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현대사 백 년을 그림책으로 밀도 있게 선보였던 『백년아이』 김지연 작가의 신작, 『호랑이 바람』 은 2019년 봄, 강원도 고성을 뒤덮었던 산불 진화 과정을 담은 그림책이다. 작가는 고성 산불을 통해 점점 더 강력해지고 빈번해지는 재난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 화두를 던진다.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면 부적이나 꽃살문 같은 전통 문화를 다루거나 우리 역사나 옛날이야기가 모티프가 된 작품들이 많은데요, 이번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요?
제가 작가가 되고 싶었을 때 고민하던 여러 가지 중 하나가 발언의 태도였어요. 말을 꺼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죠. 수많은 손길을 담은 책을 통해서 이야기하려니 제 안부터 들여다보는 것이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금기로 여기던 『부적』 을 통해 제 두려움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뒤로 일상에서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들, 안타까운 것들을 소재로 삼게 된 것 같아요. 아름다운 꽃살문이 사라지는 것이, 아이들이 잠을 잘 못 자는 것이 안타까워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일상에서 소재를 다루는 것이 같은 점이라면, 다른 점은 작년에 나온 『백년아이』 와 이번 책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어려움을 이겨 낸 것이니까요.
『호랑이 바람』 은 고성 산불을 다룬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특별히 마음에 남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그날 뉴스를 통해 고성에 불이 난 것을 알았어요. 사람이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센 바람이 불을 이끌고 속초 시내까지 옮겨 갔어요. 어쩌나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는데 한밤의 뉴스에서 깜깜한 고속도로를 줄지어 묵묵히 사이렌을 반짝거리며 강원도를 향하는 소방차들을 보는데 눈물이 가득 차 올랐어요. ‘이제 더 이상 너만의 일이 아니야, 우리가 함께할 거야.’ 하는 희망의 사이렌이었어요. 연대가 이렇게 피부에 와 닿기는 처음이었어요. 부끄럽게도 제게 그간의 연대는 나의 이익을 뒤에 숨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인재는 인간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인간을 구하려 하지 않을 때’란 생각이 들며, 제게 작은 용기가 생기더라구요.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높은성’에 특별한 의도나 의미가 있나요?
고성 지명이 한자 풀이로 높은 성이에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이란 것이 인간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축성한 것이죠. 우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성이 물질의 성이라면, 우리가 지키려는 고귀한 가치들은 더 높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 안에서 사랑, 우정, 관용, 나눔, 존중, 배려 등 그런 가치를 가진 사회가 더 높은 성이 되고 꼭 지키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책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매우 강렬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불이 더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특히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는지요?
저는 아직도 제 그림이 뜨거워요. 검은 산이 뜨거운데 거길 들어가는 아이 때문에 조마조마했어요. 그리고 화마에 상처 난 나무를 안는 마음이 기특했어요. ‘나라면 할 수 있을까. 요 조그만 녀석에게 부끄럽지 않게 더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어.’ 하는 마음이 들어요.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기억에 남는 이미지가 둥지 안의 새들이었는데요. 책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불이 나기 이전 장면까지는 모든 장면에 새가 있었다가, 불이 난 뒤에는 모두 사라졌어요. 그러고 나서 결말 부분에서 다시 새가 등장해, 이 작품에서 새라는 상징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새라는 소재를 선택하셨고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궁금합니다.
문득 아기 동물들은 어쩌지, 갓 태어난 아기 새들은 날지도 못할 텐데. 비단 아기 새만 못 움직였을까. 몸이 불편해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약자들에게 재난은 더 크게 다가오겠구나. 우리가 갖는 희망이란 것이 재난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그 재난을 이겨 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회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새와 아기 새라기보단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요. 불 속에서 산 아래로 내려오는 장면에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아기 새를 구해 나오는 장면도 그런 마음이었어요. 어서 고성이 회복되어 화마에 피해를 입은 고성 지역 주민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했으면 하는 마음에 새들이 꼭 돌아오길 바랐어요.
이번 그림책에 사용하신 마블링이나 판화는 손이 많이 가고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때까지 매우 오랜 노력이 든다고 알고 있습니다. 작업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나 가장 보람 있었던 점이 있을까요?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림책이 글과 그림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글이 생각을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그림은 노동의 압축 결과물이죠. 마치 요리 에세이나 레시피를 쓰는 것과 그 요리를 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림 작업을 할 때 노동에 대해 경건한 마음이 생겨요. 특히나 판화는 칼을 이용해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서 그림을 새겨야 하고, 잉킹을 하고 프린트하는 과정에 숙련공처럼 더 나은 기술적인 면이 생성되길 바라는 노력을 아끼지 않죠. 판화는 정교하게 계산을 해서 하는 작업이라면 반대로 마블링은 우연의 효과를 기대하고 하고 하는 작업이랍니다. 물위에 퍼지는 색의 파문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야 해 다른 작업들보다 특히나 집중력이 필요해요. 에피소드까지 될까 모르겠지만 두 작업 방식이 다 샘플의 양이 아무래도 다른 작업들보다 많아요.
끝으로 작품을 읽는 내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가 떠올랐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재난이 번져 나가고, 속수무책으로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겪는 안타까운 현실과 그림책의 내용이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책의 저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연대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께서 생활도 어려우신데 마스크를 손수 만들어 기부를 하고, 자신은 몸이 불편해 외출을 하지 않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마스크를 기부하고, 우한에서 귀국한 교민을 따듯하게 보듬어 준 아산의 시민들, 대구에 병상이 모자라자 대구 환자들을 받아준 광주 시민들, 자신에게 경미한 증세만 있어도 스스로 계단과 도보를 통해 이동하는 사람들,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민주 교육을 받아 시민 의식이 투철해서라기 보단 선한 마음들이 움직임이 되고 연대가 되었기에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이었던 것 같아요. 높은 성이 지키려는 아름다운 가치를 존중하는 공동체가 앞으로 우리가 가꾸어 변해갈 세상에 희망의 증거인 것 같아요. 벅차 오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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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바람 김지연 글그림 | 다림
마블링과 판화 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다소 낯설 수 있는 마블링은 물과 기름이 분리되는 원리를 이용하는데, 해초 가루를 넣은 물에 3~4가지의 물감을 넣어 바늘로 그림을 그린답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