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짜장면을 이해해서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G. 문보영 시인)
예술에 빠져있을 때는 시를 잘 쓰고 싶으니까 시에 전념하고 그래서 일상을 못 살고, 그런데 시마저 없어졌을 때는 완벽해서 무반응인이 돼서 살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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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최선을 다해 번아웃되지 않고 최선 직전에서 어슬렁거리며 간 보기. 준 최선으로 비벼 보기. 멀리 봤을 때, 최선보다 준최선이 가성비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최선은 관성을 깨는 행위이기 때문에 관성이나 습관이 될 수 없지만, 준최선은 관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준최선이 근육에 배면 어떤 일을 해도 디폴트 값으로 준최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선과 한 집에 살면 삶이 고달파지므로, 옆집이나 이웃 정도로 거리 유지를 하고 달걀 꿀 때만 최선이네 집에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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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문보영 시인 편>


오늘 모신 분은 ‘일상을 잘 살아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시인입니다. 글을 쓰고, 춤을 추고, 일기를 쓰면서 평범한 하루를 잘 살아내고 계신 분이에요. 그 이야기를 담아 일기를 우편으로 보내고, 유튜브 채널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를 운영하고, 1인 문예지 <오만 가지 문보영>을 발행하고 계시죠. 이번에는 “무너진 일상을 복구하면서 쓴 일기들”을 모은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으로 독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문보영 시인님입니다.

 

김하나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문보영 :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문보영입니다.


김하나 : 유튜버이기도 하시죠. 힙합퍼이기도 하시고요.


문보영 : 네(웃음).


김하나 : 아주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시고, 본인 스스로는 ‘활동’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문보영 : 네, 맞아요.


김하나 : 처음에 브이로그를 시작하시게 된 게 무너진 일상을 복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신 걸 읽었어요. 브이로그라고 하는 것은 남한테 보여지는 거잖아요. 내 일상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인데, 여러 가지 방편들 중에 브이로그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문보영 : 브이로그를 하면 일상을 보여준다는 약속을 하는 거잖아요. 약간 숙제를 한다는 기분으로 시작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는 밥을 먹는 것도 힘들고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었거든요. 보여주기로 약속하면 어떻게든 밥을 먹게 되고, 편집하면서 그걸 볼 때 ‘내가 잘 먹고 있네’라고 나한테 확인시켜주고, 그런 반복된 활동으로 일상을 복구시켰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리고 팔로워들이 있고 조회수가 높아지면 사람들이 기다릴 수도 있고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니까 ‘내가 밥을 잘 먹어야겠다’라는 생각도 들고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겠네요.


문보영 : 맞아요. 그런데 팔로워 수가 아주 점진적으로 늘어서 아직까지 그런 부담은 많지는 않고요(웃음). 취미에 가까운 것 같아요.

 

김하나 : 브이로그를 시작하시기 전에 일상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시가 떠나고 나면 나한테는 무너진 일상만이 남아있더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시가 나한테 와 있는 동안에는, 일상이 무너진 것보다 시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거네요?


문보영 :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시가 가장 중요했다가 제가 잠깐 아팠을 때 그리고 다시 시로 돌아왔을 때, 둘 다 지금도 시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중요함이라는 부담이 예전에는 저를 아프게 했다면 지금은 아프게는 안 하는 느낌인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렇군요. 『준최선의 롱런』 에 나와 있던가요, 맨 처음에 쓴 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썼던 시였다고 하셨잖아요. 숙제 같은 거라서 쓰셨나요, 아니면 그냥 써보신 거였어요?


문보영 : 숙제여서 썼던 거였어요. 그때 한 편 쓰고 다시는 안 쓰고 대학생이 돼서 시를 알게 됐어요.


김하나 : 그 계기는 뭐였어요?


문보영 : 그때는 제가 교육학과 학생이니까 선생님이 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우연히 국어교육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님이 시인이셨어요. 그런데 그 분이 이해가 안 되는 말을 계속 내뱉으시는데 한편으로는 뭔가 다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 분이 소설 수업을 하셨는데 저도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니 자신은 시인이라고 밝히시면서 문예지 한 권을 던져주셨어요. 펼쳐 보니 더 이상한 사람이 많은 거예요(웃음). 더 아름답고. 그때 ‘이런 게 있네’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내가 세상과 덜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런 말씀을 하셨었죠. ‘설명하기에 되게 지치는데,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것의 쾌감이 있다.’ 또 그런 표현도 있었죠. ‘시는 인과관계가 얼토당토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게 이전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인과관계를 드러내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 말들이 너무 좋더라고요. 저희끼리는 찰진 말들을 ‘찰언’이라고 하는데, 시에 대한 찰언을 많이 하셨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왔던 표현이었는데 ‘시인님, 시가 너무 어려워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는 질문에 ‘짜장면을 이해해서 짜장면을 좋아하십니까, 짜장면이 맛있어서 좋아하십니까?’ 이렇게 대답을 하셨는데요. ‘찰언 제조기’이기도 하신 것 같아요(웃음).


문보영 : 감사합니다(웃음).

 

김하나 : 작년에 두 권의 책이 같이 나왔죠. 『준최선의 롱런』 은 11월에 나왔고, 5월에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이 나왔는데요. 제가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은 진짜 큭큭 대면서 읽었거든요. 이 책은 불안정한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가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덜컹거리는 데에서 오는 웃긴 포인트가 있잖아요. 이어서 나온 『준최선의 롱런』 같은 경우에는, 그 사이에 쓰인 시기의 차이도 있겠거니와,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문보영 : 네, 많이 바뀌었어요.


김하나 : 어떤 부분은 정리가 됐고, 어떤 부분은 춤과 브이로그와 매일의 일상을 구축함으로 인해서 단단함이 생긴 것 같고요. 두 권의 책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문보영 : 별 일은 없었는데요. 첫 번째 산문집이 나오고 나서 ‘되게 웃기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는 그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어떤 글을 썼을 때 누가 큭큭 대면서 읽었다고 할 때 가장 쾌감이 크거든요. 글을 처음 쓰게 됐을 때도 그게 좋아서 썼고, 좋아하는 작가들도 그런데요. 어떤 면에서는 내가 너무 유머에 의존했나 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슬픈 이야기를 가볍게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또 제가 어느 정도 차분해지면서 누군가를 웃기려는 욕망이 잠깐 줄어들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김하나 : 다른 인터뷰를 읽어 보면, 시를 쓸 때는 어깨에 힘을 주고 최선을 다해서 쓴다고 말씀하셨죠. 시는 참 ‘별 거’이겠네요. ‘그게 별 거야?’라고 이야기할 때의.


문보영 : 그게 매일 바뀌기는 하는데요. 어제 고흐에 관한 영화를 봤어요. 거기에 고흐와 고갱이 싸우는 부분이 나오는데, 싸우는 이유 중에 하나가, 고흐가 엄청 성급하게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붓질도 과하게 하고 물감도 덕지덕지 칠하고. 그런데 그 영화에서 고갱은 되게 천천히 차분하게 그림을 그리더라고요. 그래서 둘 사이에 속도에 대한 의견 대립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고흐는 정말 최선을 다하는 거고 고갱은 준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웃음). 다 보고 나니까 ‘최선은 둘 다 다하고 있고 혹은 준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지만, 그냥 스타일이 다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제가 시를 쓸 때 남들보다 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전혀 아니고, 제가 시를 엄청 빨리 쓰거든요. 한 편을 쓸 때 앉은 자리에서 쑥 써야 성이 차요. 어떤 분들은 천천히 한 땀 한 땀 쓰기도 하잖아요. 그게 최선을 다 하고 안 하고의 차이보다는 스타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시인님이 시를 쓸 때 아주 빠르게 시 한 편을 써내려가는 찰나의 집중력이든 뭔가에 탁 가닿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상을 넣어버린 걸 수도 있잖아요. 그럼으로 인해서 일상이 무너졌는데, 지금은 시와 시인님이 ‘잘 지내보자, 우리 롱런을 해보자’ 하고 거리를 맞춰가고 있는 때이기도 한 것 같아요.


문보영 : 네, 지금은 안 쓰니까 거리라고 할 게 없기는 한데요(웃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특정한 개인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트라우마가 생기면서 우울증이 온 케이스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일상이 무너졌다가 조금씩 여러 가지를 하면서 치유가 되는 계기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어떤 친구랑 식당에 갔는데 국에서 머리카락이 나온 거예요. 친구가 되게 불쾌해했는데 저는 ‘그게 불쾌할 수 있단 말이야?’ 하고 놀랐어요. 놀라는 저한테 놀랐던 거예요. 그때 제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모든 것에 반응을 못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했고요. 예술에 빠져있을 때는 시를 잘 쓰고 싶으니까 시에 전념하고 그래서 일상을 못 살고, 그런데 시마저 없어졌을 때는 완벽해서 무반응인이 돼서 살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렇군요.


문보영 : 그래서 일상을 조금씩 살아내면서, 그 글이 『준최선의 롱런』 에 담겨서 조금은 건강하고 차분해진 느낌의 책이 나온 것 아닐까 생각돼요.

 

김하나 : 『준최선의 롱런』 이라는 제목이 볼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삶의 방식 자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고 ‘준최선’이라는 말 자체가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문보영 : 어떤 기자 분은 ‘준최선의 홈런’이라고 잘못 기억하고 계시기는 한데(웃음), 그것도 너무 좋고요. 뭐든 ‘준’을 붙이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너 누구 좋아하지? 사랑하고 있지?’ 할 때도 ‘준사랑하고 있지’라고...


김하나 : ‘나는 준시인이야’(웃음). 너무 편하네요.


문보영 : 네, 되게 편해져요(웃음). 뭔가 유감이라고 말할 때도 ‘준유감이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뭔가 발을 빼면서 하지만 거기에 발은 담그고 있고, 되게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만 뭔가는 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웃음).


김하나 : 그게 더 재밌어지는 건 ‘최선’에 ‘준’을 붙였기 때문이죠. ‘준최선’이 대충 하는 건 아니잖아요. 차선도 아니고, 차선보다 높은 데 있는 것 같거든요. 되게 묘한 단어네요. 이야기를 해볼수록.

 


 

 

준최선의 롱런문보영 저 | 비사이드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삶은 ‘무의미의 축제’라 생각하고 최선과 준최선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좋다.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아닌 오직 ‘오늘의 나’를 위해 숨 고르고 ‘롱런할 준비’를 하는 사람이 더 끈질기고 오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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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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