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일] 아이디어를 책으로 만드는 법
베스트셀러는 대중의 바로미터다. 이를 통해 타인의 취향을 살피는 것도 관심사를 넓히는 좋은 방법이다.
글ㆍ사진 이지은(출판편집자)
20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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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기획’이다. 기획에 타고났다고 소문 난 동료들은 종종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한다. 편집부 외에 기획팀을 따로 신설하는 회사도 있다. 기획과 편집을 분리시켜 시대의 흐름에 맞는 감각적인 기획을 스피디하게 따라잡기 위해서다.

 

기획이 중요한 이유는 출판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이 단추를 잘 꿰어야 원고 수급부터 출간, 회사 연매출까지 가늠된다. 한 사람이 1년에 5, 6종 출간한다면 그보다 적어도 두 배 정도는 원고가 쌓여 있어야 출간에 차질이 생기지 않으면서 6개월, 1년 뒤 일정 계획도 세울 수 있다. 그러니 기획이 부족한 회사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처한다.

 

기획은 그 중요성에 비해 이렇다 할 노하우가 없다. 아마도 처음 입사하면 “기획안 작성해봐”라며 바로 실전에 투입시키는 회사가 대부분일 것이다. 샘플 기획안이라도 준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제법 큰 회사에서 기획을 배우기 시작했음에도 처음에 샘플 기획안 외에는 그 어떤 조언도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획에는 특정 가이드라인을 세우기가 어렵다. 편집자마다, 분야마다 기획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계발 및 경제경영 등 스피드가 생명인 분야에서는 경향 분석부터 기획, 집필, 편집, 출간까지 진행이 불과 서너 달 안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반면에 인문 역사 등 정확한 고증과 타 도서와의 차별점이 주가 되는 분야는 스피드보다는 저자의 권위, 내용의 차별성 등이 더 중요하다. 더디더라도 제대로 된 번역과 고증을 거친 후 출간하려 노력한다. 또 에세이나 만화, 실용 분야에서는 저자의 팬 충성도가 책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큰 요소로 작용한다.

 

편집자 성향에 따라 기획 스타일도 다르다. 자신의 생애 주기나 관심사를 바탕으로 기획하는 편집자도 있고, 권위 있는 저자의 차기작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기도 한다. 3.1운동 100주년이나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정 시사 드라마의 흥행이나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 개봉 시기 등 사회적 이벤트를 대비해 기획하는 데 능한 편집자도 많다. 트렌드를 따르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 캐릭터를 활용한 에세이가 주를 이루었고, 요즘에는 SNS 스타나 유튜브 스타 책이 대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배 편집자에게 기획 노하우를 물어도 별로 뾰족한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막 하는 거지, 뭐” 정도로 답변하려나. 그러니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다.

 

관심사에서 시작하면 기획까지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 다만 그 관심사가 대중의 관심과 걸맞아야 출간 가능하다. 성향이 마이너해서 걱정이라면 최대한 베스트셀러를 많이 참고한다. 베스트셀러는 대중의 바로미터다. 이를 통해 타인의 취향을 살피는 것도 관심사를 넓히는 좋은 방법이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독자별로 베스트셀러 성향이 다르니 각각 참고하는 편이 좋다. 교보문고는 오프라인 독자의 성향을 알 수 있고, 예스24는 에세이나 실용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책 반응이 좋은 편이다. 알라딘은 인문 독자, 마니아 독자 성향이 강하다. 인터파크는 자녀교육서 및 아동서 등 중년 여성이 구매하는 책 판매가 상대적으로 높다. 아침마다 일일 베스트를 둘러보기가 버겁다면 일주일에 한 번 주간 베스트라도 살핀다.

 

종종 출판계 내에서도 베스트셀러를 혐오하는 이를 만난다. 책을 신성시하는 출판계 원로들한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번은 모 번역자로부터 “나는 ‘요즘 책’을 안 읽어요”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그분은 한 달에 한두 번씩 책 추천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 모든 추천 책은 당신이 과거에 읽은 것들이라고 했다. 물론 고전은 언제 읽어도 새롭다. 오래 읽힌 책들을 많이 접하고 그 이유를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호하는 책도 변화하게 마련이다. 요즘 들어 고전을 오늘날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는데, 편견에 함몰된다면 이런 관점을 따라갈 수 없다. 번역자라면 좋은 책을 선별해 출판사에 추천할 텐데, 그가 제안하는 책들은 얼마나 고리타분할지 알 만하다.

 

편집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베스트셀러는 안 읽어” , “나는 자기계발서 읽는 사람이 이해가 안 가더라” 같은 문장을 내뱉는 편집자는 괜찮은 기획을 만들기 어렵다. 타인의 욕망을 읽고 싶지 않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좋은 기획자다.

 

처음 기획안을 들고 가면 “아이디어와 기획은 달라”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아이디어와 기획의 기준은 ‘현실성’이다. 책이라는 물성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아이디어고, 어떻게 꾸밀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면 기획이다. 기획안을 한 장 이상 채워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체화시키라는 주문이다.

 

내 경우에는 차례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차례를 구성하면서 ‘이렇게 짜면 틀이 탄탄해지겠다’는 확신이 들면 기획안을 끝까지 채울 수 있다. 반면에 아무리 차례를 화려하게 꾸며도 이른바 ‘각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기획은 과감히 버린다.

 

다음으로 많이 듣는 코멘트는 “어디서 본 기획 같다” , “유사 도서가 너무 많다”일 것이다. 생각과 욕망은 엇비슷해서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남도, 어쩌면 나보다 먼저 실행 중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떠올리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이유로 기획을 접을 필요가 있을까. 다만 늦은 만큼 콘셉트를 구체화시키고 재설정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결국, 컨셉』 에서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다각도로 설명한다.

 

야구에서는 큰 점수 차이로 지는 경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추격조’를 따로 구성한다. 추격조에 속한 투수를 투입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다. 추격조는 과거에 ‘패전처리조’로 불리었다. 관중조차 패전처리조를 진 경기를 마무리하는 조로 받아들였고, 이 조에 속한 투수들은 선수 인생의 치욕으로 여겼다. ‘패전을 처리하는 조’를 ‘바짝 추격해서 승리를 이끄는 조’라고 의미를 전환시키는 순간, 관중도 선수 본인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기획에도 이런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러시아 혁명사’를 ‘혁명의 러시아’라고 뒤집기만 해도 독자는 ‘다르다’고 느낀다. 다른 책의 아류가 아닌 새롭게 느껴지도록 기획하려면 자꾸만 관점을 전복시켜보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기획이 자꾸 반려된다고 ‘나는 기획자 성향은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같은 기획이라도 회사 성향에 따라 통과 및 반려 여부가 다르다. 게다가 신입이라면 아직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어렵다. 기획은 편집자의 개성이 새겨지는 업무다. 이는 다시 말해 내 개성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수많은 옷을 입어보아야 결국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디어를 자꾸만 뒤집어보고 헤쳐모아 뭉툭했던 콘셉트를 그럴듯한 기획으로 구체화시키는 전 과정이 내 스타일을 찾는 여정이다.


 

 

 

 


 

 

결국, 컨셉김동욱 저 | 청림출판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약자들, 나만의 브랜드로 처음 사업을 시작하거나 실패에 다시 도전하는 이들이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소개한다. 또한 그동안 마케팅 현장에서 강자들을 이기고 살아남은 위대한 컨셉들을 보여주고,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그 비밀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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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출판편집자)

12년차 출판노동자. 2009년부터 지금까지 6개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인생은 재능이 아닌 노력’이라는 좌우명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분투했다. 덕분에 재능 없이 노력으로 쌓은 12년 출판경력은 부끄러움과 자부심이 공존한다.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동료나 저자와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고,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기도 하는 출판이 재미있어서 이 언저리에 계속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