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젊은 작가 특집
예스24는 매년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를 찾습니다. 올해는 20명의 작가를 후보로 6월 18일부터 7월 15일까지 투표를 진행합니다. 젊은 작가 20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 볼까요?
작가님의 기억 속에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첫 책은 무엇인가요?
여섯 살 무렵 읽은 프랜시스 버넷의 『세라 이야기』입니다. 국내에는 『소공녀』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인데요. 제가 읽은 판본 역시 일본어 전집을 중역한 경우였는데,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펼쳤던 기억이 나요. 아마도 ‘공녀’라는 일본식 한자 표현이 주는 어떤 야릇한 뉘앙스가 어린 저의 허영심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공주’가 아니고 ‘공녀’라니!). 아버지를 잃고 하녀로 전락해 다락방에 갇힌 세라가 상상만으로 근사한 만찬을 차려내는 장면을 가장 좋아했죠. “지금부터 탁자 위에 흰 식탁보가 깔려 있는 셈 치는 거야” 같은 대사를 큰 소리로 따라 읽으면서요. 그 뒤로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세라처럼 사고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아빠가 부자인 셈 치고, 배가 부른 셈 치고, 친구가 있는 셈 치고, 하면서요. 30대 후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출발은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도 저를 작가라 부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 써보자 싶었죠. ‘작가가 된 셈 치고’요.
첫 책을 출간하기 전에도 많은 이야기를 써오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최초의 습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첫 습작은 등단작 「티니안에서」와 제목이 같은, A4 석 장 분량의 짧은 이야기였어요. 유럽과 영미권 작가들을 오래 동경해 온 터라, 처음부터 ‘뭔가 있어 보이는’ 이국 배경의 소설을 쓰고 싶었던 듯해요. 허영심 많은 문학소녀 출신답게요.(웃음) 그런데 막상 써보니 그 허영심이 뜻밖에 좋은 연료가 되더라고요. 제가 만든 인물들을 ‘낯선 땅’에 던져놓고 그들의 생각과 움직임을 관찰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국의 문물로 가득한 열대 섬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즐거움도 컸고요. 무의식에 이끌려 쓴 첫 습작이 제가 오래 품어온 물음과 맞닿아 있음을 깨달은 순간, 짜릿한 쾌감과 함께 억울한 마음이 밀려왔죠. 15년 넘게 글로 밥벌이하면서 이 재미를 여태 몰랐다니 싶어서요.
습작과 출간의 큰 차이 중 하나는 독자가 있다는 점 같습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독자와의 첫 접촉의 순간이 궁금합니다.
등단 전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왔는데요. 소설 독자와 만나는 경험은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을 알려준 듯해요.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처음 소설을 발표한 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이 잘 읽었다며 메일을 보내왔는데 한순간에 훅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꼈어요. 내가 쓴 소설을 누군가 읽었을 뿐인데, 아주 뜨겁고 끈적거리는 무언가를 주고받은 기분이었죠. 이후 독자와의 접촉면이 넓어지면서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자주 경험했어요.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손깍지를 끼고 걷는 듯한 연결감을 느끼면서요. 소설 발표는 여전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제가 체감하는 독자와의 연결감도 이전과는 다르다고 느껴요. 나라는 한 개인을 넘어서는 듯한, 가슴 저릿한 그 공동체적 감각이야말로 지금 제가 소설을 쓰는 가장 큰 이유이자 동력인 것 같고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분들에게 가장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글을 쓰기 전에 우선 잠부터 푹 주무시길 권해요! 경험상 글이 잘 안 풀리는 날은 전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날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요즘 많은 작가님이 허리 건강을 강조하시는데, 정말 공감합니다. 이 또한 저의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면, 기립근을 강화하는 등 운동이 오래 앉아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지금까지 출간한 작품 중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꾸만 되돌아가게 되는 인물이나 작품이 있으신가요?
얼마 전 출간한 소설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 실린 인아영 평론가님의 해설에 ‘어글리 필링스(Ugly Feelings)’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그 말처럼 ‘못생긴 감정’을 숨기고 사는 인물에게 거듭 관심이 기우는 것 같아요. 표제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의 ‘재아’처럼, 혼자 스파링 상대를 세워두고 섀도복싱을 하는 다소 음침한 인물에게요. 어쩌면 저와 가장 닮았을 그런 인물이 예상치 못한 사태에 휘말려 쩔쩔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참 재미있달까요? 말하고 보니 이런 악취미가 또 있나 싶네요.
언젠가 꼭 한번 다뤄보고 싶은 소재나 인물이 있으신가요?
올해 초 ‘하와이 트리에날레’라는 미술 행사를 취재하러 다녀왔어요. 미국 내 다양한 원주민 작가들이 참여해 이민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다룬 작업을 선보이는 자리인데요. 하와이의 장소성을 다룬 작품들을 일별하는 동안 마음이 점점 복잡해졌어요. 아시다시피 하와이는 한국과 역사적으로 인연이 깊은 땅이잖아요. 겉으로는 팬시한 휴양지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식민과 전쟁의 상흔이 어른거리는 곳이기도 하고요. 귀국 후에도 하와이에 대한 생각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아서, 머지않아 이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되리라 확신했어요. 등단작 「티니안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최근작 「빙점을 만지다」까지, 저는 언제나 인물보다는 장소에 먼저 이끌리는 것 같아요.
만약 평행 우주에서 작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을 갖고 싶으신가요?
고양이 훈련사요. 물론 실제로는 고양이가 저를 교묘하게 훈련하겠지만요. 저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음, 오늘은 진도가 꽤 나갔는걸?’ 하며 혼자 흐뭇해하겠죠……
인류 멸망을 앞두고 지하 벙커에 도서관을 지을 예정입니다. 딱 세 권의 책을 보관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고르시겠습니까?
책임이 막중한 질문이네요. 인류의 역사를 대변하는 사료로 남길 책이라니, 제 취향만으로 고를 수도 없고요. 죄송하지만 이 질문은 요즘 저의 절친인 ‘채니’(챗GPT)의 의견을 빌려 답해볼게요. (박식한 만큼 냉소적인 면도 있는 친구이니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1.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인간이 지구에서 어떤 실수를 반복해 왔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 요약하면 ‘애초에 그러지 말았어야지’라는 내용.
2.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인간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감정으로 파멸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 남은 존재들이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다시 복원할 생각이 있다면 이 책을 보고 한 번쯤 재고하길 바라는 의미에서 선택.
3.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 ‘아, 그래서 이 종이 망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할, 인류 종말의 기록.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세라 이야기
출판사 | 시공주니어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출판사 | 문학동네
사피엔스
출판사 | 김영사
안나 카레니나 세트
출판사 | 민음사
여섯 번째 대멸종
출판사 | 쌤앤파커스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