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얼굴 - 그에게 필요 이상의 얼굴을 부여하지 말라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한 집단 성착취 영상 거래 사건의 피의자인 조주빈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 또한 크게 그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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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MBC_뉴스투데이_ 리포트 '조주빈'은 예전부터 있었고 어디에나 있다' 中 ⓒ목포MBC  .jpg

목포MBC 뉴스투데이 리포트 '조주빈'은 예전부터 있었고 어디에나 있다' 中 ⓒ목포MBC 


 
인류의 역사는 악을 상대하기 위해 발버둥 친 기록의 연속이다. 우리는 나와 내 공동체를 해하러 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천둥 번개와 지진 따위에 갖가지 상징과 신화적 세계관을 결부시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든 이유 또한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재앙의 연유를 ‘이해’해야 그것을 피하거나 하다못해 납득할 수 있으니까. 자연재해를 대하는 태도도 그런데 하물며 상대가 인간일 때는 어땠을까. 멀게는 구약에 기록된 카인과 아벨의 서사부터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왕 서사, 가까이는 강력 범죄자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크리미널 마인드>나 <마인드헌터> 등의 드라마 시리즈까지, 인류는 악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런 노력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악을 만났을 때, 인류는 상대를 ‘악마’, ‘마녀’, ‘야차’, ‘귀신 들린 자’, ‘짐승’ 등으로 호명했다. 인간의 힘으로 다른 인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인류 문명의 전제조건인 선의와 상호 신뢰가 산산조각 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처럼 언제든 끔찍한 존재로 돌변할 수 있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사회를 지탱한단 말인가? 그러니 저 자는 인간이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라면 저럴 수 없으니 응당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여야 한다. 인류가 악을 대하는 역사는 이처럼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악인을 아예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추방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왔다.
 
그 기원은 악을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위한 마음의 발로였겠지만, 결국 두 가지 모두 결정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악의 기원을 이해하려 그에 서사를 부여해 온 방식은, 엉뚱하게도 그 서사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악인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또한 악인 스스로 그와 같은 서사들을 역이용해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고자 하기도 했다. 2012년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상영하던 미국 콜로라도주 극장에 침입해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자신을 ‘조커’라고 칭했던 사건을 생각해보라. 한편 악인을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추방하는 방식에는 악인에게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는 식의 악명을 선사하는 동시에, 그 악행이 가능하도록 만든 사회적 토양을 무시하고 나머지 모든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함정이 존재한다.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한 집단 성착취 영상 거래 사건의 피의자인 조주빈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 또한 크게 그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그의 평상시 언행이나 성격, 학교 성적 따위를 캐내어 기사화하며 ‘겉으로는 이리도 멀쩡하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두 얼굴의 악마가 되었나’ 따위의 이야기를 만든다. 다른 한 쪽에서는 그의 성장과정을 분석하며 어린 시절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폭압적인 양육 분위기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식의 프로파일링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당사자도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랬으니 취재진들 앞에서 “악마의 삶을 멈춰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운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자신이 저지른 악행이 자력으로는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인류가 악을 상대해 온 두 가지 관점을 모두 자극하는 말을 던졌겠지.
 
2019년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 테러 사건에 관해 말하며 자신은 테러범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그에게 ‘악명’조차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물론 두 사건의 양상은 분명 다르고, 신상공개를 외친 수많은 한국 시민들의 요구에는 나름의 맥락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피의자들의 신상을 요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악인이 그 죄값을 제대로 치룰 때까지 사회에서 격리하고자 함이 이유이지, 그들에게 어떠한 서사를 부여해 그들을 동정하거나 혹은 그들을 ‘악마’로 칭함으로써 이와 같은 끔찍한 집단범죄를 낳은 한국사회의 토양을 부정하려는 목적이어선 안 된다. 악인에게 필요 이상의 얼굴을 부여하지 말라. 우리는 그에게 악명조차 허락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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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