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워지는 저출산 시대, 생과 사의 경계에 위태롭게 선 수많은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를 구하기 위해 날마다 분투하는 의사가 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는 바로 그 의사,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오수영 교수의 이야기다. 오수영 교수는 스무 해가 지나도록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며 만나온 수많은 고위험 임산부와 손끝으로 받아낸 아기들을 마음에 품고, 기억하고, 기록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가 책으로 나온 것을 처음 보셨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한마디로 너무 기뻤습니다. 글을 틈틈이 쓴 것은 오래되었고, 책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지도 3~4년은 된 것 같습니다. 책으로 마무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기도 했지요. 그래서 갓 나온 분홍색의 예쁜 책을 보니 너무나 뿌듯해서 며칠 동안은 침대 머리맡에 놓았고 안고서 잤습니다. 책에도 언급했지만 두 딸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점에서 너무 기뻤고, 그동안 제가 글을 썼는지도 모르시는 부모님께서 얼마나 뿌듯해하실까 하는 마음에 설렜습니다. 또한 교수로서의 15년을 정리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스스로에게 ‘그래, 수고 많았어’라고 말하며 어느 광고에서 나온 것처럼 피로회복제라도 사주고픈 마음이었지요.
책을 읽다 보면 선생님께서 산부인과 의사이자 워킹맘으로 아주 바쁘게 지내시는 것 같아 보여요. 주로 언제 글을 쓰셨나요? 또 어느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셨는지요?
대개 사건이 일어난 당일 밤에 적었습니다. 그때 가장 생생한 감정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낮에 매우 긴박하고 힘든 산과적 응급 상황이 있으면 그 순간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어 그런지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첫 에피소드를 적은 때는 정확히 2011년 6월입니다. 구순구개열이 있던 둘째를 낳은 산모가 ‘지금은 둘째가 제일 예쁘다. 안 낳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이 사연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도록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제 외래로 온 산모 중에 이 책을 읽고 저에게 사인을 처음 요청한 산모가 구순열이 있는 태아를 임신 중이었어요. 『태어나줘서 고마워』를 읽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면서 책을 들고 온 것이지요. 불교의 윤회설이라고 봐야 할지, 나비효과라고 봐야 할지. 9년 전 처음 글을 쓰게 만든 산모와 남편의 아름다운 사랑이 9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지금, 다른 산모와 가족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뿌듯했어요. 저는 사실 그 산모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현재 둘째가 얼마나 예쁘게 크고 있는지 소식을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아울러 사진을 공유해주실 수 있다면 다음 판에 꼭 싣고 싶습니다.
책에 부록으로 나오는 의학적인 내용은 정말 쓸 시간이 없었는데, 2년 전 큰맘 먹고 가족 휴가를 떠나면서 시간을 마련했어요.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기는 기차 안에서, 밤늦은 시간 호텔방에서 부록을 정리했지요. 이번에 책으로 마무리할 때 최근 통계를 반영하고 참고 문헌을 표시했습니다.
책 속에 다급하게 진행되는 응급수술 이야기가 많은데요. 임산과 출산이 이토록 경이로운 일이라는 게 참 놀랍습니다. 선생님께서 경험하신, 정말 잊지 못할 출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책에도 나오는 내용인데요, 가장 잊지 못한 수술은 중환자실에서 시행한 자궁적출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앞에서 산모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이 보였기에 한 치도 지체할 수 없어서 그 자리에서 배를 열기로 결정했지요. 그날 중환자의학과 정치량 교수가 같이 있지 않았다면 산모를 잃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정치량 교수께 그날 ‘같이 있어주어 고마워’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출산에 관한 수술도 하나 말씀드릴게요. 22주 쌍태임신에 조기양막파수로 첫째 아기의 손이 빠진 상태에서 정확히 23일을 끌어서 25주 2일에 태어난 제이, 카이입니다. 이번에 책을 내면서 산모에게 연락을 했고 아이들의 사진을 흔쾌히 공유해주셨는데 건강한 두 아이의 모습을 다시 보면서 너무 기쁘고 흐뭇했어요.
산모들의 따뜻한 편지와 선물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받은 선물 중 기억에 남는 것과,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세요.
산모에게 받은 편지와 선물은 사실 모두 기억에 납니다. 책에는 담지 않았지만 몇 년 전 폐동맥고혈압을 가진 고위험 산모가 어렵게 출산한 뒤 제 사진을 담은 머그잔을 보내주신 적이 있어요. 그 잔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선물해주신 분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또 최근에는 태국인 남편과 함께 온 산모가 출산 후 2차 감염으로 회음절개부위가 약간 벌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항생제 치료 후 재봉합을 하고 일주일 뒤 외래에서 추적관찰을 하는데, 불평은커녕 임신 기간 동안 잘 봐줘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태국에서 사온 작고 예쁜 백을 주시더라고요. 이렇듯 출산 과정 또는 출산 후 회복 과정에서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이전에 의사와 관계가 좋았어도 산모는 ‘혹시 저 의사가 잘못해서 내가 이렇게 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신뢰가 깨지는 안타까운 일도 적지 않게 생깁니다. 그런데 이토록 믿어주고 고마워하는 산모를 보며, 오히려 제가 감사했어요.
산부인과 의사로서 임산부와 그 가족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밤이나 주말에 응급 분만 또는 수술로 병원에 왔을 때, 출산 직후 감사 인사를 하지 않는 부부가 많습니다. 새벽 3시에 자다 일어나 아기를 받아주었는데 아기가 나온 뒤 감사 인사 없이 분만실을 나가면 옆에서 보고 있는 산부인과 전공의(예를 들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추민하 같은 의사)에게 무안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정규 근무 시간이 아닌 때에 아기를 받아준 선생님은 자다가 새벽에 집에서 헐레벌떡 나왔을 수 있고, 가족 모임을 하다 뛰어나온 것일 수도 있어요. 학회 중에 병원으로 발길을 돌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쪼록 분만 또는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 출산 직후 ‘아기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전하는 것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책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있으시다면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세요.
정해진 계획은 없습니다만 산모와 태아를 보면서 잊지 못할 순간을 기록하는 것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이 쌓여서 많은 분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다음 책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번 책에는 부록에 임신에 관한 의학 상식을 넣었습니다만, 만약 다음 책을 내게 된다면 분만 과정에 대한 기본 상식을 넣을까 생각 중입니다. 예를 들면 제왕절개수술과 질식분만의 비교 같은 내용이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책에 위험한 순간이 많이 기록되어 있어서 혹시 임신과 출산을 무서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저는 임신과 출산을 ‘등산’에 비유하고 싶어요. 산을 오르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은 더 힘들지요. 중간에 가파른 경사도 있고 미끄러운 돌에 자칫 발목을 삐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시나 이정표를 놓치게 된다면 길을 잃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경험하지 못한 벅찬 감동이 있고, 상쾌한 바람은 그동안 흘린 땀을 말끔히 가시게 해주며 수고했다고 위로해줍니다. 제게도 엄마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커버린 두 딸을 보면, 힘들었던 등산의 오르막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 그리고 이 숭고한 등산에 산부인과 의사는 ‘이정표’ 같은 존재입니다.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는 훌륭한 산부인과 의사를 키워내는 것이 제가 교수로서 해야 할 또 하나의 ‘등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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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ternity07
2020.06.10