과학계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노화하는 뇌’에 대한 새로운 생물학적 발견을 넘어, 생물학을 뛰어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노화 현상에 주목한다. 나아가 사회 심리학의 맥락에서 우리가 노화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하버드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의과 대학 및 사회 의학부에서 국립 노화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미국 상원에서 연령차별의 영향에 대해 초청 연설을 한 바 있으며, 미국 심리학 협회의 연구 업적상, 미국 노인학회에서 수여하는 리처드 칼리시 혁신 출판상 등을 수상했고 〈노화 심리학 핸드북〉의 부편집장, 〈노인학 저널〉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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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네 코흐

어릴 적부터 의사를 꿈꿔 의대에 진학했으나 영화 출연 제안을 받게 되면서 인생의 경로가 바뀌었다. 독일 영화계를 넘어 할리우드까지 진출해 ‘황야의 무법자’ 같은 유수의 작품에 주연으로 참여했고, 약 70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러나 마흔이 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배우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오랜 꿈인 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으로 돌아갔다. 다시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했으나 국가고시를 통과하며 배움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음을 증명해냈다. 그 후 내과 의사로 환자와의 대화를 중시하는 진료를 오랫동안 해왔다. 92세인 지금도 작가이자 의학 전문 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바이에른 2 방송국에서 매주 라디오 방송 ‘건강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대중에게 올바른 건강 정보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차례 수상했고, 2019년에는 독일 연방 의사 협회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상인 파라셀수스 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자신이 소개하는 건강 상식을 매일매일 실천에 옮기고 있는 마리아네 코흐 박사는, 우리 스스로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몸소 보여주는 최고의 본보기라 할 만하다. 저서로는 『신체지능Korperintelligenz』, 『우리의 놀라운 면역체계Unser erstaunliches Immunsystem』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