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4월 우수작 - 소소하게, 간절하게. 벚꽃
내게 ‘벚꽃을 본다’라는 말은 새해를 맞이하는 일종의 ‘의식?’ 혹은 서울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안심?’과 동의어였다.
글ㆍ사진 박성미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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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4월호 주제는 ‘올 봄에 꼭 하고 싶은 일’입니다.

 

 

올봄엔 벚꽃을 볼 수 있을까?


봄이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는 것이 벚꽃이라, 보는 횟수를 세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다. 벚꽃이 피었다 지는 날까지를 세면 될 일이다 싶기도 하고. 하지만 생각해보니 내게 ‘벚꽃을 본다’라는 말은 새해를 맞이하는 일종의 ‘의식?’ 혹은 서울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안심?’과 동의어였다.


10년 전, 더 많은 기회를 잡아보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첫 회사는 여의도. 남들은 벚꽃놀이한다고 일부러 찾아오는 여의도 한복판에서 난 벚꽃잎만큼 발에 채는 일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았는지 끼니도 편의점 주먹밥으로 때우며 함께 일하는 언니들과 “우린 언제 여의도 벚꽃놀이 가냐.” 고 들숨 날숨에 푸념을 뱉으며 쳇바퀴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3년이 흐른 후, 봄날의 어느 주말, 또 회사 앞에서 편의점 주먹밥을 우걱우걱 씹고 있던 그때, 우리 옆을 지나가던 샤랄라 한 연인 한 쌍.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산 연인이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 매년 봄이면 그곳을 지나는 연인만 수십 쌍인데 그날따라 갑자기 짜증이 났다. 당장 먹던 주먹밥을 버리고 친구에게 문자를 했다. ‘야, 우리도 벚꽃놀이 가자’ 친구가 물었다. ‘어떻게?’ 내가 답했다. ‘집 앞 안양천이라도 가자’ 친구나 나나 일주일에 3~4일은 밤을 새우던 시기였지만 그땐 잠보다 세상에서 나만 못하는 것 같은 ‘벚꽃 구경’이 더 간절했다. 


다음 날, 오목교 근처에 살던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안양천으로 향했다. 가기 전엔 잠이나 더잘 걸 투덜투덜했는데 도착과 동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개울 옆 산책로에 쫙- 늘어선 벚꽃 나무 행렬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와, 하고 탄성을 뱉었다. 불그스름한 벚꽃부터 팝콘처럼 팡- 튀겨진 듯한 큰 흰색 벚꽃까지, 벚꽃도 다양하구나, 새삼 놀라기도 했다. 햇살은 따뜻하고 하얀 벚꽃을 가득 단 나뭇가지가 흩날리는 풍경은 서울에서 처음 만난 낭만적인 장면이었다. 한 가족이 아기에게 꽃을 보여주고 있고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걷고 우리는 운동화 위로 떨어진 벚꽃마저 예쁘다며 사진을 찍고 까르르 까르르, 그 잠깐의 시간에 그동안의 피로와 짜증과 서러움과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눈을 감고 떠올려 보시라. 벚꽃 앞에선 다들 웃는다. 꽃이 좋아서, 옆의 사람이 좋아서 혹은 이 시간이 좋아서, 가지각색의 이유로 얼굴엔 기쁨이 가득하다. 난 원체 타인의 감정에 물이 잘 드는 타입이라 꽃 너머 그 웃음들을 보면 같이 웃게 된다. 행복하지 않을 때 일부러 웃으라는 어떤 책 구절도 있던데, 정말 그렇게 웃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또 일 걱정도 잠깐 잊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닥치는 대로 먹고 일하는 삶에서 벗어나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된다는 생각도 들고, 나아가 타지에서 조금 안심해도 된다는 안도감까지 들었다. ‘행복하다’라는 마음이 드니까 벚꽃이 지고 나서도 힘들 때마다 벚꽃 사진을 보며 또 다가올 벚꽃 시즌을 기다리며 힘을 내곤 했다.


그런데 사람 일이란 게 참 희한하다. 행복해서 평생 갈 것 같던 그 벚꽃 구경을 3~4년 만에 못 가게 되었다. 친구와 난 또다시 쌓이는 일에 치이고 말았다. 그러다 새로 바뀐 핸드폰으로 SNS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옛날 사진을 보게 됐는데 번뜩 ‘벚꽃 구경한 지 참 오래됐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동안 쌓아 놓은 벚꽃 파워 게이지가 방전된 게 느껴지며 채워달라는 비상 경보음이 삐삐- 울리기 시작했다.


십 년 차 직업인 된 올해, 난 3년 차 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있다. 개인 일도 많고 책임질 일도 늘었는데 즐거운 일은 없는 현실, 또 올해는 재난 영화 같은 코로나19의 유행으로 가족들에게, 또 주변의 내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예민해지고 불안한 날의 연속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시간당 두세 번은 울리는 경보 문자에 화들짝 놀라고 바깥 나들인 다 취소됐다. 벽에 붙은 일력 속 사진을 보며 외출을 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요즘, 친구와 했던 벚꽃 구경이 더 그립다.


유독 시린 이 겨울이 지나가면 올해도 꽃은 필 것이다. 그때 안양천으로 가고 싶다. 또 벚꽃 구경으로 유난히 피로한 몸과 마음을 다독여 주고 싶다. 묵은 마음을 털고 켜켜이 쌓인 불안도 떨치고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 서로 무사히, 안심하며 마스크도 벗고 까르르 웃으며 평소보다 더 오래 벚꽃 구경을 하고 싶다. 생각난 김에 또 옛날처럼 불쑥 친구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꼭 같이 가야지. 같이 행복해져야지.      

 

 

박성미 프리랜서. 다정하고 명랑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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