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젯>의 한 장면
1998년은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많은 국민이 고통을 받던 해였다. 직장을 잃고 빚에 몰린 가장이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안 그래도 먹고살기 힘든 시절, 남편이, 아빠가 부재한 가정은 가족 잃은 충격까지 이중고를 겪었다. 아예 일가족이 함께 세상을 등진 가정도 있었다. 그해 10월에는 이상한 일도 있었다. 어느 집에서 아이가 사라지자 무당이 굿을 했고 장롱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무당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로부터 20년이 넘었다. 상원(하정우)은 딸 이나(허율)와 한적한 교외의 집으로 이사한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이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다. 상원도 아내의 죽음 이후 공황장애에 빠질 때가 있다. 그보다 더 힘든 건 이나와의 관계다. 현장에 나가야 할 일이 많은 건축업에 매달리다 보니 딸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아 사이가 어긋났다. 건강을 회복하겠다고 새로 얻은 집에서도 상원은 서재에, 이나는 자기 방에서 서로를 등지고 있다.
간신히 아이를 돌봐줄 보모를 구한 상원이 건축 현장에 나간 사이 이나가 사라진다. 상원의 공황장애 증세를 두고 혹시 아빠가 벌인 일 아니냐며 언론 보도도 잇따른다. 도대체 이나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의문의 남자 경훈(김남길)이 상원을 찾아온다. 퇴마사라고 정체를 밝힌 경훈은 지난 10년간 벽장으로 사라진 아이들이 많다며 이나 역시 그중 한 명이라고 말한다.
<클로젯> 은 이나의 실종을 이야기 전개의 발화점 삼은 영화다. 이나를 데려간 벽장(closet)에 갇힌 아이’들’이 무시무시한 존재로 등장해 물으려는 건 자신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어른의 책임이다. 극 중 벽장 혹은 장롱과 같은 클로젯을 경계로 현실과 무의식의 세계로 나뉘는 설정은 <인시디어스> 시리즈의 영향이 강해 장르의 독창성은 떨어진다. 그렇더라도 1998년 이후 한국 사회에 트라우마를 남긴 두 개의 사건을 연결하여 아이들에 주목한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다.
IMF 외환위기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가정이 도미노로 무너진 의식의 지진이었다. 정부가 나라의 곳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가로 기업들이 무너졌고 평생직장 삼았던 회사가 문을 닫자 가장은 존재 가치를 잃었다. 가장이 힘을 잃자 가정도 풍비박산 났다. 언론에 비친 당시 한국의 위기는 그랬다. 가부장을 걱정하고 동정했다. 그러는 동안 무관심의 한 데로 몰린 아이들이 받았을 충격도 덜 하지 않았다. 엄마 또한 가부장에 희생당하면서 아이들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방황하거나 방치되거나, 아이들은 갇힌 존재였다!
현장에 나가지 않으면 건축가로서 위상이 떨어지는 상원은 곁에 있고 싶다는 이나의 호소에도 “아빠 좀 이해해줘” 가정보다 일이, 자식 돌보기보다 자신의 위상이 우선인 가부장의 한계를 말 한마디로 노출한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슬픔에 더해, 부모 역할을 해줘야 할 아빠의 보호 부재까지, 이나는 어둠에 갇힌 채 고통을 속으로 감내해야 한다. 이나가 처한 상황에서 ‘거기 가만히 있으라’가 생각나는 건 말로는 자식 먼저, 아이 안전이 우선을 얘기하면서 그러지 않은, 그러지 못했던 후폭풍의 ‘세월’을 지금도 고통스럽게 목격하고,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어서다.
이나의 실종은 상원이 자신이 담당한 건축 개발 현장에 나갔을 때다. 그의 배경에서 아이들의 희생으로 과실을 따 먹는 존재가 개발과 발전만이 이 나라의 미래라고 부르짖는 천민 자본주의자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세월호 침몰 사고까지, 사태 발생의 성격은 달라도 개발을 앞세워 그들만의 나라 발전을 부르짖는 악귀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클로젯’에 가두고 배를 불리고 있는 현실이다. 잔인한 현실을 바로 잡는 것, 아이들에 관심 두고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것이 절실하면서 우선 필요한 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 일부터가 아닐까.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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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