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미드나잇 : 앤틀러스> 가 2월 11일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개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제르바이잔 출신 작가 엘친의 희곡 ‘Citizen of Hell’을 바탕으로 영국에서 창작된 이 작품은 지난 201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는데요. 지난 시즌에는 액터뮤지션이 투입된 영국 오리지널 버전으로 공연됐고, 이번에는 다시 초연 버전으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비지터’죠. 12월 31일 자정 직전, 소련 시절 공포정치와 대숙청의 중심에 있던 비밀경찰 엔카베데의 모습으로 한 부부를 찾아온 인물인데요. 이번 시즌 새롭게 비지터를 맡은 배우 박은석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미드나잇> 초연을 봤어요. (정)원영이, (백)형훈이, 김리 배우 모두 인연이 있어서 보러 갔었죠. 재밌게 봤어요.
저도 초연을 봤는데, 재밌는 요소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친절한 작품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원영이 때문에 재밌게 봤나(웃음)?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라서 스토리 라인이 쉽지는 않죠. 저도 몰라서 연출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고, 인터넷을 통해 자료도 검색하고 영상도 찾아봤어요. 이번에 대본이 좀 추가된 부분도 있고, 배우들이 정확하게 연기를 해줘야 관객들한테도 재미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각 인물의 입장이 있는데, 지금을 살아가는 저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으로만 연기하다 보면 너무 단순해질 수 있거든요.
비지터의 역할이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상징적인 인물이라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벗어나 있는 인물이죠. 진짜 엔카베데는 아니고, 악마 같은 존재랄까. 그런 사회에서 선택에 따라 사람들을 파멸시키니까요. 전지적인 입장이라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지만 잘못하면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춤도 추는데, 아트원씨어터 무대가 박은석 씨에게는 좁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제가 좀 크죠. 춤은 정말 오랜만인데 어려워요. 안무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필요한데, 저는 더 많이 필요하거든요. 운동(검도)선수 출신이라 몸으로 하는 건 빨리 익힌다고 생각하는데, 춤은 좀 다르더라고요. 연기하면서 노래하고 춤까지 추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비지터 역에 고상호 씨와 함께 유리아 씨도 캐스팅됐습니다. 여성 비지터는 특별한 차이가 있나요?
큰 차이는 없어요. 의상은 조금 다르겠지만 대사 등은 똑같고요. 비지터는 ‘젠더 프리’도 문제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남녀의 차이라기보다는 리아가 보여주는 매력이 다르겠죠. 제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하는데, 리아가 연기하는 걸 보면 영화 ‘킬 빌’에 나오는 악역 배우가 생각나더라고요.
<페스트> 초연을 앞두고 2016년 6월에 인터뷰했던 기억이 있는데, 당시에는 주로 대극장 공연을 했잖아요. 이렇게 대학로에서 뵙는 것도 좀 색다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업하다 보니 그 사이 소극장 작품도 많이 했어요. 작은 무대에서는 누군가 한 명이 무너지면 전체적으로 무너질 수 있으니까 서로 응원하면서 장면을 쫀쫀하게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고, 사람들과 더 깊게 소통하면서 찾아가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대극장 공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서로 노력하는 부분이 다르다고 할까요. 많은 사람과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재밌지만, 작은 공간에서 만들어가는 재미도 좋은 것 같아요.
인터뷰로 짧게 만나는 거지만 예전보다 분위기도 좀 더 편해진 것 같아요.
가치관이 달라진 부분이 있어요. 그때는 배우로서 인터뷰를 할 때도 잘 말해야 하고 보이는 것에 신경을 더 썼다면 지금은 제 자신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까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배우인지, 나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는 사람 관계나 배우로서 관객의 평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면에 너무 치중했던 것 같아요. 부정적인 부분만 취합해서 고치려고,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고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웃음). 지금은 나대로 그냥 살자! 그래서 요즘은 작품 선택할 때도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해요. 과거에 열정이 앞서서 무턱대고 작업했던 시간이 있었고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죠.
그럼 요즘 함께 작업하기 좋은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함께 창작을 도모하는 모임이 있는데, 오인하 연출, 이이림 배우, 김대현 배우 등이에요. 오인하 연출이 작품을 쓰기도 하니까 이런 작품을 올려보자고 얘기도 하고. 오인하 연출이 공동체가 단단해지도록 만드는 능력이 탁월해요. 같이 있으면 즐겁고, 일할 때는 정확하고. 그런 경험이 별로 없었는데 전작인 연극 <메모리 인 드림> 때도 배우들이 하루 지나면 보고 싶어서(웃음).
그런가하면 박은석 씨에게는 이런저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오랜 ‘동거인’도 있는데요.
누구인지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박해수, 임철수 씨는 함께 영화도 찍지 않았나요?
네. <양자물리학> 시사회 초대받아서 갔는데, 전혀 그럴 부분이 아닌데 혼자 울컥했어요. 촬영하느라 늦게 들어오고, 액션장면 찍고 와서는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고. 해수 형은 첫 주연인 영화라 얼마나 부담됐겠어요. 철수도 힘들어 하고.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쭉 지켜봐왔는데, 완성된 한 편의 영화로 나오니까 재밌기도 하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울컥하더라고요.
박은석 씨도 스크린 진출도 그렇고, 공연도 해보고 싶은 방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기회가 닿는 대로 도전해야죠. 공연은 요즘 재밌는 게 좋아요. 코믹물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에 <영웅을 기다리며> 아주 재밌게 봤는데, 그런 작품 해보고 싶어요.
웃기는 분은 아니지 않나요(웃음)? <미드나잇> 의 비지터도 코믹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죠.
저는 재미없죠. 웃기는 사람은 아닌데, 사람들이 저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웃기대요. 비지터도 코믹한 부분이 있지만 조심스러워요. 작품 전체적으로는 블랙코미디지만 배우의 표현력을 통해 코미디로 흘러가는 건 아니라서요.
배우로서도, 개인적으로도 뭔가 생각의 변화가 많은 시기인 것 같은데, <미드나잇 : 앤틀러스> 와 함께 열어가는 올해는 어떤 생각들이 채워지기를 희망하세요?
좀 더 나답게 살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키우고, 연기할 때도 좀 더 나답게 하자. 연초에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내일 일 걱정하지 말고 오늘만 살자. 걱정이 많은 편인데, 걱정한다고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생각해 보면 제가 계획해서 이렇게 살아온 것도 아니고요. 이렇게 살 줄 몰랐고, 이렇게 변할지, 이런 곤경에 처하고 이렇게 다른 부분이 성장할지 과거에는 몰랐거든요. 그래서 현재에 충실하려고 해요.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살면 내일이 있겠죠(웃음).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